가짜가 판치는 세상, 이곳에서 '진짜'를 충전함이 어떠오?

[리뷰] 유애숙 첫 소설집 <장미 주유소>

등록 2006.06.10 16:26수정 2006.06.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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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짝퉁'이라는 이름으로 옷이며 의약품 따위가 자연스럽게 진짜를 대신하고 있다. 욕망은 어떨까? 유애숙의 <장미 주유소>는 욕망 또한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가짜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눈을 의식해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현재 살고 있는 18평형 빌라가 마음에 든다면 계속 살면 된다. 그럴 때면 친구들이나 자신보다 수입이 낮은 부하직원이 32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어도 상관할 바가 없다.


하지만 가짜 욕망이 발동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48평형 아파트를 사기 위해 대출까지 받는다. 그렇게 살아야 만족스럽다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명품이나 보석을 생각해보자. 무리해서라도 그것들을 구입하는 것 또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경우가 많은데 그것 또한 가짜 욕망의 한 모습이다. 타인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진실한 마음을 정복하고 만 것이다. 그런 뒤에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유애숙은 '명문아파트'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용자는 동경하던 신 여사와 같은 아파트에 살기 위해 남편의 뜻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모아 이사를 감행한다. 자신도 신 여사의 말마따나 '꿈결'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사하고 보니 뭔가 뒤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 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집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용자는 참아보려고 했다. 이곳에 살면 자신도 신 여사처럼 멋진 인생을 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용자로서는 기가 막히게도 신 여사 역시 '가짜'였다. 그녀의 고상한 삶도 실상은 가짜였던 것이다.


이것을 안 용자를 누가 위로해줄까? 없다. 되레 비웃을 뿐이다. 소설의 한바탕 소란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런데 ‘욕망’만 가짜가 지배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어떨까? 유애숙은 욕망만큼이나 사랑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공교롭게도 소설은 이 대목에서 ‘판타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멀쩡한 순수문학을 판타지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애숙은 욕망과 달리 사랑은 가짜를 폭로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진짜 사랑’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런데 진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기대는 숨결’에 등장한 사랑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속이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이별클리닉’처럼 이별까지도 용서하며 사랑할 줄 아는 것을 말하는가? 그도 아니라면 ‘돌아오라 소렌토로’처럼 죽은 아내에게 ‘끝까지 사랑합니다’라고 속삭이는 것인가?

이 모든 사랑은 나름대로 멋진 감각을 지녔다. 허나 동시에 ‘진짜’가 되기에 부족한 점도 있다. 만약 당사자를 위해 속이는 것을 몰랐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사랑은커녕 배신감만 떠오를 뿐이다.

그럴 때 누가 사랑을 운운할까? 이별까지도 용서하는 사랑은 어떤가? 그것은 일방적인 사랑이 되고 만다. 죽은 아내에게 대한 사랑의 속삭임은 어떨까? 현실에서 붕 떠 있다. 옆에서 핀잔주는 어머니 말처럼 인생이 그런 게 아니다. 이는 유애숙 스스로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유애숙은 꿋꿋하게 진짜 사랑을 찾고 있다. 그렇기에 <장미 주유소>는 판타지다. 도대체 진짜 사랑이 어디 있기에, 요즘 누가 그런 것을 중요시 하냐고 묻는 시절이기에 진짜 사랑을 찾는 행보는 판타지의 여행일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힘이나 고대의 마법 책을 찾는 것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긴장된, 가슴 속 깊은 곳을 두드리는 울림을 지닌 판타지의 서사시인 것이다.

<장미 주유소>에는 결말이 없다. 독자에게 스스로 선택해보라는 듯 다양한 사랑들을 보여줄 뿐이다. 아니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제 모험이 시작됐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장미 주유소>는 이제 1부에 불과하고 앞으로 모험은 계속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해석이 더 구미에 당기는가? 정답은 없다. 남들 시선 의식 않고 진짜로 끌리는 쪽에 손을 들어주면 된다. 사랑을 고르거나, 아니면 앞으로의 모험에 동참하거나 하면 된다. 어쨌든 간에 ‘장미 주유소’는 ‘가짜’가 판치는 세상을 벗어나 ‘진짜’를 찾으러 떠나는 사람들의 기운을 한껏 충전시켜주는 곳임에는 틀림없으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장미 주유소

유애숙 지음,
문이당,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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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 울음은 그대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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