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이 다른 수재민 도와야 하는 안타까움

자원봉사 신청자, 2002년의 10분의 1... 이웃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등록 2006.07.20 11:27수정 2006.07.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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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 남편이 물 빠진 논에서 통나무를 들어내고 있습니다.
제 친구 남편이 물 빠진 논에서 통나무를 들어내고 있습니다.김진숙
제 친구는 이번 폭우로 가장 피해가 컸다는 강원도 평창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 비로 많은 사람들의 안부전화를 받았다는 친구는 저에게도 진부·봉평·장평처럼 가옥이 침수되는 등 더 큰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비하면 자기는 괜찮은 편이라며 저를 오히려 안심시킵니다.


친구가 사는 곳은 평창읍내로 다른 지역보다 가옥 침수는 적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째 식수와 전기가 끊기는 고통을 겪었고 애써 가꾼 논과 밭이 잠겼다는 걸 아는 터라 '괜찮다'는 친구의 말이 더욱 아프게 들린답니다.

친구의 가장 큰 걱정은 물에 잠긴 논과 밭입니다. 평생을 논밭만을 일구며 살아오신 시어머니의 논과 밭이 이번 비로 잠겨버린 것이지요. 시어머니는 몸져누웠고 남편 혼자 며칠째 논밭을 헤매며 고생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어제(19일)는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해서 남편과 함께 물에 잠긴 논에 나가 보았답니다.

혼자 애쓰는 남편을 보면서 같이 들어가 일을 돕고 싶었지만, 장딴지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뻘이 찬 상태라 도움은커녕 걷기조차 힘들다는 남편의 말에 논둑에서 남편이 집어 던지는 부유물들만 정리했답니다.

새파란 벼들이 겉으로는 말짱해보여도 이제부터가 문제랍니다. 쓰러진 벼들을 일으켜 세우고 흙을 씻어 준 뒤 농약을 쳐야하는데, 적지 않은 일들을 혼자 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아 한숨만 쉬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친구는 자기 논의 일을 대충 끝내고 인근 수해지역으로 자원봉사하러 간다고 합니다. 지금이 피서철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어서인지 예년에 비해 수해복구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찾기가 어렵답니다. 어제 한 신문에 보니, 강원도에서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2002년 태풍 '루사' 때와 비교했을 때 자원봉사자 신청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뻘이 가득한 논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뻘이 가득한 논입니다.김진숙
이런 상태다 보니 자신들도 수재민이지만 더 피해가 큰 이웃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온종일 뻘밭을 헤맨 친구네 부부는 너무나 힘들어 입맛조차 잃은 상태랍니다. 몸은 힘들고 마음은 심란하며 기력은 소진했으니 병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논과 밭을 손보는 것은 이번 주 안에 마쳐야 한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출피해가 더욱 커져 일 년 농사를 다 망치게 될 것이랍니다. 또한 침수 가옥 복구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집 자체가 붕괴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등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답니다. 친구는 그걸 알면서 어떻게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체하겠느냐며 걱정합니다.

홍수 피해를 겪은 주민들은 이렇게 자신도 힘든 상태면서 이웃까지 도와야 하는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들의 한숨과 눈물은 한동안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애타는 친구의 부탁을 전합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여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이들에겐 삶의 희망이 됩니다."

평창에 살고 있는 김진숙씨가 보낸 글입니다

▲ 이번 홍수로 물에 잠긴 평창의 논밭입니다.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그쳤습니다.

며칠 만에 밟아보는 땅인지…. 땅 밟아보는 일이 어색할 지경입니다.
물 빠진 논에서 며칠 동안 혼자 허우적거리던 남편은 아무래도 농약을 쳐야 할 것 같다며 전화했습니다.

나가보니 남편은 혼자서 저렇게 물살에 떠밀려 들어온 통나무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들어가서 거들까 물으니 남편은 손사래를 치면서 일 저지르지 말고 그냥 있으랍니다.^^

사실 남편이 신은 것 같은 긴 장화가 없으면 떠밀려 내려온 진흙이 장딴지까지 푹푹 빠지는 논 바닥에 들어설 수도 없고 한발 한발 옮기는 것도 나 같은 사람은 힘들 게 뻔합니다.

다행히 도로 주변과 수로가 있는 주변만 망가지고 대체로 온전하게 보존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내게 남편은 그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겉모양만 온전하지, 흘러들어온 진흙 때문에 가을에 무거운 콤바인(벼 베는 기계)이 들어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벼를 어떻게 베겠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것은 병충해 문제지요.
완전히 잠겼던 논은 백발백중 병충해로 몸살을 앓을 테니까요.

내 맘 같아선 그깟 소출 좀 줄면 어떻고 그냥 되는 대로 먹고 모자라면 사먹지 싶은 마음입니다만, 전문 농사꾼도 아니면서 시시때때로 낫을 들고 나가 논둑을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고 누가 봐도 훌륭한 농사를 지어야 속 시원한 남편 성격엔 병충해로 죽어가는 벼들을 그냥 두고 보진 않을 테니 말해봐야 역정만 낼게 뻔한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데 도와줄 수 없어서 안타깝기만 하네요.
내일은 우리일 끝내고 모레부터는 본격적으로 수해지역으로 가야 될 것 같은데 지금 몸 상태로는 영 자신이 없는 거 있죠.

그나저나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아야 할 텐데…. 잠시 빠끔하던 하늘에 다시 먹장구름이 드리워지니 마음마저 어두워집니다. /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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