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통신-제주] 자갈 속에 생명이 있는 숲, 곶자왈

등록 2006.07.11 14:17수정 2006.07.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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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의 둘째 날. '에위니아'라는 생소한 이름의 태풍이 일본 오키나와 섬까지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에 장시간 표류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 날 제주도는 의외로 차분한 날씨를 보였습니다.

조금 강한 바람만이 태풍의 존재를 알렸을 뿐, 페리호 출항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주도에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든 일행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요.

오늘은 좀 여유가 있는 날입니다. 어제(7월 8일) 개소식을 한 '곶자왈 작은학교' 문용포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곶자왈'이라는 말이 생소해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용암이 흘러가다 굳으면서 깨어진 바위 무더기들 위로 만들어진 숲을 '곶자왈'이라고 하더군요. 어원을 따져보면 '곶'은 '숲'이라는 뜻이고 '자왈'은 '자갈'을 뜻한다고 문 선생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풀어 쓰면 '자갈 속에 생명이 있는 숲'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곶자왈은 제주도 생태의 상징

a 제주의 곶자왈은 세계적인 식물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교래 곶자왈.

제주의 곶자왈은 세계적인 식물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교래 곶자왈. ⓒ 곶자왈사람들 제공

이름이 예뻐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제주에서의 '곶자왈'은 야생식물과 야생동물의 천국이기도 하고 거대한 지하수 저장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제주도 생태의 상징이기도 하답니다. (카페주소 : http://cafe.naver.com/gotjawal)

문 선생님이 처음 데려간 곳은 숲 속이나 바닷가가 아니라 폐교로 만들어진 작은 갤러리였습니다. 제주도를 사랑했던 한 사진작가가 제주도의 색깔을 사진에 담아 전시해 놓은 곳인데, '김영감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김영갑씨는 루게릭 병에 걸려 작년에 세상을 떠났지요.

사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사진을 감상하면서 제주도의 색깔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주도를 끔찍이도 사랑했다는 문 선생님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 사진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a 제주의 곶자왈은 생명수인 지하수를 빨아 들이는 함양지대다.

제주의 곶자왈은 생명수인 지하수를 빨아 들이는 함양지대다. ⓒ 곶자왈사람들 제공


a 제주의 곶자왈은 세계적인 식물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교래 곶자왈.

제주의 곶자왈은 세계적인 식물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교래 곶자왈. ⓒ 곶자왈사람들 제공

갤러리에서 나와 일행이 찾은 곳은 '아부오름'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영화 <이재수의 난>이 촬영되기도 했답니다. 10년이 훨씬 넘은 어느 8월로 기억하는데, 제주도에 한 달 정도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백록담의 광경을 보았지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백록담 주변에 구름이 깔렸고, 느낌으로만 '여기가 백록담이구나', 할 때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가 백록담에 앉아 있던 구름을 데리고 사라지면서, 백록담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짧은 순간의 백록담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다시 구름으로 덮이기 전까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드러난 백록담을 보며 탄성이 절로 났고, 입을 다물지 못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부오름'에 오르며 10년이 훨씬 넘은 기억이 떠올랐던 건, '아부오름'도! 그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골프장으로 몸살 앓는 제주, 1년에 100만평의 숲이 없어진다

50여 미터의 나지막한 자체 높이에 둘레가 약 1.5km, 자체 높이보다 더 깊이 파인 원형의 분화구(78m)는 백록담을 그대도 닮았습니다. 문 선생님과 일행은 1.5km의 둘레를 30분 정도 걸으며 오름의 역사를 몸으로 느꼈답니다. 아이와 같이 해맑은 문용포 선생님의 표정은 제주도 자연이 만들어낸 상징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수도 없이 오름을 올랐다는 문 선생님은 저의 우문에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글쎄요. 어떤 오름이 가장 마음에 드냐고요? 처음엔 오름에 다니면서 자랑삼아 아는 척을 많이 했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오름 하나하나가 역사이고, 거기에 설명을 붙인다는 건 인간의 오만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모두 저에게 소중한 오름이고, 제주의 역사죠."

a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이 자본의 개발에 무너져 가고 있다.

제주의 허파인 곶자왈이 자본의 개발에 무너져 가고 있다. ⓒ 곶자왈 사람들 제공

풀을 뜯는 대여섯 마리의 말들과 분화구 언저리에 삼삼오오 모여 평화롭게 풀을 뜯는 누런 소들을 지나치면서 '아부오름'은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같이 어울려 살자구나!"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 제주. 그곳에 12개의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25개의 골프장이 건설 중이거나 계획되면서 1년에 100만 평의 숲이 없어진다는 문 선생님의 설명은 무척이나 가슴 아픔이었습니다. 개발의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더불어 사는 가치'를 곰곰 되씹어 볼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희망버스 16일간의 전국일주 중, 목포와 제주, 나주 일정을 함께 한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씨의 일일통신입니다.

덧붙이는 글 희망버스 16일간의 전국일주 중, 목포와 제주, 나주 일정을 함께 한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씨의 일일통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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