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당신 유죄야!"

하얀가루를 뒤집어쓴 앵두나무를 보며

등록 2006.06.13 15:19수정 2006.06.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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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산 밑의 작은 야외음식점 입구에 문지기로 서 있는 제법 큰 앵두나무, 이렇게 큰 앵두나무를 만난 건 행운이라 생각하며 무던히도 들락거렸다. 그리고 앵두가 예상대로 빨갛게 익었다. 내 예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일어난 것 빼고는…


a 앵두나무, 희끗 희끗 하얀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사진 찍는것도 무서워 딱 한장 찍었지요

앵두나무, 희끗 희끗 하얀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사진 찍는것도 무서워 딱 한장 찍었지요 ⓒ 권용숙

빨갛게 익은 앵두를 만난다는 그 기쁨 하나만을 위해 달려간 그 곳, 앵두나무는 하얀색 가루를 뒤집어쓰고 서 있었다. 분명 내가 가기 전날 하루종일 비까지 내렸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비온 후에 이 가루를 뿌렸단 말인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분명 앵두나무에 뿌려진 하얀가루는 어릴 적 보았던 풀을 없애기 위해 뿌리던 '제초제'와 흡사하다. 우리 아이들하고 국수 먹으러 가끔 왔고 초록앵두도 보여줬고 빨갛게 익으면 하나 따서 입에 넣어 주고도 싶었는데 혹, 밤에 누가 주인 몰래 따먹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하얀 가루가 묻은 빨간앵두는 이미 앵두가 아니다. 앵두를 접사해 보겠다고 달려간 내 마음에 빨간 앵두빛 신호등이 켜졌다.

"정지하십시오.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시오. 접근하여 건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꼭 그래야만 하는가, 밥 먹으러 와서 한두 개씩 따먹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앵두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없이 달려 있는가, 결국 안 따먹으면 다 땅에 떨어질 것을. 일주일을 생각해봤다. 주인장이 왜 그랬을까를.


그리고 어제 저녁 그곳에 다시 갔다. 여전히 앵두나무는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다.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사장 불러와" 남편이 주인장을 불러 왔고 난 큰소리로 따졌다.

"어떻게 앵두나무에 농약을 칠 수 있는 거지욧!"
사장,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회심의 미소까지 지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앵두나무에 뿌려진 하얀가루는 농약이 아니라 '녹말가루' 입니다"


사람들이 익기도 전에 따가는 게 싫어서 하얀 녹말가루를 뿌려 놓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동료1 : "이미 저 사장은 앵두에 마음으론 농약을 뿌린 거야, 다만 진짜 농약을 치면 사람들이 따먹고 죽으면 책임져야 하니까, 농약처럼 보이는 녹말가루를 뿌렸을뿐."

동료2 : "한국적 정서로 남의 것을 무조건 따먹는 사람이 많으니 농약처럼 보이는 가루를 쳐서라도 못 따가게 하는 것은 당연한 주인의 권리야."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큰 앵두나무의 앵두가 섬뜩해 쳐다보기도 싫었다. 사실 그 음식점에 다시는 가기 싫다. 나도 동료1의 말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쓰면서 그 앵두나무는 조경용으로도 식용으로도 아무한테도 환영받지 못했다.

주인장, 당신 유죄야!

덧붙이는 글 | 앵두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사진 찍다 가끔 하나씩 따먹기도 하죠. 이후로 이 집에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앵두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사진 찍다 가끔 하나씩 따먹기도 하죠. 이후로 이 집에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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