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 전 경찰청장(자료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6일 서울성북을 재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 신청을 하면서 정치를 시작한 허준영(55) 전 경찰청장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다.
'KFC 할아버지'. 중앙경찰학교장으로 재임하던 지난 2002년 학생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아닌 게 아니라 허 전 청장과는 썩 어울리는 이미지다. 모자와 흰 양복을 입고, 한쪽 팔에 지팡이를 걸면 영락없는 KFC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듬직한 체구, 게다가 안경까지 걸친 그에게 더 없이 잘 어울린다.
중앙경찰학교의 한 졸업생은 허 전 청장에게 보낸 쪽지에 직접 "정겨운 KFC 할아버지같은 포근한 분"이라고 쓴 적이 있다. 물론 당시 50대 초반이던 허 전 청장에게 이 별명은 조금 충격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KFC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경찰 내에서 허 전 청장은 아직도 존경받는 선배다. 게다가 '조직을 위해 외풍(검찰·청와대)을 막다 희생된 불운한 지도자' 이미지도 남아있다. 비록 불미스런 일(농민 사망사건)로 첫 임기제 청장의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여전히 인기가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만한 청장 어딨나" 기대에 "야당 초선이 뭘" 우려도
그의 정계 진출에 많은 경찰이 기대감을 나타내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경찰 조직의 한 내부게시판에는 "허 전 청장과 같은 분이 정계로 많이 진출해 경찰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 올라왔다. 또다른 하위직 경찰관은 "그만한 역대 청장이 어디 있었느냐"며 "당선돼서 경찰조직의 발전을 위해 기여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경찰이 허 전 청장의 정치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또다른 이유는 갈수록 파워게임에서 밀린다는 판단 때문이다.
허 전 청장이 현직 시절 강하게 밀어붙이던 '수사권 조정'은 그가 떠나자 구심점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최근엔 경찰의 고민이 한 가지 더 늘었다. 대검찰청이 2007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통합형사사법체제'가 심각한 검찰의 권력집중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다.
경찰의 기대는 이처럼 바닥까지 떨어진 위상을 허 전 청장이 다시 올려줄 것이라는데 있다.
반면 우려의 시선도 적잖다. 경찰청 소속 한 경찰관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서 당선돼 봐야 야당 초선의원일 뿐"이라며 "도대체 무슨 힘이 있겠냐는 게 일부 경찰의 생각"이라고 냉소적인 내부 반응을 전했다.
그는 또 허 전 청장의 야당 국회의원 당선이 "자가당착이자 모순"이라고 말했다. 허 전 청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치안비서관, 서울경찰청장을 거쳐 경찰 총수를 지냈다. 정부 최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혜택을 받아온 사람이 돌아서서 칼을 든다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얘기다.
또다른 경찰관도 "허 전 청장은 어쩔 수 없는 정치꾼일 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