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에선 연애결혼이 없었다?

중국 난카이대학 위에춘쯔 교수의 국내 논문 소개

등록 2006.06.22 08:32수정 2006.06.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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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에서는 연애결혼이 대세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중매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적지 않다. TV에서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청년과 결혼하는 ‘회장댁 따님’에 관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고, 호텔 커피숍 같은 곳에서는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나온 듯한 결혼 적령기 남녀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한민족의 경우에도 그랬겠지만, 과거 중국의 경우에는 중매인이 없으면 결혼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중매결혼이 사실상 강제적이었다고 한다. 중국 난카이대학 위에춘쯔(중국 중세사 전공) 교수가 국내 역사 학술지인 <사림> 제23호(2005. 6)에 발표한 '중매인과 당대의 혼인'이라는 논문은 과거 중국의 중매결혼 제도에 대해서 흥미진진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위에춘쯔 교수의 논문을 요약한 뒤에 간략한 논평을 덧붙이기로 한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중매인들이 활약

중매인들은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활약상을 보였다. 매작(媒妁)·행매(行媒)·매(媒) 등으로 불린 중매인들은 진나라(BC 221~206) 이전부터 돈벌이를 목적으로 ‘결혼시장’에 나섰다. <시경> <주례> <맹자> <관자> <전국책> 등의 고문헌에 중매인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시경> ‘남산’에 따르면, “아내를 얻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중매가 없으면 안 되네”라고 하였다. 이러한 중매결혼은 청나라(1616~1911년) 말기까지 보편적으로 행해졌다.

위에춘쯔 교수는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도 당나라(618~907년)의 사례를 통해 중매결혼이 얼마나 강제성(사실적 측면)을 띠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당 태종이 627년에 반포한 혼빙조서(婚聘詔書)에서는 중매인의 직무가 거론되었다. 또 <당률소의>에는 “시집가거나 아내를 얻을 때에는 중매인이 있다”라는 표현과 “혼인할 때에는 반드시 중매인을 세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당률소의>는 현존하는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법전이다. 이 책은 당나라의 법률인 당률(唐律)에 대해 주석(疏議)을 붙인 것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주석도 법적 효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나라에서는 중매결혼이 법적으로 강제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중매결혼이 법적으로 강제

당나라 때에 중매결혼이 사회적으로 강제되었다는 점은 여러 문학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옹도라는 사람이 쓴 '감흥'이란 시에서는 중매 없이 결혼할 수 없는 당시의 풍조를 알 수 있다.


가난한 집 딸은 밉지 않게 생겨도
인연 맺어 시집가기 더디네
명성 있는 이 찾아오기 기다려도
소개해 주는 사람 없어 때를 놓치듯이
-<전당시> 권 518


그리고 왕백정의 '첩박명'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박명한 저는 머리가 세도록
해가 바뀌고 바뀌어도 결혼하지 못해요
(중략)
중매하는 이들에게 업신여김만 당해요
-<전당시> 권 801


위와 같이 당대(唐代) 법률이나 문학 작품을 통해, 중매결혼이 보편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 권력에 의해 강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매결혼이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연애결혼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중매결혼이 강제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연애결혼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의 사회적 출세는 상당한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당시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중매 형식을 빌려 연애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매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은 상당히 낮았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매결혼이 강제적이었기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라도 중매 형식을 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왜전>에 보면, 이왜(李娃)라는 여인은 수년간 동거하던 남자와 혼례를 올릴 때에 중매인의 중개를 미리 거쳤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당나라를 포함한 과거 중국에서 중매결혼이 상당히 엄격하게 지켜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년간 동거한 사람끼리도 형식적으로는 중매결혼

이상이 위에춘쯔 교수의 논문을 요약한 내용이다. 그럼, 과거 중국 사회에서 이러한 중매결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사회통합 및 사회통제라는 2가지 관점에 국한하여 이 문제를 음미해 보도록 한다.

인민들이 일반적으로 중매결혼을 했으며 그러한 풍조가 사회적으로 강제되었다는 사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오랫동안 통합될 수 있었던 원인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거대한 인구와 영토를 가진 중국이 오랫동안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강제적인 중매제도를 통해 사회가 개인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제도는 인간의 성적 욕구나 기본적인 의식주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 결혼제도를 사회적 시스템 안에 구속함으로써 개인을 사회제도 속으로 편입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중매인은 대개 사회적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의 중매를 거치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었다는 것은, 과거 중국인들이 결혼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중매제도가 거대한 중국을 통합하는 데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중매제도는 개인을 사회에 묶는 기능

한편, 이 문제는 동아시아 사회통제 방식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구를 일정 정도 제한하는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개인의 욕구를 무한정 승인하면 사회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공익을 얼마나 잘 조화시키느냐가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과도하게 억제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방식이 아닐 것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을 상대로 남녀 분반을 실시한 것도 과도한 사회통제의 사례가 될 것이다.

최선의 방식은, 소년·소녀가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에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선(線)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적절한 사회적 제약은 가해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욕구를 최대한 긍정하면서 최소한의 사회적 제약만을 가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일 것이다.

외적을 방어하고 경제를 운용하기에도 바쁜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까지 일일이 간여한다는 것은 국가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처럼 개인에 대해 과도한 통제를 가하는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층이 자신이 있다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강제적인 중매제도는 사회통제의 수준 반영

과거 중국의 경우처럼 성적 욕구나 의식주와 관련된 개인의 결혼제도에 대해서까지 국가나 사회가 지나치게 간여하는 것은 인간의 자율성을 심히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효율성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유교사회의 사회통제 수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중국의 강제적인 중매결혼 제도는 중국 사회의 통합 요인 중 한 가지를 설명해 주는 것인 동시에, 인간의 욕구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특징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사회통제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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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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