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무뚜'가 광대된 이유는?

[공연 리뷰] 극단 우투리의 <이리와, 무뚜!>

등록 2006.06.12 09:39수정 2006.06.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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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와, 무뚜!> 공연 포스터 ⓒ 극단 우투리

나만한 크기의 강아지를 키운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벌써 주인을 반기려고 낑낑거리는 그 녀석의 부산한 울음을 들을 수가 있다. 대문을 열자마자 품으로 달려드는 그 녀석의 무게에 내 몸은 벌써 한발자국 밀려나 있다. 가끔 나를 보면서도 내 뒤쪽 어딘가를 향하는 녀석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이 녀석은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본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주인을 따르던 녀석이 집을 나가 곡마단의 광대가 된다고 상상해 보라. 혹은 이 작품에서처럼 그 녀석의 입장이 되어 선택을 해 보라.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 김 선생의 애완견 '무뚜'이다. 주인만을 위해 살던 녀석이 광대가 되는 이야기를 들어볼까.

무뚜가 광대가 된 이유

삽살개인 이 녀석의 이름은 '무뚜'다. 머리도 몸도 온통 털로 덮여 뭉뚱뭉뚱하게 생긴 녀석. 이 녀석의 외형에 맞춰 받침과 반복을 빼면 그럴싸한 이름 '무뚜'가 된다. 주인의 성을 따서 김 무뚜. 무뚜는 세련된 슈나우저 검돌이와 함께 김 선생 댁에서 자란다. 삽살개 특유의 도깨비를 볼 줄 아는 재주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우직함 때문에 김 선생의 집 근처엔 도깨비가 얼씬 않는 평화가 있다.

도깨비들의 연희가 한창인 어느 날, 무뚜는 춤을 배우고자 연희판에 뛰어든다. 그러나 도깨비들의 잔꾀에 길을 잃고, 배고픔에 지친 무뚜는 곡마단 단장이 내민 육포 한 조각의 유혹에 곡마단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하얗던 털은 때가 묻어 꾀죄죄하다. 점점 지급 횟수가 줄어드는 단장의 마른 육포 한 조각은 광대놀음에 대한 메마른 개런티이기도 하며, 고통스럽고 빈궁한 곡마단의 생활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무뚜는 그 한 조각을 동료단원의 술안주로 건네기도 하면서 곡마단의 광대 ‘경구’가 되어간다. 연극배우에서 영화계의 스타로 발돋움한 어느 배우의 이름처럼 말이다.

극단 우투리의 <이리와, 무뚜!>

무대엔 삼색기와 붉은 네온이 번쩍거리고, 악사들의 반주가 곡예의 긴장을 더한다. 동물들의 곡예는 점점 흥을 더하고, 바로 그때 검돌이를 앞세운 김 선생님이 등장한다. 무대 저 멀리에서 "이리와, 무뚜"를 외쳐대는 김 선생과 "이리와, 경구"를 외쳐대는 단장 사이에서 무뚜는 어쩔 줄 모른다. 갈등하던 무뚜는 곧 주인을 향해 큰절을 올린다. 스스로 광대임을 선언하는 절을 올리면서 쇼는 계속된다.

'산대백희'라 명명한 극단 우투리와 변정주 연출의 <이리와, 무뚜!>는 '산대'라는 이름처럼 전통놀이와 춤, 노래, 소리로 진행된다. 소리가 미적 형식이라고 했던가. 가부키는 여자들의 노래인 온나가타에서 연기가 더해져 양식화되기까지 1세기를 보냈다.

작품의 무대 위 모든 연극적 요소는 하나의 음 단위로 구성되어 배우와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 삼현육각에 배우들의 소리가 어우러지고, 홍두깨와 도뵤시 등의 소품을 더해 발을 맞추고, 탈춤과 굿거리 등 장단이 어우러졌던 작품은 경쾌한 드럼연주로 끝을 맺는다. 악단의 장단에 맞춰 늘려지고 좁혀지는 '놀아진' 대사들이 일품이다. 그러나 탈춤의 불림에 기댄 탓에 각각의 서사와 인물과 전경에 대한 설명에 그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학적으로 훈련시키는 단장과 온화한 김 선생의 뚜렷한 대비도 광대로 남는 무뚜의 의지를 반감시킨다. 이 부분은 무뚜가 광대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단원의 죽음으로 대신 광대가 되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작품의 절정인 무뚜의 큰절 올리는 장면은 상황설명에 그치고, 무뚜를 사이에 두고 부르는 "이리와, 무뚜야... 이리와, 경구야..."의 노래가 더 크게 부각된다. 또 단장의 비인간적이고 가학적인 훈련 장면이 부각된 탓에 곡마단 내 사람들의 인간성, 그에 대한 필요와 가치, 동물에 빗댄 사람들의 풍경이 시의성을 갖지 못한다.

똑같은 개가 되긴 싫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을 요구한다. 당신은 선택을 하며 그 상황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언제나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편안한 집을 나와 곡마단의 광대가 된다고 상상해 보라. 고향도 집도 잊은 광대의 생활은 배고픔뿐이다. 집으로 돌아가 편한 애완견이 될 것인가. 혹은 곡마단의 광대로 남을 것인가. 녀석이 가진 광대로써의 사명감은 관객의 사명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녀석을 부르는 '아름다운 광대' 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 것일까.

비록 개로 태어났을지언정 똑같은 개가 되진 않겠다는 생각이 개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작품은 무뚜라는 개의 선택에 빗대어 예술에 대한 고민도 끌어안는다. 도깨비를 볼 수 있는 상상력, 도깨비와 놀고 말하는 무뚜 만의 능력과 고된 훈련 등 예술의 기능도 이야기한다. 무뚜는 광대다, 아름다운 광대. 녀석은 이제 한 판 놀아도 크게 놀자고 결심한다. 동고동락하는 동료들의 도움도 있다. 동료들을 위해, 주인을 위해, 자신을 위해 신나게 놀자고 결심한다.

덧붙이는 글 | 김광림 작 / 변정주 연출 / 극단 우투리 
2006.5.31~6.18 아룽구지 소극장

덧붙이는 글 김광림 작 / 변정주 연출 / 극단 우투리 
2006.5.31~6.18 아룽구지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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