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엔 생명을 구한 수상안전요원이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빛나던 나의 청춘... 수상안전요원의 추억

등록 2006.07.26 15:55수정 2006.07.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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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해마다 늘 휴가철이면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름하여 수상 안전 요원.

빨간 모자와 빨간 수영복 그 위에 까만 반바지 목에는 하얀 호루라기와 쌍안경 구릿빛 피부… 이 모든 게 수상안전 요원을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자라서인지 기본적인 수영 실력을 갖추었고 중학교 때는 학교 수영 대표 선수로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모집하는 수상안전요원에 저는 늘 1순위로 뽑혔습니다.

지금은 수상안전 요원 자격증 시험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 만해도 우선 실기에 능한 저같은 사람을 우선으로 뽑았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안전교육을 시키죠.

해수욕장이 드디어 개장하고 우리 수상요원들은 두명씩 조를 짜서 해변을 누비며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점검과 더불어 물에 빠진 사람이 없나 바다를 관찰하는 게 주임무입니다.

어쩌다 젊은 연인들이 튜브를 타고 멀리 사람들이 잘 안보이는 해안경계선에 가서 뽀뽀라도 할라치면 가차없이 메가폰을 잡고 큰소리로,

"아아~ 거기 해안경계선에 있는 두 연인들 어서 해변으로 들어오십시오. 위험합니다. 여기 와서 뽀뽀해도 안말릴테니 빨리 돌아오세요. 뽀뽀하려다가 물귀신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연인들에게로 꽂힙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주위사람들을 의식해 안보이는 멀리서 뽀뽀를 했는데 요즘은 그저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막 대놓고 한 튜브에 나란히 타고 뽀뽀를 해대더라구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한창 휴가철이 무르익던 어느 날 그날도 먹이를 찾는 한 마리 하이에나처럼 해변가를 어슬렁거리며 행여나 물에 빠진 사람이 없나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의 레이더망에 걸린 물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떤 아이가 도너츠형 튜브를 타고 놀다가 뒤로 발라당 넘어져서 물에 빠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수영을 못하는지 바람에 튜브가 떠내려가자 잡지를 못하고 허우적 대더군요.

그날 따라 파도도 높은데다가 그 아이 주위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고 해변가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아이고, 우짜노 우짜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굽니까? 바로 수상안전요원 아니겠습니까?

일단 인명구조용 튜브를 허리춤에 줄로 묶고 곧바로 그 아이가 빠진 곳으로 한마리의 물개처럼 유유히 헤엄쳐 가서는 그 아이의 뒤쪽으로 돌아가서 목을 감싸 안으며 무사히 헤엄쳐 나왔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저에게 매달리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쳐대는지 해변가로 나오기까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해변가로 나오니 모두들 저에게 박수를 치면서 장하다고 사람을 살렸다고 난리더군요. 그 순간 그 일이 그리 보람된 일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있던 그 아이 부모도 나와서 연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제가 구해주었던 그 꼬마가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여름휴가가 끝날 즈음 다시 찾아온 그 아이 부모님과 그때의 인연으로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고 제가 결혼할 때 그 당시 돈으로 상당한 액수의 축의금을 해주셨습니다.

정말이지 수상안전요원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발할 때 그때가 저의 화려한 전성기가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수상스키나 모터보트 같은 장비가 많아 물에 빠지는 사람들을 금방 구출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오로지 안전요원의 민첩한 순발력이 우선시 되었기에 해수욕장에서의 꽃이라고도 불리었지요.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다 보니 예전 물찬 제비같던 몸매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그저 드럼통같은 아지매가 되어 버렸네요.

은근히 당신이 언제 수상안전요원을 했던 몸이냐며 놀리는 남편에게 작년 여름휴가 때 바닷가에서 저의 수영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더니 입이 쩍 벌어지더군요. 저 뚱뚱해도 수영실력 웬만한 남자보다는 잘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나는 여러분께 한마디 당부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해수욕장은 일반 수영장이나 풀장과 달라서 바람과 파도가 높은 날이 있기 때문에 자칫 휴가 와서 들뜬 기분에 아이들끼리 물놀이하라고 내버려두면 큰일 납니다. 아이들이 물놀이 할 때는 꼭 같이 동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튜브는 안전 검사에 합격한 제품을 쓰시고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비치볼은 백사장에서만 가지고 놀되 바닷물 속에는 절대로 들고 들어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인 튜브와 달리 비치볼은 파도 위를 마치 공이 튀듯이 통통 튀기 때문에 아까운 생각에 따라가다가 물에 빠지는 사람을 여럿 봤습니다. 꼭 당부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달리 수상안전요원이겠습니까? 어느 광고에서 나왔던 말인 것 같은데 제가 한마디 인용하여 해볼랍니다. "전직 수상 안전요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뚱뚱해서 속력이 나지 않는 것뿐이다"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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