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동참한 주교... "종교인이 왜"

종교 문제로 번진 필리핀 탄핵 사태

등록 2006.07.05 15:21수정 2006.08.0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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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요 대통령의 두번째 탄핵안을 둘러싸고 필리핀 정국은 때아닌 종교와 정치의 분리문제로 시끄러워지고 있다.

필리핀 야당은 지난해 6월 아로요 대통령에 대해 '부정선거'와 '부정부패', 그리고 '헌법유린' 혐의로 탄핵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탄핵안은 필리핀 하원에서 법안을 상원으로 상정하는데 필요한 의원 79명의 동의를 얻지 못해 자동폐기되었다.

그리고 지난 지난 6월 26일 반 아로요 진영과 야당은 같은 혐의에 '반대파 정적들에 대한 살해혐의'까지 추가해 대통령 탄핵안을 제출했다. 지난 6월 탄핵안을 제출한 것은 '1년 이내 같은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는 헌법조항에 따른 것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볼 때 이번 탄핵안도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에도 훨씬 못 미치는 하원의원 26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탄핵안이 지난해와는 다른 점이 있다. 데오그라시아스 이니구에즈란 마닐라 칼로오칸 주교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1년만에 또다시 탄핵... 주교가 탄핵안 강력 지지

a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 AP=연합뉴스

데오그라시아스 주교는 탄핵안 제출 당시 하원에 동행했을 정도로 탄핵안에 대한 강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는 "아로요 대통령이 명백한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하게 하야를 촉구했다.


이는 지난해 탄핵안 제출당시 주교들이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했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어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 변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낳고 있다.

필리핀 가톨릭 주교회의는 "데오그라시아스 주교의 입장이 주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다"고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주교회의는 이 과정에서 데오그라시아스 주교를 변호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주교회의 의장인 앙헬 락다메오 대주교가 "데오그라시아스 주교가 주교회의 원칙이나 국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교황의 칙령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밝힌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아로요 대통령 측은 대통령국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데오그라시아스 주교의 입장이 주교단의 입장과 다르다"면서 "이번 탄핵안은 도덕적 문제가 아닌 평범한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는 다른 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하원도 "교회지도자들의 정치개입이 오히려 필리핀 국민들에게 분열을 조장하고 부정적인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일부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정치개입을 비판하는 분위기다.

특히 동사말주의 마르셀리노 리바난 의원과 레이테주의 에두아루도 벨로소 의원은 "교회는 국민들에게 연합과 사랑을 실천하도록 해야하는데 오히려 분열과 분노를 촉발하고 있다"며 데오그라시아스 주교의 행동을 '반국민적 빨치산 운동'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170만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지방정부 연합회도 "요즘 일부 교회들과 지도자들이 마치 스페인 지배당시 교회처럼 정치에 간섭하고 있다"며 비난에 가세했다.

'피플파워' 이끌어온 종교의 힘

사안이 일파만파로 전개되자 필리핀 가톨릭 주교회의는 오는 8일 주교회의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주교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데오그라시아스 주교와 그를 따르는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정치와 종교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은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나라로 한때 아시아에서 유일한 가톨릭 국가였다. 이는 스페인이 300년이 넘도록 필리핀을 강점하면서 가톨릭 선교에 중점을 둔 데 기인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은 가톨릭을 전하며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현지 종교들을 흡수하면서 토착화에 나서 필리핀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현재 한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의 84%가 가톨릭 신자이며 이슬람교 5%, 개신교 5% 등이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그동안 기톨릭 교회는 필리핀 역사의 큰 전환점들에서 큰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장기독재로 악명을 높혔던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했던 1986년의 '피플파워'로 불리는 민중혁명 당시에 가톨릭 교회는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었고 코라손 민주정부를 출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사망한 하이메 신 추기경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져 생전에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같은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은 필리핀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죠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피플파워2'라고 불리는 국민항쟁으로 몰아내는 역할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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