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28회

우주 저 편에서

등록 2006.06.20 17:13수정 2006.06.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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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짐리림이 전등을 들고 제일 앞에 섰고, 광자총을 든 일레가 바짝 붙어 뒤를 따랐다. 에질은 한 참 뒤에 쳐져서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채 그들 뒤를 따랐다. 하얀 빛은 더 이상 솟구쳐 오르지 않았지만 불꽃은 여전히 얕게 일렁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풀숲을 헤지던 짐리림이 전등을 이리저리 비추어 보더니 우뚝 멈추어 섰다.

-무슨 일입니까?


일레가 광자총을 꽉 잡으며 짐리림의 앞으로 나섰다가 역시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그곳에는 붉은 액체를 흘리며 여러 조각이 난 채 죽은 생명체의 시체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이게 다 뭔가.

뒤 늦게 이 광경을 본 에질도 질겁하며 소리쳤다.

-아까 나와 마주친 생명체 입니다! 그런데 왜 다 죽어 있지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짐리림이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짐리림은 전등을 비추어 죽은 생명체를 비추고서는 자세히 살펴보았고 불이 타오르는 무더기를 다시 한번 관찰해 보았다.


-일레

-예

-광자총을 바닥으로 한번 쏘아보지 않겠나? 최고 출력으로 쏘아 보게.

일레는 짐리림의 요구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각도를 크게 잡고 바닥에 광자총을 겨누어 쏘아보았다. 광자총에서 하얀 불꽃이 작렬하며 땅에 깊은 홈을 만들어 내었다.

-이거! 아까 그 번쩍이던 불빛은......

-그렇네. 바로 광자총의 불빛이었어.

짐리림 일행은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겨우 불이나 피우는 생물체들이 광자총을 만들어 쏘아대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짐리림은 탐사선에서 나온 대원들이 한 짓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자루의 광자총은...... 금방 고쳐서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고쳐 쓸 수 있었다 해도 아누가 왜 이런 일을 시키죠?

일레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매복을 두려워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짐리림은 급히 전등을 끄고서는 손짓으로 서둘러 이 곳을 피해가자고 지시했고 일레와 에질은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을 더듬어 풀숲을 빠져 나간 후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야...... 에질.

-예

-저 생명체들이 두 발로 서 있고 불을 피울 수 있다면 말이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이미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바닥을 보니 이렇다할 물건 따위는 없더군요. 아직 저 생명체가 가진 문명화 수준은 아주 미미할 뿐입니다.

-그게 아니라, 저 생명체들이 혹시 탐사선을 습격해 그 안의 물건들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이네.

-광자총은 설명이 안 되지요.

짐리림의 말에 일레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를 죽이러 보낸 온 놈들이 착오라도 일으킨 셈인가?

-그것도 이상해, 설사 아누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우리를 죽이러 누군가를 보내었다고 해도 두발로 서 있다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가이다의 생명체를 우리로 착각하고 공격을 했을까?

-그야 모를 일이지요.

짐리림과 에질, 일레는 결국 끝도 모를 논쟁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건 아누답지 않아. 우리의 실수를 즉시 처형으로 되갚는 짓 따위가 얼마나 저열하고 치졸한 짓인지는 아누가 아닌 재미로 탐사선을 탄 멍청한 정치가 보더아 까지도 아는 일 아닌가. 아니 하쉬행성의 그 누구도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하지 않을 거야.

보더아는 하쉬에서 고위 공직자로서 명성을 누리던 중 단순히 흥미로 탐사선에 지원한 자였다. 에질은 보더아의 얘기가 나오자 웃음을 터트리며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 보더아란 자가 냉동에서 깨어나 처음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아, 에질 난 방금 하쉬를 떠난 일을 후회했던 참 이었네’이럽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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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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