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벌레를 키우는 딸아이

등록 2006.07.23 17:08수정 2006.07.2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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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는 올해 일곱 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답니다. 신기하게도 다른 친구들은 징그럽다고 손사래를 치는 곤충을 좋아합니다.


사실 딸아이는 어려서 곤충을 아주 무서워했습니다. 개미는 물론이고 잠자리조차 무섭다며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였죠. 다행히 딸아이는 다섯 살이 되자 곤충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그림책이나 만화에 나오는 곤충 그림을 보면서 그렇게 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딸아이는 여름이면 개미, 메뚜기, 여치 등을 잡아 달라고 해서 애완동물로 갖고 놀았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집 안에서 손수 곤충들을 키우기도 했죠.

a 방울토마토잎에 앉은 무당벌레

방울토마토잎에 앉은 무당벌레 ⓒ 홍용희

요즘 딸아이가 키우는 곤충은 바로 무당벌레입니다. 빨간 등딱지에 검은 점이 박힌 곤충으로, 얼마 전에 화분에 심은 방물토마토 잎에서 잡은 거죠.

딸아이는 무당벌레를 작은 플라스틱 통에 넣고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무당벌레를 소중한 친구라도 되는 듯 애지중지 보살피던 딸아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아빠. 무당벌레 뭐 먹어요?"
"진딧물."
"그럼 나 진딧물 잡아줘요."


무당벌레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나 되는 진딧물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그런 진딧물을 잡아달라니! 세상에 진딧물을 어디 가서 잡아올까요?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를 말이죠. 딸아이한테 한 마리의 진딧물도 잡아다 줄 자신이 없었습니다.

"따님. 진딧물은 잡기가 힘들어."
"왜요?"
"어디 있는지 알아야지."


딸아이의 애완동물인 무당벌레는 먹이를 먹지 못한 채 통에 갇혀 지냈습니다.

"따님. 무당벌레 풀어주자.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굶어죽겠다."
"안 돼요! 내 친구예요."

딸아이는 무당벌레가 담긴 통을 꼭 잡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이제 무당벌레는 꼼짝없이 굶어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무당벌레를 살릴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우연히 방울토마토를 따다가 무당벌레를 발견했는데, 무당벌레가 토마토 잎을 갉아먹는다는 걸 알아낸 것입니다. 진딧물을 먹는 줄만 알았던 무당벌레가 토마토 잎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무당벌레는 으레 식물에 해로운 진딧물을 먹는 곤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너무 놀라워 인터넷으로 무당벌레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칠성무당벌레 같은 종류는 진딧물을 잡아먹는 익충이고,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 같은 종류는 식물의 잎을 갉아먹는 해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방울토마토에 붙어 있던 그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는 익충이 아니라 토마토잎을 갉아먹는 해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딸아이가 키우는 무당벌레한테 먹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습니다.

나는 새로 잡은 무당벌레를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아이한테 건넸습니다. 그러자 딸아이는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듯이 기뻐했습니다. 딸아이한테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자랑삼아 늘어놓았습니다.

"따님. 무당벌레 토마토 잎도 갉아먹는다."
"그럼 빨리 뜯어다 줘야지."

딸아이 손에 토마토 잎을 놓아 주었습니다. 딸아이는 플라스틱 통 뚜껑을 열고 토마토 잎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무당벌레가 토마토 잎으로 기어올라갔습니다. 무당벌레는 배가 몹시 고팠는지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진짜 무당벌레가 토마토 잎 먹어요!"
"이제 무당벌레는 굶어죽지 않겠네."

기뻐하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졌답니다.

며칠 뒤, 노파심에 "따님. 무당벌레 밥 잘 주고 있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 입에서 전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아빠. 나 뚜껑 못 열어요."
"왜?"
"냄새가 너무 나요."

a 곤충을 좋아하는 딸아이

곤충을 좋아하는 딸아이 ⓒ 홍용희

냄새가 나다니! 이상해서 플라스틱 통 뚜껑을 열었더니, 며칠 전에 넣어준 토마토 잎이 썩어 냄새가 났습니다. 무당벌레는 냄새가 싫었는지 뚜껑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무당벌레 키우려면 청소도 해줘야지."
"나 못해요. 냄새 나요."

딸아이는 코까지 막으며 엄살을 부렸습니다.

"그럼 아빠가 통 청소할 테니까 따님은 가서 토마토 잎 따와."
"알았어요."

플라스틱 통을 깨끗이 씻은 다음 무당벌레를 넣어주었습니다. 딸아이는 토마토 잎을 뜯어다가 통에 넣어주었습니다. 무당벌레는 토마토 잎 위로 올라가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고요.

딸아이가 언제까지 무당벌레를 키울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무당벌레를 토마토 잎이 있는 곳에 놓아주고 가끔씩 관찰하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조만간 무당벌레를 자유로이 놓아주자고 딸아이를 설득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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