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쪽 사람들에겐 이주성이 눈엣가시"

청장의 '돌연 사임'으로 뒤숭숭한 국세청... '포스트 이주성'의 방향은

등록 2006.06.28 17:28수정 2006.06.2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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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국세청장
이주성 국세청장오마이뉴스 권우성

"아이고…. 내가 무슨말을 하겠어요. 여러 말들이 나오긴 하던데…."

국세청 고위간부는 말을 아꼈다. 그는 "그동안 부동산 투기나 외국자본 등 정말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라면서 "안타까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국세청이 뒤숭숭하다. 지난 27일 이주성 청장의 '돌연 사임'이 알려지면서다. 28일 서울 종로구 국세청의 간부와 직원들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기자와 안면이 있는 간부들은 전보다 말하기를 꺼렸다. 오히려 여론의 향방에 관심을 더 보이기도 했다.

지방청의 한 고위간부는 "청장은 (부동산) 투기와 탈세를 두고 입장이 단호했다"면서 "그 쪽 사람들(부유층) 입장에선 (청장이) 눈엣가시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세와의 전쟁] 국세청은 '경제검찰'

지난해 4월 11일 밤. 서울지방 국세청 조사국 직원들이 강남의 대형 유흥업소에 들이닥쳤다. 12일에는 일부 중견건설업체와 사채업자에게도 조사관들이 파견됐다. 압수수색은 전격적이었다.

'이주성의 국세청'이 내놓은 첫번째 작품은 '탈세와의 전쟁'. 이 청장 취임 한 달만의 일이었다. 같은 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이 전 청장은 '경제검찰로서의 국세청'을 분명히 했다. 그의 말이다.


"최근 기업과 가계·정부가 힘을 모아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변칙적으로 소득을 탈세해서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어요."

그는 '위화감을 조성하는 계층'으로 고소득 자영업자를 꼽았다. 또 들어보자.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높은 소득을 올리고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있다. 엄정하게 과세하고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할 겁니다."

국세청의 한 간부는 "청장 스스로 '국민적 위화감' '건전한 경제질서 확립'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었다"면서 "대국민 서비스를 보다 강조했던 전임 청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때 국세청의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받은 사람은 모두 270명이었다. 대형 유흥업소를 비롯해 부동산투기혐의자, 악덕고리사채 업자 등이 들어갔다.

지난해 8월 31일 이주성 국세청장(왼쪽)이 한덕수 경제부총리, 추병직 건교부 장관과 함께 정부의 부동산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31일 이주성 국세청장(왼쪽)이 한덕수 경제부총리, 추병직 건교부 장관과 함께 정부의 부동산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투기와의 전쟁] "부동산 못 잡으면 집으로 가겠다"

부동산 투기 혐의자 등에 대한 세무조사는 작년 8.31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더욱 힘을 발휘했다. 대책 발표 전부터 별도의 투기 가수요 대책반을 만들기도 했다.

또 정부가 8.31 대책에 서울 송파거여지구에 대한 신도시 건설을 발표하자마자, 국세청은 이 지역에 대한 세무조사 계획을 동시에 내놓았다. 투기 지역에 대한 세무조사가 사후약방문 아니냐는 그동안의 지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주성 전 청장은 정부 대책 발표 전날 한덕수 경제부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세무조사 실시를 미리 알리기도 했다.

물론 이같은 국세청의 행보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내부에서도 업무 과중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본청을 비롯해 조사국 간부와 직원들은 연일 계속되는 각종 세무조사에 주말을 내놓아야 했다.

서울 강남 등 부동산 업계 일부에선 "이주성이 얼마나 갈 것 같으냐"는 등의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이 전 청장은 특히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국세청이 예정에도 없던 각종 기획 세무조사 등을 추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초부터 서울 강남 아파트를 비롯해 부동산 값이 폭등하자 "부동산투기를 잡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오랜만에 기자들과 만난 이 전 청장의 말을 들어보자.

"솔직히 올해 여러가지 일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4개월동안 부동산 투기에 매달려야 했고, (외국계) 펀드 세무조사에 현금영수증제도, 여기에 종합부동산세를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여러가지로 준비하면서 나한테 호되게 혼난 직원들도 있었고…. 직원들이 참 고생 많았지요."

'포스트 이주성'의 국세청은...

이 전 청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남 아파트값 등은 큰 변동이 없었다. 오히려 이른바 '버블 세븐'이라 불리는 투기 지역은 일부 오름세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어진 5.31 지방선거의 여당 참패도 이 전 청장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거 참패 원인이 여당의 부동산·세금 정책 때문이라는 보수언론의 보도 역시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최근 여권 일부에서 경제부처 개각설도 나왔다.

국세청 한 고위간부는 "국세청은 정부의 정책을 세우는 곳이 아니라 집행하는 곳"이라면서 "세무조사가 투기를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28일 청와대는 이주성 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후임 인선은 청문회 등을 고려해 신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군표 현 차장 등이 차기 청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고소득 자영업자 등의 탈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 등 외국자본에 대한 과세 역시 마찬가지다. '포스트 이주성'의 국세청이 참여정부 후반기에 어떤 경제검찰의 모습을 보일지 국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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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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