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낭만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

죽산 조봉암 선생 47주기 추도식 열려... 유족 등 50여 명 참석

등록 2006.07.31 17:52수정 2006.07.31 17:59
0
원고료로 응원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이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이다." - 조봉암 선생의 어록에서

a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의 47주년 추모식이 유족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일 낮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 죽산묘에서 열렸다.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의 47주년 추모식이 유족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일 낮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 죽산묘에서 열렸다. ⓒ 석희열

1959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사형 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의 47주기 추도식이 31일 낮 12시 서울 망우리 묘지공원 죽산묘에서 열렸다. 이날 추도식은 '죽산 조봉암 선생 명예회복 범민족추진위원회' 주최로 유족 등 50여 명이 모여 묵념과 추도사, 유족대표 인사말,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김자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회장은 "죽산은 조국의 독립과 노동자 농민 대중의 권익을 위하여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공산주의자로서 일제에 항거하여 싸웠고 해방 후에는 평화통일을 외쳤다"며 "선생은 참된 애국자이고 역사의 선각자였다"고 추모했다.

권오헌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는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하다 10년 넘게 옥고를 치른 선생은 오로지 민족해방과 진보를 위해 사셨다"며 "외세의 간섭 없는 완전한 조국해방과 평화통일 뜻을 이어받아 오늘에 완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을 주도한 인물로 해방정국에서 공산당과 결별하고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2,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그는 1956년 11월 진보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맞서 '평화통일론'을 내세웠던 사회주의자 조봉암은 1958년 1월 이른바 진보당사건(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이듬해 7월 사형됐다. 이를 두고 학계에선 그 동안 정권에 의한 대표적 '사법살인'이라고 비판해 왔다.

a 조호정 여사 등 유족들이 선생의 묘소에 꽃을 바치고 있다.

조호정 여사 등 유족들이 선생의 묘소에 꽃을 바치고 있다. ⓒ 석희열

조봉암 선생의 딸 조호정(77) 여사는 "아버지는 제게 조국과 이웃을 위해 늘 선량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상냥하고 자상했던 아버지는 낭만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다"고 추억했다.

40분 동안 진행된 추도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죽산묘 근처에 둘러앉아 점심을 함께 하며 선생의 뜻을 기렸다.


한편 죽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며 지난 4일 유족 등이 낸 조사 신청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다음달 8일 소위원회와 22일 전체회의를 열어 조사개시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