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긴장감... 재밌는 중동 이야기

[서평] 톰 클랜시와 스티브 피체닉의 < OP 센터 파견대>

등록 2006.07.04 18:16수정 2006.07.04 18:19
0
원고료로 응원
‘재밌는 이야기’의 특징은 전문분야의 난해함을 흥미로운 만담처럼 술술 풀어낼 줄 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대폭 낮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법의학’으로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스카페타 시리즈’나 ‘링컨 라임 시리즈’처럼 일단 전문 분야가 대중과 소통이 가능해야 하며 청산유수처럼 이야기가 술술 풀려야 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군사적’인 것들을 다루는 톰 클랜시는 어떨까?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렇기에 해외에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소수의 남성 마니아들이 추종하는 작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새롭게 소개된 작품 < OP 센터 파견대>는 톰 클랜시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리듬을 탄 댄서처럼 적당한 강약을 조절하며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톰 클랜시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OP 센터 파견대>는 쿠르드족의 급진파들이 터키와 시리아의 경계에 있는 아타튀르크 댐을 파괴하는 ‘테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중동은 어느 곳이든 물이 귀한 곳이다. 물 때문에 전쟁을 벌일 정도인데 쿠르드족의 테러는 그러한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예상대로 테러는 중동의 평화, 나아가 유럽의 평화까지 위협하는 폭풍의 핵이 된다. 터키와 시리아의 대립으로 시작된 폭풍이 이란과 이라크, 그리스와 이스라엘, 쿠웨이트와 러시아 등까지 끼어 들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OP 센터(미 국가위기관리센터)의 그들도 이러한 테러의 영향력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발 빠르게 상황을 체크하려 하지만 성급한 행동으로 오히려 인질이 되고 만다. < OP 센터 파견대>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하게, 주인공들이 테러집단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셈인데 이 일로 인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주인공들이 첨단 무기까지 빼앗겼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급해진다. 테러범에게 인질과 무기까지 빼앗겼으니 경찰국가를 자부하던 미국으로서는 망신살이 뻗쳐도 단단히 뻗친 셈이다. 하기야 망신이 무슨 문제인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미국은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쓰게 된다. 그럼으로써 < OP 센터 파견대>의 이야기는 빨라지고, 보는 사람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특유의 흡인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흡인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 OP 센터 파견대>의 특징은 군사 분야에 대한 설명이 쉽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의학’을 다룬 시리즈들처럼 사건을 풀어가면서 생소한 분야를 알아 가는 재미가 있다. 또한 외교적인 것들, 특히 중동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외교적인 노력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알아 가는 것은 흡사 ‘중동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광범위한 내용들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재미는 개성 강한 주인공들의 마찰음에서 나온다. < OP 센터 파견대>에는 미국의 극우파부터 온건파까지 다양한 특징을 지닌 인물들이 나오며 사회적으로는 출세 지향형, 명예 지향형, 실리 추구형 등 각양각색의 성격을 지닌 이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작품의 색깔을 다채롭게 변화시킨다. 뚜렷한 색을 지닌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개성을 펼치고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재미는 다른 곳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제 맛을 낼 수 있도록 만든, 톰 클랜시의 능숙한 ‘강약조절’이다. 톰 클랜시는 사건과 관련해서는 짧고 굵은 묘사로 긴장감을 조장하다가도 막다른 골목에서는 느닷없이 긴 이야기를 풀어놓는가 하면 허를 찌르는 장면들로 긴박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청룡열차를 타고 내려갔다 올라왔다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톰 클랜시는 ‘장면전환’만으로도 활자들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 OP 센터 파견대>는 즐거움만 강조하지 않는다. 일종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놓고 있다. 그것은 바로 ‘테러’로 인한 것이다. 톰 클랜시는 국가적인 색채가 짙다는 점에서 예상했던 것과 달리 테러를 한 쿠르드족을 비난하지 않는다. 테러, 그 자체를 비난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알라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테러를 하지만 그 피해는 알라를 믿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댐을 파괴하는 테러만 해도 그렇다. 그 피해는 민중에게 향한다. 이유 없이 수재민이 되고, 이유 없이 죽어야 한다. 그것이 정말 맞는 것일까? ‘우리’의 민중을 위해 다른 ‘민중’을 죽인다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 OP 센터 파견대>는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후반부에 이르면 특유의 국가주의적인 색채 탓인지, 또한 미국의 ‘경찰국가’ 역할을 옹호하는 탓인지 미국이 앞장서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는 것이 모처럼 반갑게 맞이한 질문을 흐리게 만드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도 미국인인 것을. 톰 클랜시는 그나마 솔직하게 말하고 있으니 불편함은 덜하다. 아쉬움을 느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넘기면 된다. 재밌는 이야기를 듣기 위한 일종의 수고 정도로 말이다.

분량은 500페이지를 훌쩍 넘길 정도로 꽤 두툼하다. 하지만 재미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오히려 두툼한 분량이 반가울 수 있다. 장시간의 영화도 재밌으면 ‘금방’이듯이 < OP 센터 파견대>도 다양한 볼거리 덕분에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록 ‘수박 겉핥기 식’일 지라도 낯선 분야의 것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어찌 거부하랴. 사막에서 만들어진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 생각보다 화끈하고 유쾌하다. 기대치를 높여도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알라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했습니다.

OP 센터 파견대

톰 클랜시.스티브 피체닉 지음, 신두석 옮김,
노블하우스,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