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과학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신동원이 엮은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

등록 2006.06.11 17:26수정 2006.06.11 18:57
0
원고료로 응원
<한국 과학의 수수께끼>는 조선시대 세종 때, 구체적으로 말하면 1418년부터 1450년까지 한국의 과학기술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측우기, 혼천의, 옥루, 금속활자 갑인자 등 그야말로 찬란한 과학기술이 이때에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a

ⓒ 한겨레출판

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룬 자격루는 어떤가? 만원짜리에 세종대왕과 함께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자격루는 당시 나라의 표준시계였다. 자동시보를 갖춘 물시계로 하루에 열두 번, 요즘 시간으로 두 시간에 한 번씩 숨어 있던 인형이 나타났다. 물론 등장하는 인형들도 자시에는 쥐 인형, 축시에는 소 인형 등으로 모두 달랐다.


뿐인가. 자격루에는 종도 달려있는데 하루에 열두 번씩 때가 되면 울렸다고 한다. 밤이 되면 북이 울고, 더욱 잦게 징이 울리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1년 365일이 한결 같았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놀랄 수밖에 없다. 사실 ‘자격루’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도 드무니 그럴 수밖에. 만원짜리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자격루뿐일까? 그 동안 우리는 우리의 ‘과학’에 무심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첨성대, 측우기, 수원 화성 같은 단어들 몇 개만 떠오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떠올려도 문제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라고는 단편적으로 암기를 요할 뿐이다. 그러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이것이 세계 과학사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지는 물론 나아가 우리 과학이 얼마나 우수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과학 대신 외국의 것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신동원이 엮은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가 반갑다. 에밀레종 소리와 고려청자 비취색의 비밀,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이유, 중국에서 동의보감을 30쇄 이상 찍어낸 이유 등을 쫓은 이 책은 우리의 과학에 한걸음 다가설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동의보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자. <동의보감>이 허준의 것이라는 건 일종의 상식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어떤 ‘존경’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에서 무려 30여 차례 인쇄됐다는 사실은 드라마 <허준>을 시청한 많은 국민들 모두에게 ‘금시초문’으로 통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사실인지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의 글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열하일기>에서 “우리나라 서적으로 중국에 들어가 출판된 것이 매우 드무니 홀로 <동의보감> 25권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1743년 중국의 왕여준 같은 이는 “그 책의 약물성미를 본다면 상세한 병세와 병증에 따라 진단하여 방제를 정하고 그 도리를 밝혔는데, 그야말로 의서의 대작이었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혹자는 <동의보감>이 세상에 알려진 것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시라. 중국에서는 “천하의 보물을 천하가 함께 나눠야 한다”고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자존심 높은 그네들이 이토록 칭찬하는 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동안의 의서들은 치료 중심이었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몸 중심의 의학으로 구성된, 몸의 건강과 병의 예방을 병 치료보다 앞에 둔 일종의 ‘혁명’같은 것이었다.


한국과학의 또 다른 산실, 에밀레종은 어떤가? 오늘날의 첨단과학으로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비밀로 만들어진 그 소리는 ‘일품’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고려청자의 비취색은 또 어떤가? 이 또한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기술의 산실이다. 수원 화성은 어떨까? 요새 중의 요새로 만들어진 이곳은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하는 으뜸의 가치를 지녔다. 사람들이 무심해서 몰랐을 뿐이지, 우리 과학은 신비로운 기술로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는 우리 과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물론 그것에서 끝이 아니다. 왜 우수한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근본적인 이해를 함으로써, 과학문화유산의 ‘알맹이’를 제대로 파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는 고려청자의 비취색처럼 황홀하고 에밀레종의 소리처럼 속이 깊고, 자격루처럼 분명하다. 동의보감처럼 뿌듯함을 보장해주는 요소들을 두루 갖춘 셈이니 기대치를 한껏 높여도 무방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 - 카이스트 학생들과 함께 풀어보는

신동원 엮음,
한겨레출판,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