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숨겨둔 잎사귀 밑 참외 하나

참외밭 보니 아련한 옛추억 떠올라

등록 2006.07.29 14:05수정 2006.07.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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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며칠전 양천구 지양산에 무공해 배추를 뽑으러 갔다. 배추를 뽑아 다듬어 들고 내려가려는데 밭 주인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부르셨다.
"쉬었다 가."
"그럼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고 갈까요."


다시 밭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참외밭을 발견했다. 어릴 때 집앞 제일 가까운 밭중 꼭 한 두둑은 참외를 심어 놓았는데, 그 참외밭과 어찌 이리 똑같을까.

동글동글한 참외 잎사귀하며 참외꽃, 여기저기 매달린 초록참외는 얼마만에 보는지도 모르겠다. 시장에서 노랗게 잘익은 참외만 사다 먹으니 노란 참외도 익기전엔 솜털달린 초록빛이었다는것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

a 참외 숫꽃과 암꽃

참외 숫꽃과 암꽃 ⓒ 권용숙

a 덜익은 참외는 이렇게 진한 초록빛이다.

덜익은 참외는 이렇게 진한 초록빛이다. ⓒ 권용숙

오이는 반찬을 위해 심었고 참외는 식구들 간식용으로 심었다. 아이들은 반찬으로 늘 먹을 수 있는 오이보다 딱 한 두둑 심어놓은 참외밭에 마음이 가 있었다.

노란 참외꽃이 지고나면 초록색 작은 참외가 열려 초록빛이 점점 노란빛으로 변하는데, 참외가 노랗게 익었을 때 따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참외가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참외 먹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옆집애까지 모두 참외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전을 써보기로 한다. 초록색 참외잎을 따서 덜익은 초록참외에 덮어 놓는 거다. 아무도 참외잎새 밑에 참외가 익어가고 있음을 눈치 못채겠지. 그리고 숨겨놓은 참외를 찾으며 매일 설렜다.


a 누군가 잎사귀로 참외를 덮어 놓았다.

누군가 잎사귀로 참외를 덮어 놓았다. ⓒ 권용숙

한 두둑밖에 없는 참외밭에 서는 아이들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인가 보다. 어제 아들네 딸네가 다녀가 익은 참외를 다 따먹어 없다고 하시는데. 내눈에 딱 들어온 할아버지도 모르는 참외 하나,

시든 참외잎사귀 밑에 살짝 보일 듯 말 듯한 노란 참외를 보고 분명 할아버지 손자손녀중 누군가가 다음에 오면 따먹으려 덮어놓았음을 한눈에 알아 차렸다. 주인 몰래 참외잎을 들춰 보았다.


a 잎사귀를 들춰보니 노랗게 익은 참외 하나가 있다. 이틀 정도 더 익히면 가장 맛있는 참외가 될 것이다.

잎사귀를 들춰보니 노랗게 익은 참외 하나가 있다. 이틀 정도 더 익히면 가장 맛있는 참외가 될 것이다. ⓒ 권용숙

예상대로 아무도 모르게 참외가 노랗게 노랗게 익어 가고 있다. 아마도 참외를 덮어놓은 그 녀석은 할아버지보다 참외가 익었을까 궁금해 지금쯤 할아버지댁에 가자고 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노란 웃음이 난다. 할아버지는 또 그녀석의 마음을 읽고 해마다 집앞 가장 가까운밭에 토마토도 심어놓고, 참외도 심어놓고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시는지도 모른다.

살짝 열어본 참외를 다시 덮어주며 오랫만에 정겨운 참외밭 구경 잘했다고 몇번이고 인사를 했다. 익은 참외 하나 따주지 못해 아쉬워 하는 할아버지 발밑에서 못생긴 초록 참외가 뒹굴고 있다.

참외덩굴 걷어낼 때까지 안익은 초록 참외는, 버리지 않고 모두 따 반을갈라 씨를 빼내고 참외장아찌를 담곤 했다. 알고보면 참외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a 과일가게에 쌓아놓고 파는 참외, 요즘은 품좀개량으로 참외맛이 훨씬 달다.

과일가게에 쌓아놓고 파는 참외, 요즘은 품좀개량으로 참외맛이 훨씬 달다. ⓒ 권용숙

유난히 참외를 좋아하는 어머니는 올해도 참외 한 두둑을 심어 놓으셨는데 지금쯤 노랗게 익어가고 있을것이다.

빨리 내려가 오이밭 옆 참외밭에 익어가는 참외 하나를 골라 잎사귀로 덮어 놓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고 설렌다.

오늘쯤은 익었을까, 아직 덜익었을까, 누군가 벌써 따먹었을까?

a 참외밭 옆 오이밭, 늙은 오이를 보니 반갑다.

참외밭 옆 오이밭, 늙은 오이를 보니 반갑다. ⓒ 권용숙

덧붙이는 글 | 참외는 인도산 야생종을 개량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본초서(本草書)에는 참외는 성(性)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서 갈증을 멎게 하고 번열을 없애며 소변이 잘 통하고 입과 코의 부스럼을 잘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백과사전참조)

덧붙이는 글 참외는 인도산 야생종을 개량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본초서(本草書)에는 참외는 성(性)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서 갈증을 멎게 하고 번열을 없애며 소변이 잘 통하고 입과 코의 부스럼을 잘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백과사전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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