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치는 '82살 왕언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등록 2006.06.20 16:13수정 2006.06.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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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선행

"왕언니!"


우리는 그 분을 이렇게 부릅니다. 운동복을 갖춰 입고 스윙하는 모양새를 얼핏 보면 예순 정도로도 안 보입니다. 몸을 푼다며 쉬는 틈에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젊은이 못지 않습니다. 특히 양다리를 좌우로 일자가 되게 하고 가슴이 땅에 닿는 자세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도나도 다른 동작도 따라 해보려 하지만 아예 흉내조차 못 내고 주저앉는 젊은이가 부지기수입니다.

여러 차례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을 하셨습니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몰라요. 내일 카메라 가져 올게요." 새벽운동을 하는 터라 늘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를 놓고 온 아침이었습니다. "그럼 나 내일 안 온다." 주름진 얼굴에 카메라 들이대는 게 싫다며 극구 사양하시는 왕언니는 친정엄마보다도 높은 연세이십니다. 하지만 아직도 소녀 같은 순수한 마음과 열정이 있습니다.

저와 배드민턴 운동을 함께 해온 동호인이십니다. 그 분은 20년이 넘게 운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배드민턴과 요가를 하시는데 요가는 자격증까지 따셨다고 합니다. 배드민턴도 그 연령에 맞는 파트너가 없어 대회참가를 못할 뿐 실력은 금메달감입니다.

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스코어를 가끔 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김없이 우리를 일깨워 주는 분이십니다. 기억력이 우리 클럽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아주 가끔 스코어를 잊은 우리가 2점이나 속았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은 어디다 놓고 다니냐?"며 오히려 핀잔을 받기 일쑤입니다.


펄펄 날아다닌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가벼운 몸놀림이지만 막상 편을 짜려고 하면 "나, 다리가 아파서 못 뛰어"하면서 게임에 유리한 파트너와 한 편을 하려는 꾀를 내십니다. 영락없이 우리는 왕언니 편에게 지게 되고 맙니다. 배드민턴 콕 하나면 되는 경기니 우리는 지게 될 줄 알면서도 합니다. 모르는 분은 팔십 할머니에게 지는 형편없는 실력이라고 짐작하실 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다 헤어핀으로 살짝 떨어뜨리는 실력은 묘기에 가깝습니다. 스매쉬로 때리는 콕도 다 받아 넘기는 건 물론이고 말입니다. 어쩌다 한번이라도 이길라치면 "이기니까 그렇게 좋아?" 파안대소로 대꾸하니 우리들 아침을 행복하게 합니다.


노인인구가 많아진다고 하지만 제 주변에서 팔십이 넘은 나이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며 건강하게 지내는 분은 흔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팔십이면 할머니 소리 들을 연세니까요. 그런데도 그분은 할머니 소리가 어울리지 않고 왕언니가 더 잘 어울립니다. 육칠십에도 등이 굽은 분이 계시던데 이 언니는 꼿꼿한 자세는 물론이요, 다리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예쁘답니다.

"젊었을 때는 다리 예쁘다 소리 많이 들었지." 지금도 미끈한 다리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왕언니를 누가 여든 둘이라고 할까요. 건강비결을 물어 봤습니다. 꾸준한 운동이라고 단박에 말해 버리니 운동이 틀림없이 건강을 지켜주나 봅니다.

학교 운동장을 여러 바퀴 걷는 준비운동 후에 배드민턴 운동을 하신다고 하는데 요즈음 건강은 글쎄요. 객관적으로 보는 건강지수는 사십대입니다. 짐작이 가시지요? 우리 왕언니가 지금처럼 젊음을 유지하며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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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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