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욱 장편소설> 762년 - 89회

등록 2006.07.28 15:46수정 2006.07.2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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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연은 그가 기력을 회복한 것을 확인하고는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해보게나."


박영효는 잠시 시호흡을 하고는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폭풍이 심하게 불어 이물 쪽의 상판이 뜯겨져 나갔습니다. 덩달아 난간 쪽의 가량 목이 두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로 물이 새는 바람에 배가 침몰하고 말았습죠."
"사람들은 많이 죽지 않았나?"
"배가 침몰하기 전에 모두들 옆의 배에 옮겨 탔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자네는 왜 그 배에 남아 있었나?"
"저와 몇 명 선원들이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끝까지 남아 바닥에 고인 물을 퍼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배가 파도에 휩쓸려 가는 바람에 옆의 배와 떨어져서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습죠."
"그럼 나머지 한 척은 무사하단 말인가?"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요."

다행이었다. 두 척의 배를 잃었지만 목숨을 잃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겨우 십여명 가량만 죽고 나머지는 무사한 것 같았다. 두 척의 배가 파손된 것치고는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한 척의 배만 감포에 도착하게 되면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할까? 하늘이 내린 벌로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귀중한 신물(神物)을 내리기 위한 시련으로 해석할 것인가? 아마도 김충신은 이를 하늘이 준 시련과 고난으로 과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는 문득 김충신이 꾸민 모든 배후가 궁금해졌다. 앞에 앉아 있는 박영효는 김충신의 심복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4설당(設幢)중 충당(衝幢)의 군관(軍官)이었다. 그는 예전에 발해와 국경을 마주하는 명주(溟洲)를 지키는 변수장(邊守障)이기도 했다. 김충연은 그 앞에 바투 다가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넨 우리 배가 출항을 한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박영효는 김충연의 뜬금 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하는 듯 했다. 두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그야, 신이(神異)한 섬을 찾아내서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구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넌 그 떠다나는 섬이 존재한다고 믿느냐?"
"물론입지요. 당주(幢主) 어른께서도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김충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왕신복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왕신복이 뱃집에서 대나무를 들고 왔다. 그 대나무를 박영효에게 내밀며 김충연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된 것이냐?"

순간 박영효의 표정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의 핏발선 눈이 커지며 얼굴근육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해보게나. 이 대나무가 왜 이 배의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나 말이다."

박영효는 손사래를 치며 정색을 해 보였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요. 이게 왜 이 배에 있는 것이죠?"
"자넨 우리 숙부님의 심복중의 심복이다. 네가 이 사실을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인가?"

하지만 박영효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눈 주름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김충연이 내처 말을 이었다.

"그럼 내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해줄까? 네가 탔던 배가 일주일 전에 일본으로 향하는 발해사절단을 공격한 것도 기억이 안 나는가? 그것도 일부러 해적선으로 위장해서 말이다."

그렇게 윽박질렀지만 박영효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입을 앙 다문 채 옅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김충연은 일부러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어조를 낮추었다.

"이게 만약 하늘의 뜻이었다면 세 척의 배 중 두 척이나 난파를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늘의 뜻을 빙자하여 일을 벌이기 때문에 천벌을 받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앞으로 하늘의 진노가 우리 신라에 또 내릴지 모른다. 그게 두렵지 않느냐?"

그제야 박영효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고 찢겨 올라간 눈에 한순간 복잡한 감정의 빛이 역력했다. 고여 있던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있지 않는 걸까요?"
"억지로 사실을 조작해서는 오히려 하늘의 노여움만 받을 게야. 두 척의 배가 난파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을 지켜보고도 깨닫지 못하겠더냐?"
"흐윽-."

순간 박영효는 고개를 퍽 숙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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