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29회

우주 저 편에서

등록 2006.06.22 17:56수정 2006.06.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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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리림과 일레는 그 말에 긴장을 풀고 크게 웃었다. 자신의 농담으로 인해 분위기가 밝아지자 에질은 가슴을 쭉 내밀고 뚱뚱한 보더어의 뒤뚱거리는 걸음을 흉내 내기도 했다. 한바탕 폭소가 지나간 후 일레가 웃음을 거두며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정리를 하자면 결국 저들은 하쉬의 법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우리를 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먼 곳으로 피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하지만 탐사선에는 행성 탐사차량이 2대나 실려 있네. 그걸 이용해 우리를 추적한다면?

-탐사차량은 말 그대로 탐사용입니다. 이동할 때마다 '우웅'하는 소음이 나지요. 그걸 알기에 안 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체 알 수 없는 일투성이군. 아, 누가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지? 골수 환경론자가 여기 와서 하는 짓이 가이다의 별 것 아닌 생명체들을 학살하는 것이었다니.

다시 날이 밝기까지 그들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깐 동안 눈을 붙인 짐리림 일행은 어제 어떠한 생명체가 학살당했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잠깐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일레는 '우웅'하는 소음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탐사차량의 소리였다.

-어디든 빨리 몸을 숨길 곳을 찾아봅시다.


에질이 겁을 먹고 소리쳤지만 짐리림과 일레의 의견은 달랐다.

-차라리 잘되었다. 결국 우리를 찾아내 어찌 해보겠다는 건데, 탐사차량을 따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탐사선을 치러가자.

-예?

-탐사차량에 탄 이들이 남은 한 정의 광자총을 들고 있을 것 아닌가? 탐사선에는 이렇다 할 무기조차 없을 것이다.

에질은 그 말에 정색을 했지만 짐리림과 일레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짐리림 일행은 탐사차량의 소음을 뒤로 하고 탐사선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거 방향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

짐리림 일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빠지기 시작했다. 먼저 급하게 빠져 나오느라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데다가 기기가 파악하는 가이다의 자극(磁極)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원체 이동한 거리가 길지 않아 그들은 힘겹게 탐사선이 불시착한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게 다 뭔가.

탐사선이 있는 지점으로 다가간 짐리림 일행은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탐사선 주위에는 긴 쇠말뚝이 둘러져 박혀있었고 그 사이에는 시뻘건 불빛이 간격을 메우고 있었다.

-고압 전류 울타리를 탐사선 주위에 쳐 놓았군요.

공중을 나는 가이다의 생물 하나가 울타리 위를 선회하다가 순식간에 타서 없어지는 광경을 보고서 에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압전류 울타리는 공중은 물론 땅 밑으로도 상당부분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설마 우리가 습격해 온다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인가?

-그래도 저건 과한 면이 있습니다. 마치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를 것 같은데요.

일레는 광자총을 꼭 움켜잡으며 울타리를 노려보았다.

-탐사차량이 돌아오면 문이 열릴 테니 그 틈을 타서 습격해 보면 어떨까요?

일레의 제안은 곧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광경이 포착된 뒤 금방 철회되었다. 구데아가 서너 명을 대동하고 그들이 처음 보는 길쭉하고 시커멓게 생긴 물건을 설치해 놓고서는 불을 붙이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 떨어진 가이다의 수목에 불이 붙었다.

-맙소사, 그 사이에 대체 뭘 만든 거야? 아누는 여기서 정말로 전쟁이라도 벌일 참인가?

어처구니가 없어진 짐리림이 중얼거리자 일레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갑자기 하얀 빛이 주위를 감싸 안았다.

그 순간 남현수는 몽롱한 정신에서 퍼뜩 깨어나 눈앞에서 리모콘처럼 생긴 스틱을 만지고 있는 마르둑의 노란 눈과 마주쳤다. 남현수는 자신이 꿈이라도 꾼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남현수가 보았던 일들은 마치 방금 전 일어난 일마냥 생생히 뇌리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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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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