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둥글지만, 지구는 아니다

[주장] 빌 게이츠와 월드컵, 그리고 북한 미사일

등록 2006.07.11 22:58수정 2006.07.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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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인생은 공평하지 않으니, 그에 익숙해져라(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빌 게이츠가 미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했던 명언 중에서 수위에 오른 말이다.

4년을 기다려 온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아마 많은 국민들이 이 공평하지 못한 세상을 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경우뿐만 아니라 유독 이번 대회에서는 강대국들에게 유리한 판정이 많이 내려졌다. 그래,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다. 어차피 인생은 공평하지 않은 것, 지금까지 우리가 당해 온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익숙해질 법도 하다.

2002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의 안톤 오노 사건, 2년 뒤 아테네 여름 올림픽에서 체조선수 양태영 사건 등이 있었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공명정대함이다. 오직 실력만이 인정될 뿐인 그 공간에서는 인종이나 빈부나 강대국이나 하는 것들이 다 의미가 없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가나가 미국을 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축구라고.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그리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를 생각해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규칙을 정하고 심판을 두어서 공평무사하게 실력을 겨뤄 보자고.

북한이 위험한가, 일본이 위험한가

스포츠가 아닌 실생활에서의 불공평함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있다. 재벌 총수들은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병원에 한번 입원하고 나면 그냥 풀려난다. 비난을 받기는커녕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 어쩌고 하면서 오히려 경제 위기 운운하며 선처를 '협박'하기도 한다.


정치인들 중에서 죄를 지은 인사들이 감방에서 그 형량을 다 채운 경우를 난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자식들은 많은 경우 군대에 가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굳이 말해 무엇하랴.

월드컵 준결승전이 한창일 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발사 전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으로 국제적 위기감이 고조될 때 동료 연구원인 한 일본 친구가 크게 우려했었다. 그게 탄도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까 미사일이든 위성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친구는 발사체가 일본영토에 떨어져 일본인이 다치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었다. 이 시각은 전반적인 일본인들의 우려였던 것 같다. 마침 일본 언론도 미사일이 자국 영토 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아소 다로 외상의 말을 대서특필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2003년 일본이 한반도 정찰 위성을 띄울 때 한국 사람은 아무도 그 발사체가 한반도에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지 않았다고 '해명'해야만 했다.

불공평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 핵이 2차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고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플루토늄을 약 40㎏ 정도 확보하고 있으리라 예상하는데, 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발하며 호들갑을 떠는 일본은 지금 약 40톤, 즉 4만㎏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약 500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이다.

올 7월 완공되는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 핵 재처리 시설에서는 매년 약 8000㎏의 플루토늄이 생산될 예정이다. NPT, 즉 핵확산 금지조약에 가입도 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약 200기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미 게임은 공정하지가 않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고 정말 다들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 일본의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들도 여기 가세했다. 그런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며칠 후 중국이 차세대 전략핵잠수함을 실전배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대 배수량이 무려 1만톤에 달하는(우리나라 주력 잠수함은 3천톤이 안 된다) 094급 핵잠수함은 '쥐랑'이라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16기 장착하고 있는데, 미사일 1기당 3개의 탄두가 있어 48곳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만㎞다. 이는 대포동 2호보다 더 길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면 대포동 3호를 개발해야 하지만, 이미 실전 배치된 이 잠수함은 중국 연안에서 미국 본토 공격이 가능하다. 대포동 시리즈는 아직 실전 배치조차 되지도 않았다. 여러분이 미국 국토안보국 고위 관리라면 어느 것이 더 국가안보에 치명적이라고 판단하겠나.

a 북한 미사일 발사 후 한일간 불협화음이 심상치 않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1호의 모습.

북한 미사일 발사 후 한일간 불협화음이 심상치 않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1호의 모습.


북한 미사일이 미국·일본 안보에 치명적? 거짓말!

그래서 북한 미사일이 미국이나 일본 안보에 치명적이라는 말은 적어도 거짓말이다. 이 정도가 치명적이라면, 이미 미일 연합국은 중국이 신형 핵잠수함으로 2차 핵반격 능력을 갖추기 이전에 중국 본토를 공격하러 갔어야 했다.

이 뿐 아니라 7월9일에는 인도가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처음으로 시험발사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은 중국이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올해부터 실전배치한다는 기사가 났다. 그러나 이 때문에 유엔안보리가 소집되었다는 소식을 나는 듣지 못했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가 사설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국제법이나 협약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썼을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부터 태평양에서는 미국이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로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하나의 항모전단이 웬만한 국가 전체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데 여기 참가한 항공모함만 3척이다. 지금은 태평양에서 북한을 너무나 빼어 닮은 가상적국을 대상으로 8개국이 모여 림팩훈련을 하고 있다.

좋게 말해 훈련이고, 실상을 말하자면 군사적인 무력시위가 아닌가. 우리는 예전 남북대화에서 북한이 대화에 앞서 한미간의 각종 연합훈련(팀스피리트니 을지훈련이니 등등)을 중단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을 기억한다.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훈련을 트집 잡아 대화를 망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올해는 그 상황이 뒤집어졌다. 북한 미사일 발사가 남북 장관급 회담과 맞물리면서 한국정부는 졸지에 북한에게 뒤통수 맞은 셈이 됐다. 북한은 예전의 남한 주장과 어찌 그리도 똑같은 주장을 하는지… "정상적인 군사훈련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잘한 일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밤잠 설치며 월드컵 준결승전을 만끽하던 차에 속보로 날아든 그 소식은 경악할만하고 우려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클린턴 정부시절 국무장관이었던 올브라이트가 역사적인 평양방문을 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그녀를 환영하는 공연에서 카드섹션으로 대포동을 발사한 적이 있었다.

놀란 그녀에게 김정일 위원장은 "이것이 공화국이 발사하는 마지막 미사일"이라고 했다. 그 정신은 곧바로 북미 공동 코뮈니케에 담겨졌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김정일 위원장은 지금 그 약속을 어긴 셈이다. 여기에 북한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의 그 '군사적' 의미와 위협은 매우 과장되어 있으며, 결정적으로 "공평하지 못하다"는 점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강대국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변 약소국을 괴롭혀 온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일본은 아예 선제공격론까지 들고 나왔다. 한반도에서의 긴장고조가 미국이나 일본의 이익에 훨씬 부합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반대로 통일한국, 아니 적어도 남북한 평화체제가 그들에게 오히려 손해나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반세기 전에도 그랬듯이, 전쟁 나면 제일 좋아할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부시행정부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거부하는 것은 그래서 놀랍지가 않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의 보수언론이 이에 편승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a 지난 9일 베를린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 대표팀의 지네딘 지단 선수가 이탈리아의 마테라치 선수의 가슴을 머리로 가격한 뒤 경기장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지난 9일 베를린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 대표팀의 지네딘 지단 선수가 이탈리아의 마테라치 선수의 가슴을 머리로 가격한 뒤 경기장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 AP / 연합뉴스


북한이 지단같을 수는 없지만... 무조건 비난하진 말자

좌파든 우파든 빨갱이든 꼴통보수든 전쟁 나서 최소한 수백만명 사망하면, 대한민국은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나라 한 해 국방비가 약 20조원인데, 북한에 1조원정도 퍼 줘서라도 전쟁 막는다면 그게 차라리 남는 장사다.

중원의 마에스트로라는 지단이 그의 생애 마지막 경기에서 이른바 '박치기 퇴장'을 당했다. 축구경기 규칙상, 아무리 열 받아도 그렇게 행동하면 당연히 퇴장이다. 지단은 분명히 잘못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관중석은 이탈리아를 야유했다. 그들은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을 수도 없었을 게다. 그런데 왜 지단을 옹호했을까?

사람들은 알고 있다.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아주 심한 모욕을 주었을 것이라고. 그것이 상식이라는 것이다. 관중들에게는, 그리고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는 그들 모두가 잠정적으로 동의한 그 축구규칙보다도 그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훨씬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 받는 '폭력'을 행사하며 축구경기를 어지럽힌 지단보다도, 뭔지 모를 단지 말 몇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지만 한 인간을 그렇게까지 몰고 간 마테라치를 더더욱 비난한 것이 아닐까.

북한이 지단 같을 수는 없다. 이제껏 국제사회에 큰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그 자체만 놓고 비난한다면 이는 지단만을 비난하는 것처럼 그리 공평한 처사는 아닐 것이다.

왜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을까? 그러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들이 처음에 지단에게 가졌을 법한 그 의문들을 이제는 북한에게도 가져보기 바란다.

그리고 마테라치에게 뭔가 물어보고 싶다면, 똑같은 심정으로 미국에게도 뭔가를 물어보기 바란다. 수교직전까지 갔던 나라가 왜 갑자기 악의 축이 되었는지, 제네바 합의는 왜 파기했는지, 위조달러의 확실한 물증은 무엇인지.

빌 게이츠에게는, 그리고 미국 학생들에게는 불공평함에 익숙해지는 것이 세상 살기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이 불공평한 인생에서 최대의 수혜자들이니까.

내가 빌 게이츠만큼이나 유명해지지는 않겠지만, 혹여 고등학생들에게 몇 마디 건네줄 만큼 유명해진다면 나는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으니, 그걸 바꿔라(Life is not fair; JUST change it)."

덧붙이는 글 | 한겨레 필진 네트워크에도 올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한겨레 필진 네트워크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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