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밭? 개망초꽃밭! 묵정밭!

달내일기(17) - 메밀꽃밭인 줄 알았더니, 세상에...

등록 2006.07.03 14:00수정 2006.07.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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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


a 멀리서 보면 밭에 영락없이 메밀 등의 작물이 자라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밭에 영락없이 메밀 등의 작물이 자라는 듯하다 ⓒ 정판수

문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기억의 보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한 구절이 떠오를 것이다. 이 구절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봉평을 두 번이나 다녀온 나로선 당연히 달내마을에 이사 온 뒤 메밀꽃밭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른들로부터 이곳에서 메밀을 심는 사람은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런데 어제 아침 산책길에 멀리서 바라보는 내 눈엔 분명히 메밀꽃밭이 들어왔다. 봉평 가서 ‘이효석 문화마을’ 가서 본 바로 그 메밀꽃이었다. ‘어른들이 설마 거짓말?’ 하다가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아니었다, 메밀꽃이.

a 제법 가까이 가서야 메밀꽃이 아니라 개망초꽃임을 알게 되었다

제법 가까이 가서야 메밀꽃이 아니라 개망초꽃임을 알게 되었다 ⓒ 정판수

세상에! 바로 메밀꽃을 대신하여(?) 밭을 온통 메우고 있는 건 달걀꽃(개망초꽃)이 아닌가. 개망초는 농부들이 싫어하는 잡초 중 하나다. 이 녀석은 어릴 때는 덜 신경 쓰이지만 가만 놔두면 꽃대가 밭의 작물을 제치고 위로 마구 솟아오른다. 당연히 하늘의 햇빛은 물론 땅의 거름까지 독차지한다.

그때 마침 논의 물꼬를 보러 나온 반장 어른께 여쭤 보았다. 왜 밭에 작물을 심지 않고 묵혀둬 온통 잡초가 무성해졌냐고. 대답은 의외로 빨리, 그리고 간단하게 나왔다.

“갈 사람이 누 있능교?”
그러니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꿀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그곳만이 아니었다. 몇 도가니(산골에서 일컫는 자그마한 논이나 밭의 한 덩어리)가 칡넝쿨, 으름덩굴, 개망초 등의 잡초로 뒤덮인 묵정밭이었다.


a 재작년까지 밭이었던 곳이 칡넝쿨과 잡목으로 하여 확 변했다

재작년까지 밭이었던 곳이 칡넝쿨과 잡목으로 하여 확 변했다 ⓒ 정판수

시골에 묵정밭이 생기는 이유는 대략 둘로 압축된다. 도시 사람이 투기 목적으로 사 둔 논과 밭을 그대로 묵혀두었을 때와 시골 사람의 일손이 딸려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둬야 할 경우다.

달내마을에서 농사짓는 어른들 중 가장 어린(?) 사람이래야 예순 여섯이다. 이분들이 그 나이 그대로 있을 리 없으니 해가 갈수록 묵정밭은 늘어만 갈 것이고, 밭은 곧 황폐해져 작물을 심을 수 없는 야산이 돼 버릴 것이다. 불행하게도 전에는 논과 밭이었던 곳이 대밭이 되거나 아예 잡목이나 칡넝쿨로 뒤덮인 야산이 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a 이 멋져 보이는 대밭이 5년 전에는 감자랑 고구마가 자라던 밭이라니...

이 멋져 보이는 대밭이 5년 전에는 감자랑 고구마가 자라던 밭이라니... ⓒ 정판수

자식들 중 혹 돌아와 농사를 이어 지을 사람이 있는가 하는 나의 물음에 반장 어른의 대답은 역시 빨리 나왔다.

“누 집이든 하나도 없소.”

달내마을 뿐 아니라 시골의 사정은 대부분 다 이렇다. 마지막 농부들이 사라지면 논과 밭도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러면 혹 나처럼 철모르는 도시인이 지나치다가 개망초밭을 보고 메밀밭으로 오해해서 아름답다고 감탄할지도 모르고….

묵정밭의 개망초꽃

개망초꽃은 꽃의 모양이 둘레엔 흰자가, 속에는 노란자가 있는 달걀 모양이라 지역에 따라 달걀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름은 된장국 냄새가 나지만 실제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에서 달 ‘月’과 내 ‘川’의 한자음을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에서 달 ‘月’과 내 ‘川’의 한자음을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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