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욱 장편소설> 762년 - 86회

등록 2006.07.25 15:20수정 2006.07.2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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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신복이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배를 신라 쪽으로 향하게 한다고?"


"이 배는 신라의 것이고, 따라서 당연히 신라로 향해야지."

"그러면 난 어떻게 되는 것이지?"

"넌 내가 책임지고 발해로 보내줄게. 널 굳이 발해사람으로 알릴 필요는 없잖아."

"난 발해가 아니라 일본으로 건너가야 된단 말이네. 일본에 가서 우리 황상폐하의 뜻을 저들에게 보여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어."

김충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우리 신라에서 일본으로 가는 방법은 없어. 일본과 우리는 이미 국교를 끊어 버린 데다 상선의 교역도 거의 없단 말야."


"그럼 일본이 발해를 믿고 신라를 치도록 가만히 두고 보자 말이야?"

"내가 우리 임금에게 주청을 올려 볼게."


"그게 문제가 아냐. 일본이 침략을 개시하면 발해의 군부들이 움직일 것이야. 비록 일본에 공동협공을 거절했지만 남쪽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그냥 두고보지 않을 거란 말이지."

김충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든 이 배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야. 이 배에는 바람을 타고 움직일 돛도 없잖아."

"돛만 있으면 이 배를 움직일 수 있단 말이지."

"물론이지.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오고 있잖아."

김충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넌 배가 고프지 않니?"

그러고 보니 어제 폭풍우를 만나고부터 음식은커녕 물도 마시지 않은 그들이었다. 왕신복 또한 심한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둘은 뱃집으로 들어가 갑판 밑으로 내려갔다. 바닷물에 재워둔 돌고래 고기를 먹기 위해서 였지만, 고기는 이미 상하여 역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김충연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고기를 그대로 버리자니 너무 아까운 걸."

그러자 왕신복이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고기를 들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그는 돛대에 걸어둔 밧줄을 가져왔다. 그 밧줄을 풀어 단단한 실을 뽑아낸 왕신복은 삼판을 연결하는 못을 빼와 도끼로 가늘게 갈았다. 낚시 바늘을 만든 것이다. 그 낚시 바늘에 상한 고기를 끼우고는 밧줄에서 뽑아낸 실에 연결했다. 줄 낚시가 완성된 것이다.

둘은 그 줄 낚시를 들고 좌현의 난간에 나란히 붙어 섰다.
"과연 고기가 잡힐까?"

김충연이 의아한 눈빛으로 묻자 왕신복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고기들이 고래고기라면 환장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왕신복의 말처럼 낚시를 드리우고 얼마 있지 않아 커다란 다랑어가 낚시바늘을 물었다. 워낙 큰놈이라 둘이 힘을 합해 들어올릴 정도였다. 갑판 위에 내려놓자 다랑어가 온 몸을 비틀며 날뛰었다. 여기에 재미를 붙인 둘은 다시 낚시에 열중했다. 줄 낚시를 바다에 던져 고기가 입질하기를 기다리는데 문득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배가 암초에 걸린 것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 배는 지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잖아."

둘은 우현으로 달려갔다. 반대편 난간에 선 채 바다를 바라보던 둘은 너무 놀라 억, 하는 비명을 동시에 내질렀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믿어지지 않는 듯 김충연은 몇 번이나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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