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심은 무오류의 성역인가

[주장] 5·31 지방선거를 바로보는 또 하나의 시각

등록 2006.06.12 15:38수정 2006.06.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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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한 열망'과 '50년 낡은 정치의 청산'을 요청받고 출범한 노무현 정권이 5.31 지방 선거 이후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선거결과가 보여주듯이,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듯하다.

선거결과를 둘러싼 설왕설래 속에는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당연시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전제이다.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정당에게는 맞는 말이겠지만, 과연 민심은 무오류의 보편타당한 원칙일까?

다시 2002 대선으로 돌아가 보자. 개혁과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운 노무현 후보는 예상을 뒤엎고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사회에 확산되었고, 필자 역시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세력에게 집권 기회를 줌으로써 마침내 획일성을 극복한 한국사회의 역동성에 경의를 표했다.

기대에 부응해 대통령부터 과거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역대 정권이 모두 피했던 보수언론과 갈등하는가 하면, 논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대통령의 모습이 권위주의 정치에 이미 길들여져 버린 소위 ‘천심’의 눈에는 그저 가볍게만 보였고, '말을 아끼라'는 충고와 비난이 쏟아졌다.

현 정권은 진보세력답게 수도 이전과 같은 가히 혁명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기도 했다. 서울과 지방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문화와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인구과밀화로 인한 서울과 수도권의 열악한 생활환경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시장 정도나 반대했을 법한 수도 이전 문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저항에 부딪혔다.

부동산 문제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천정부지로 뛰는 강남의 집값은 대다수 국민으로 하여금 부동산 투기에 눈을 돌리게 했고, 그 결과 선진국에서는 하층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콘크리트 성냥갑 같은 아파트 한 채가 300~400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국민소득 2만 불이 채 안 되는 나라에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손을 대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었지만, 손을 댄 정부는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비난은 부동산 정책뿐만 아니라 정권 자체에 가해졌다. 현 정권은 '과도하게 이념에 경도된 운동권 출신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자기주머니 채우기 급급한 천심은 왜 비난 않나


그러나 놀랍게도 자기주머니 채우기에 급급한 '천심'에 대한 비난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파트 반상회에서는 집값에 대한 담합이 이루어지며, 이처럼 부도덕한 상거래는 강남의 터무니없는 집값에 대한 상대적 저평가를 내세워 정당화된다. 사실은 이러한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다고 야단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소위 전문가 집단은 부동산 문제를 그냥 시장원리에 맡기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상도덕마저 저버린 채 자기잇속만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시장이 과연 제대로 기능할까?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실패를 정책상의 문제로만 돌릴 수 있을까? '천심'의 관심사는 정책의 보완이 아니라 부정에 있는듯하다.


교육문제는 어떠한가. 한국의 청소년들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꿈 많은 청소년시절을 불확실한 장밋빛 미래를 대가로 포기한지 오래다. 인권유린의 수준에 도달한 입시지옥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이고, 정부는 또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실패할' 정책들을 쏟아냈다. 경쟁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교육 수요자가 있는 한 정부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 비난은 정부에게만 쏟아진다.

5.31 지방선거를 포함해 정부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보고 있노라면, 천재지변의 책임을 왕에게 돌리던 전근대적 왕조국가가 연상된다.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공동체 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특정 정권이나 정책보다 '천심'에 있는 것은 아닐까? 경제가 안 좋다고 아우성이다.

이는 혹시 2002 대선 당시 천심이 원했던 개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내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5·31 지방선거에서 부활한 지역주의도 현 정권의 책임일까? 정권을 심판하기에 앞서 민심의 차분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윤용선 기자는 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연구교수입니다.

덧붙이는 글 윤용선 기자는 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연구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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