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나선 가회동 한옥 나들이

나만의 피서법... 전통이 살아 있는 서울 도심에서 까치를 만나다

등록 2006.07.26 19:18수정 2006.07.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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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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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신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습니다. 바다도 보고 싶고 숲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멀리 갈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북촌이었습니다. 바다도 숲도 아니었지만 그곳이면 발동 걸린 마음을 해소해줄 것 같았나 봅니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떤 장소에 가고 싶을 때면 마음이 요동칩니다. 그래서 여행을 갑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가더라도 요동치는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 그것도 여행일 것입니다. 또 길가를 거닐다 나무 한 그루 유심히 바라보는 것도 여행의 자세일 것입니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 이면을, 스쳐지나갔던 모습을 바라본다면 말입니다.

버스 속에서 마음 밭을 가꾸게 하는 책을 읽으며 갑니다. 바깥 풍경 감상하며 읽은 책 구절을 되새길 수 있어 좋습니다. 지하철보다 여행에 더 가까운 교통수단입니다.

버스는 예전의 직장 앞을 지나가고, 복잡한 시장통을 지나 고가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창경궁과 종묘를 지나 북촌 마을에 닿았습니다. 제가 내린 곳은 안국동 한 빵집 앞입니다. 저를 내려 준 버스는 광화문과 터널을 지나 학교통을 지날 것입니다. 다른 버스 노선에 비해 고즈넉한 곳을 많이 지나가는 버스입니다.

짧은 여행의 시작을 빵집에서 합니다. 점심식사입니다. 빵집 치고 꽤 넓은 매장을 지녔습니다. 빵의 종류가 유난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먹을 식탁이 넉넉하게 비치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빵은 저렴한 편이었고 혼자 먹기 좋게 소형 사이즈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습니다. 저는 자그마한 연유 바게트, 통밀 빵, 도넛 하나를 골랐습니다.

속을 든든히 하고 길을 나섭니다. 대법원 앞을 지나 가회동 초입에서 방물장수를 만납니다. 트럭에 넘쳐나도록 가득 싣고 옆에다가도 잔뜩 매달아 놓았습니다. 이 물건 주인은 장사가 잘 안되어도 자신이 지닌 물건만 보아도 배부를 것 같습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한옥마을 근처라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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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신

작은 창문이 멋진 옷가게를 지나 한옥 마을로 들어섭니다. 한옥 중 매듭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어 들어가 봅니다. 정확히는 '동림(東琳) 매듭박물관'입니다.

들어가 보니 네모난 작은 마당이 앙증맞았습니다. 공방을 운영하며 전시도 하고 있었습니다. 매듭에 관련된 물건은 대청마루에 전시해 놓았습니다. 제가 가니 한 중년 부인이 친절히 불을 켜줍니다. 그러고서 계속 매듭 작업을 했습니다. 작은 한옥을 전시장 겸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곳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습니다. 안정감을 주고 주인의 손이 마음껏 닿을 수 있어 좋습니다. 더욱이 어떤 작업을 할 경우에도 몰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작은 공간은 그에 반비례해서 커다란 몽상의 세계를 지닙니다. 몽상의 세계가 주인의 손을 통해 형상화되어서 작품으로 남습니다.

작은 곳에서 사는 이들은 그런 즐거움을 맛보며 안온하게 거주합니다. 이 집의 화초를 심은 작은 마당도 좋아 보였습니다. 이 작은 마당만큼의 하늘도 바라볼 수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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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신

신을 벗고 마루에 오르니 사방에 매듭 작품들이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노리개, 허리띠, 주머니, 선추(부채고리에 매어 늘어뜨린 장식) 등 전래되어 오는 각종 장식용 매듭에서부터 실, 끈, 장신구 등의 매듭 재료까지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줄도 있었습니다.

아! 한옥에 들어온 것을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대청마루 앞에서의 '신을 벗음' 입니다. 건축가 임석재님은 <현대 건축과 뉴 휴머니즘>이라는 책에서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닌 공간을 '전이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대청마루는 바람과 햇빛이라는 자연의 대표적인 생명 매개 두 가지 모두를 집안에 끌어들이는 모범적인 생태 건축의 역할을 한다."

'ㄱ'자 모양의 매듭작품처럼 작고 예쁜 공간을 나옵니다. 한옥에 왔으니 생겨난 예절처럼 잘 보고 간다고 인사를 하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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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신

다시 얼마간 가니 '가회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어 들어갑니다. 이곳에서는 친절한 안내와 설명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민화(民畵)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ㄱ'자 모양의 한옥 안을 전부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신을 벗고' 들어가니 사방 벽이 민화들로 가득했습니다.

민화의 역사는 조선시대 말에서 시작됩니다.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백성들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민화입니다. 그 후 양반의 세계까지도 퍼졌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주로 '수복강령'(壽福康寧), 즉 '오래 살고 행복하며 건강하고 평안함'을 비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봅니다. 새와 꽃이 그려진 그림은 '화조도'(花鳥圖)라 합니다. 그림 속에 새들이 쌍쌍으로 있는데 가정의 화목을 비는 마음으로 그려졌습니다. 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진 그림은 좋은 소식을 전하고 나쁜 것을 막는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호랑이의 얼굴이 해학적입니다.

병풍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폭마다 차례대로 국화(장수를 상징), 모란(부귀영화), 석류(다산), 연꽃(깨끗함)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해도'(魚蟹圖)라는 것도 있습니다. '게 해(蟹)'자라는 한자를 처음 접합니다. 효제충신 예의염치(孝悌忠信 禮儀廉恥)를 형상화 한 '문자도(文字圖)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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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다 듣고 차 대접도 받습니다. 더운 여름날 더운 차를 받습니다. 정성으로 다려서 정성껏 마시는 것이 차입니다. 이곳 한옥 안의 세상은 밖과는 다른 느림의 세상입니다. 천천히 해도 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여행 온 것 같은, 속도에서 자유로워진 경험을 합니다. 매듭이든, 민화든 많은 정성을 들여 만들어졌습니다. 한옥마을은 스피드 시대의 시간을 조금은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이곳저곳 한옥의 골목을 들어섭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 골목에서 참 잘도 놀았습니다. 친구들을 부르기도 좋았습니다. 그런 골목이 이제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한옥 대문 옆의 방, 사랑방 정도 되는 곳의 창들을 봅니다. 안쪽으로는 마루로 통하고 밖으로는 골목으로 노출되는 방입니다. 크기도 아주 작은 창입니다. 예전에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의 나들이를 가회동 옆 정독도서관 넓은 뜰에서의 휴식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여행간 것에 비하면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마음은 해갈되었습니다. 까치 한 마리도 내가 앉은 벤치 근처에서 한참을 머뭅니다. 민화에서 본 그 까치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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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신

덧붙이는 글 | ☞ [기사공모] 2006 이 여름을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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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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