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그후, 북녘 사람들은...

한국방송공사의 <북녘음식기행>을 보고

등록 2006.06.19 07:55수정 2006.06.19 10:49
0
원고료로 응원
a 북한 주방에서 한 주부가 요리를 하고 있다(방송 캡쳐)

북한 주방에서 한 주부가 요리를 하고 있다(방송 캡쳐) ⓒ KBS

북한 역사는 1938년 12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김일성 주석이 이끌었던 항일유격대가 일제의 대토벌에 쫓겨 남만주 몽강현 남패자에서 압록강 연안 장백현 북대정자까지 혹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행군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됐다.

한국방송공사가 6월 17일 방송한 'KBS 스페셜' <북녘음식기행 - '고난의 행군' 그 후>(이하 북녘음식기행)에서 일컫는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듬해인 1995년 대규모 홍수와, 가뭄, 냉해까지 겹치면서 경제에 치명타를 입고 식량 부족 등으로 고통을 겪던 시기를 가리킨다.

<북녘음식기행>은 기획의도에서 밝힌 대로 우리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기아와 탈북으로 허덕이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북녘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먹거리를 중심으로 사계절의 생활상을 담았다. 2005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북쪽 영상제작사인 <내나라 비데오> 제작팀과 남쪽 다큐멘터리 전문제작사 (주)다큐코리아 제작팀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촬영한 프로그램이다. 이 글은 <북녘음식기행>을 보면서 느꼈던 소회 몇 가지를 정리한 글이다.

제일 먼저 눈길을 잡아당긴 건 소박하지만 깔끔한 여염집 주방 풍경이었다. 주방에는 아궁이가 두 개 있었는데 턱을 두지 않고 바닥과 수평으로 놓여 있었다. 바닥은 장판을 깔았는데 주로 앉아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도록 한 구조가 이채를 띠었다. 그 주방에서 화면 속 북녘 여인네들은 아이가 천렵을 해서 얻은 붕어로 찜을 만들고, 완두콩지짐을 만들고, 콩깨국수를 만들고, 강냉이묵을 만들었다.

분가한 아들과 딸, 손자손녀를 위해 곶감을 만든다던 강원도 안변군 천삼리 노부부의 모습은 남녘 농촌 노부부의 그것과 차이가 없었다. 수동식 기구의 손잡이를 돌돌 돌려 감 껍질을 까고 할머니를 '노친네'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의 뚝뚝한 말투와 아이들이 울면 "야! 곶감 먹어라" 해서 곶감을 간식 삼아 먹는다는 할머니의 자랑이 정겨웠다.

농지와 수로가 잘 정리된 평안북도 태천군 한드레벌의 추수 장면에서는 한 노인이 '한드레벌'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회고했다. 벌은 넓고 크지만 뙈기 땅이 많고 물대기가 곤란해서 농민들이 논 가운데 구덩이를 파고 물을 한드레(드레 : 두레박의 옛 말), 두드레 길어서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한드레벌이 됐다고 했다. 노인은 웃는 표정이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물이 한드레면 눈물이 한드레"였다던 지난날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듯했다.

묘향산으로 가을 소풍 나온 평양외국어학원 학생들은 남한의 10대들과 마찬가지로 발랄한 모습이었다. 라면사리를 넣은 찌개에 오리불고기를 해먹던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져온 묘향산 특산물 돌버섯 요리를 맛보고 탄성을 내뱉는다.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과거 경직되고 작위적으로 보였던 그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깊은 산 속 가파른 벼랑에 붙어 자란다는 돌버섯은 15년은 자라야 채취할 수 있는 귀한 먹거리로, 돌버섯 자체는 별맛이 없으나 요리를 하면 입안에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고 소개했다.


'조선 료리의 최고봉'으로 소개된 신선로를 만드는 과정이 천천히 보여지는데, 남쪽에서 쉽게 맛 볼 수 없는 최고급 요리로 인식되는 것과 달리, 북쪽에서는 혼례에서 폐백 음식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소개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남쪽에서는 서서히 모습을 감춰가고 있는 공동체 문화의 정취였다. 추수를 하든, 들놀이를 하든, 천렵을 하든, 소풍을 가든, 도란도란 모여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어우러져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는 무리 중 한 명이 연주하는 아코디언 선율만큼이나 아련함이 느껴졌다.


<북녘음식기행> 중반, 관광레저타운으로 개발되고 있는 백두산 기슭 삼지연 마을의 정경과 삼지연 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기는 북녘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 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남북 경제협력과 대북 인도주의 사업과 관련하여 해묵은 '퍼 주기' 논란이 재연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었다.

그냥, "이제 한 고비 넘겼구나, 잘 됐구나, 남녘이나 북녘이나 많이 닮았구나"하고 같이 흐뭇하면 안 될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3. 3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