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정수기 뚜껑 열어보니 폐기물 '둥둥'

[제보 취재] 아파트 주민 160여명 3년간 '녹물' 마신 사연

등록 2006.06.21 14:53수정 2006.06.2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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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사가 설치한 아파트 공용정수기. 활성탄필터가 들어있는 정상적인 정수기(왼쪽)에는 맑은 물이 넘치고 있다. 하지만 공사 폐기물이 든 정수기통(오른쪽)은 녹물이 가득 들어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3년간 녹물이 공급됐다고 말하고 있다.
D사가 설치한 아파트 공용정수기. 활성탄필터가 들어있는 정상적인 정수기(왼쪽)에는 맑은 물이 넘치고 있다. 하지만 공사 폐기물이 든 정수기통(오른쪽)은 녹물이 가득 들어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3년간 녹물이 공급됐다고 말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지난 2002년 한솔건설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지은 고급아파트의 공용정수기가 필터 대신 녹슨 공사 폐기물로 채워진 채 3년 동안 사용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하지만 시공사인 한솔건설과 납품업체가 사후 조치와 보상을 10개월째 미루고 있어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이 폐기물로 가득 찬 공용정수기를 발견한 것은 지난해 8월. 아파트 설비를 점검하던 장호석(39)씨는 필터 교환을 위해 공용정수기 덮개를 열어본 뒤 깜짝 놀랐다.

활성탄필터가 있어야 할 공용정수기 속에 압력게이지와 스프링, 낡은 고무링, 종이조각 같은 공사 폐기물만 가득 들어있었던 것. 쇠로 만든 압력게이지들은 잔뜩 녹슨 채 3년간 방치된 상태였다. 필터로 정수된 맑은 물이 흘러야 할 정수통에는 짙은 갈색의 썩은 물만 고여 있었다.

공용정수기는 수돗물을 끌어들여 정수한 뒤 각 가정으로 공급하는 장치. 2002년 초부터 이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 160여명은 결국 3년간 녹물이 가득한 수돗물을 공급받아 마신 셈이다.

녹슨 압력게이지·스프링·낡은 고무링... 녹물 가득한 정수기

아파트 입주민회의 감사를 맡고 있던 장씨는 '녹물 공용정수기'를 주민들에게 알린 뒤 시공사인 한솔건설과 납품업체인 D사에 강하게 항의했다. 신고를 받은 D사에서 나온 직원은 현장을 확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겠다"며 사과한 뒤 돌아갔다.


하지만 조치를 취하겠다던 한솔건설과 D사는 10개월이나 지난 올해 6월까지 연락조차 하지 않고 있어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장씨는 "3년간 내 아이가 녹물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며 "그런데도 해당 업체는 차일피일 시간을 끌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씨에 따르면 납품업체인 D사는 사고 직후에만 직원을 보냈을 뿐, 지난 10개월간 단 한 차례 연락도 없었다.


더구나 지난 16일 사후 조치를 의논하기 위해 주민대표로 연락한 장씨에게 D사 담당자인 박아무개 과장은 "그 물 먹고 죽은 사람 있냐"며 욕설을 퍼부었다. 아파트 부녀회장인 임아무개(55)씨는 "그 회사가 주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잘못을 해놓고도 직원이 오히려 욕을 할 수 있겠느냐"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납품업체 "물 먹고 죽은 사람 있나"... 녹물 공급 주장 반박

녹물 공용정수기에서 나온 폐기물들. 압력게이지와 낡은 고무밴드, 스프링(비닐봉지 내), 낡은 종이조각이 필터 대신 들어있었다.
녹물 공용정수기에서 나온 폐기물들. 압력게이지와 낡은 고무밴드, 스프링(비닐봉지 내), 낡은 종이조각이 필터 대신 들어있었다.H아파트 입주민 제공.
한솔건설과 납품업체는 '녹물 공용정수기'가 공사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라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녹물이 공급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납품업체인 D사의 관계자는 사고 원인에 대해 "공용정수기에 쓰일 부품(압력게이지, 스프링 등)을 정수기통에 넣어놓고 마무리를 못한 채 그냥 넘어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돗물이 공용정수기를 통과하지는 않았다"며 "정수기와 함께 설치된 다른 여유수로(바이패스)를 통해 수돗물이 각 가정에 공급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용정수기가 제대로 작동 안 돼 녹물이 각 가정에 공급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 업체는 아파트 주민들의 '관리소홀'을 지적하고 있다. 공용정수기 필터는 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하는데, 왜 3년씩이나 방치했느냐는 게 D사의 항변이다.

그러나 D사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D사의 해명대로라면 아파트 공사 당시 정수기를 설치하고도 시운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또 주민 장씨는 "녹물 공용정수기를 발견한 뒤 내가 직접 수돗물 공급 통로를 여유수로로 돌려놓았다"고 반박했다. 지난 3년간 정수기 내 녹물이 가정으로 공급된 것은 틀림없다는 주장이다.

공용정수기 내 녹물이 뒤늦게 발견됐더라도 10개월이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역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D사 관계자는 "주민들이 공용정수기의 재설치를 원하지 않았고, 그 사이 아파트 입주민대표단이 바뀌는 바람에 조치가 늦어졌다"고 변명하고 있다.

주민들 '중금속 오염' 가능성 제기

한편 이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3년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일으킨 환자들이 많아 녹물에 의한 질환을 의심하는 중이다. 장씨는 "지난 3년간 주민들이 녹물을 먹고 생활한 만큼 중금속 오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아파트 대표자들은 한솔건설과 D사에 전체 입주민의 건강검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솔건설과 D사는 이를 거절하고 있어 양측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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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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