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잘로메(맨 왼쪽)는 철학자인 폴 레(가운데)와 니체의 사랑을 알면서도 두 사람과 공동체적인 삼각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루체른 사진’속에서 채찍을 들고 선 루는 두 남자가 아닌 사진 밖의 우리를 똑바로 응시한다.여성신문
[박윤수 기자]예술·학술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대가들에게는 그들의 파트너이자 조력자, 이른바 ‘뮤즈’라고 불렸던 여성들이 있었다.
‘뮤즈’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학문과 예술의 여신으로 예술적 대가의 영감을 불러일으킨 파트너를 일컫는 말. 여성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프랜신 프로즈의 저서 <매혹의 조련사, 뮤즈>(푸른숲)에는 대표적인 대가들의 뮤즈였던 6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존 레논의 예술적 파트너인 오노 요코와 화가 달리의 부인인 갈라 달리, 시인 릴케와 철학자 니체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루 잘로메, 루이스 캐롤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델이 된 앨리스 리델, 사진작가 만 레이의 모델 리 밀러와 무용가 수전 패럴이 그 주인공.
저자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뮤즈상을 뛰어넘어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뮤즈들이 어떻게 예술가를 보살피고 때론 그들을 혹독하게 조련시켰는지를 사진과 일기, 편지, 자서전과 예술작품 등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되살려낸다.
저자는 ‘뮤즈는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앨리스 리델과 같은 초기의 뮤즈는 예술가에게 포착돼 그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했지만 근대의 뮤즈는 더욱 적극적이고 당당해졌다.
루 잘로메는 철학자 니체와 오랫동안 플라토닉 로맨스를 나누고, 언어학자 칼 안드레아스와는 50여 년간 잠자리 없는 결혼을 유지하며, 시인 릴케와 4년간 뜨거운 연애를 했고, 심리학자 프로이트와는 각별한 친구사이였다. 루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해 혹독한 비평을 책으로 펴내며 당대에 보기 드문 여성의 독립적인 성취를 보여준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