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빰돌'을 하도 해서 손톱 깎을 필요도 없었지요

뒷산을 헤집고 다니던 어린 날의 추억들

등록 2006.08.01 10:16수정 2006.08.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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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뒷산인 '용당산'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저 멀리 '운문산'도 보이네요.
우리 동네 뒷산인 '용당산'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저 멀리 '운문산'도 보이네요.안상숙

경북 청도에서 지낸 어린 시절, 여름날은 해가 길기도 했다. 그 때는 시간이 너무 안 갔다. 하루가 '지업고도 지업었다'(지루하고 지겨웠다).


학교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친구들이랑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올라온다. 집까지 오는 길이 멀지도 않았는데 그 때는 왜 그리도 '지업고'(지루하고) 멀기만 한 지 온갖 '저지레'(장난)를 다 하면서 올라온다.

올라오면 동네 전답이 보인다. 들에서 일하시는 엄마들은 집집마다 자기 집 아이들이 언제 올까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모양인지 이쪽 밭에서도 "숙아~ 소 믹이로 가거레이~", 저쪽 밭에서는 "자야~ 소죽 낄이놓고 밥 해레이~" 하면서 우리를 불렀다. '하이고 무시라'(무서워라). 집집마다 시키는 일이 '우에'(어떻게) 그리도 '많겠노'. 그 때는 어찌 그리 일을 하기 싫던지….

산 저쪽은 경남 밀양군 산내면이고 산 이쪽은 경북 청도군 매전면인 '구만산'에서 바라본 제 고향 동네입니다. 강물이 누렇게 보이네요.
산 저쪽은 경남 밀양군 산내면이고 산 이쪽은 경북 청도군 매전면인 '구만산'에서 바라본 제 고향 동네입니다. 강물이 누렇게 보이네요.이종관

우리 동네 밑에는 '아래깍단'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아래깍단' 들머리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우물(경상도식 표현으로는 '새미')이 있었다. 여름 햇살을 받으며 터덜터덜 걸어오던 우리들은 '아래깍단 새미'에서 발을 멈췄고 두레박을 내려서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우물 옆에는 홰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우리는 그 그늘 아래 퍼질러 앉아서 '빰돌'(공깃돌놀이)을 했다.

'빰돌'은 깨진 기와조각을 동그스름하게 잘 다듬어서 만들었다. 자잘한 돌멩이를 주워서 하기도 했다. 우리는 손 안에 딱 들어오는 '빰돌' 다섯 개를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매일 하다 보니 손에 익어서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었다. 돌멩이보다는 기왓장으로 만든 '빰돌'로 하면 더 잘 놀 수 있어서 우리는 깨진 기왓장 찾느라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땅바닥에 앉아서 '빰돌'을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빰돌'을 하기 싫어지면 '땡삐'(땅벌)를 잡아 허리를 똑 잘라서는 뱅뱅 돌렸다. 대가리는 버리고 꼬랑지만 땅바닥에 놔두면 '땡삐'가 뱅뱅 돌았다.


목이 마르면 물 한 바가지 퍼서 마시고 입이 심심하면 밀밭에 가서 밀을 훑어서는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서 한 입에 탁 털어 넣었다. 밀을 입에 넣고 오래 씹다보면 껌을 씹을 때와 비슷하게 끈기가 생기는데, 우리는 껌 대신 밀을 많이 훑어 먹었다. 이렇게 놀다가 집에 오면 텅 빈 집 마당엔 햇살만 가득했다.

아래깍단, 삭깔, 원앞, 길명, 장싯골, 깃당 그리고 우리 동네인 올막까지 한 눈에 다 보이네요.
아래깍단, 삭깔, 원앞, 길명, 장싯골, 깃당 그리고 우리 동네인 올막까지 한 눈에 다 보이네요.안상숙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하면 땡감을 몇 개 따서 팬티 고무줄에 끼우고 왕소금 한 움큼 집어서 종이쪽지에 싸서는 뒷산으로 내달렸다. 한 입 베어 물면 떨떠름하고 입 안이 뻑뻑해지는 땡감을 왕소금에 꾹 찍어서 씹어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하지만 몇 입 먹지 않아도,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 그러면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면서 "와와 뭇노(먹었나), 묵고 싶어 뭇따, 맻 쪼가리 뭇노, 두 쪼가리 뭇따"라고 노래 부르며 산에 올라갔다.


뒷산 '만댕이'(꼭대기)에는 동네 애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아침에 산에 올려놓으면 소들은 하루 온종일 풀을 뜯으면서 산을 한 바퀴 돌아서 뒷산 꼭대기에 와 있었다.

소 찾으러 온 우리는 온 산이 비좁도록 뛰어놀았다. '머시마'(남자애)들은 말 타기도 하고 전쟁놀이도 하지만 '여식아'(여자애)들은 한데 모여서 '빰돌'을 했다. 편을 갈라 '빰돌'을 하다보면 손등에는 뽀얗게 흙먼지가 앉았고 손톱은 닳아서 깎을 필요도 없었다.

저녁 어스름이 밀려오고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면 우리들은 툴툴 손을 털고 소를 찾아 몰고 내려왔다. 하루 종일 배불리 풀을 뜯은 소들은 주인이 일부러 찾지 않아도 제 혼자서 집을 찾아 산을 내려갔다. 소들이 앞서고 애들은 그 뒤를 따라서 산을 내려오노라면 푸르스름한 저녁연기가 온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

'마실'(마을) 어귀에 도착하면 돌담장 너머로 밥 익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종일 온 산을 헤매고 다녔던 우리는 그 냄새에 허기가 돌았고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그래서 소 궁둥이를 괜히 한번 철썩 치며 말했다. "이랴, 빨리 가자".

어떤 재수 없는 날엔 우리 소가 싸움질을 해 소 '뿔떼기' 하나가 빠져버렸다. 아버지께 꾸중들을 생각에 겁이 난 나는 소를 살짝 외양간에 묶어두고는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문고리를 잠그고 숨을 죽인 채 바깥 기척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밥 '무로'(먹으러) 나오너라"는 말이 들릴 때까지 덥고 답답한 방 안에서 죽은 듯이 숨어 있었다.

청도는 씨없는 감으로 유명하지요. 산비탈에 있는 감밭에서 우리 동네를 바라보았어요.
청도는 씨없는 감으로 유명하지요. 산비탈에 있는 감밭에서 우리 동네를 바라보았어요.이승숙

우리 동네 한 가운데에는 논 한 마지기가 될까 말까한 빈 터가 있었다. 원래는 논이었는데 동네에서 사들여 마을의 공터로 이용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동네 사람들은 이 빈 터로 나왔다. 집 안은 덥고 답답하지만 그곳은 넓고 시원한데다 밤새도록 60촉짜리 백열등을 켜두어, 환하고 좋았다. 그래서 다들 빈 터로 나왔다.

동네 '할배'들은 담뱃대에 담배를 볼록하게 채워서 양 볼이 쏙 들어가도록 장죽을 빨아 댕겼다. 이야기 한 자락에 '풍년초' 한 모금 빨고 대꾸 한 마디하면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할매'들은 좀 떨어진 곳에 깔아놓은 멍석 위에 앉아서 부채를 슬슬 부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할매' 무르팍을 베고 누운 손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낮에 그렇게 놀고도 뭐가 또 모자랐는지 우리들은 밤새도록 '빰돌'을 했다. '범굴'에다 '알까기', '줄줄이'에다 '솥걸기'까지 편을 갈라 재미나게 놀았다. 감나무에 달아놓은 백열등 근처에는 하루살이들이 떼 지어 달려들었다. 빈 터 한 쪽에는 소나무 가지로 만든 철봉대가 있었는데 머리 굵은 '머시마'들은 철봉을 휙휙 넘으면서 팔 힘을 키웠다.

머리 위로 은하수가 밤하늘을 가르며 흘러갔고 가끔씩 별똥별이 떨어지기도 했다. 어른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며 부채질 소리에 밤이 깊어갔고 우리는 아쉬운 맘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이슬이 촉촉하게 내리는 그런 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제 고향 경북 청도에선 '공깃돌놀이'를 '빰돌'이라 그랬어요. '빰돌'은 다섯 개의 공깃돌로 하는 놀이입니다. '빰돌'을 하나씩 잡아올리는 한 알, 두 개씩 올리는 두 알,그리고 세 알, 네 알까지 차례대로 합니다. 

그 다음엔 '범굴'을 하지요. '범굴'은 공깃돌 다섯 개를 땅에 굴려놓고 적당한 곳에다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으로 굴을 만들어서 그 안으로 공깃돌을 몰아넣는 놀이입니다. 

'알까기'는 먼저 받은 공깃돌을 뒤로 보내 땅에 놓으며 나중 받은 공깃돌을 손에 남기는 방법으로 계속합니다. 

'줄줄이'는 공깃돌을 받은 차례대로 계속 손 안에 둔 채 다음 공깃돌을 집습니다. 맨 마지막엔 공깃돌 다섯 개가 다 손 안에 있겠지요. 

'솥걸기'는 공깃돌 세 개로 솥 다리를 만들고 마지막 한 개를 그 위에 얹는 방식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 고향 경북 청도에선 '공깃돌놀이'를 '빰돌'이라 그랬어요. '빰돌'은 다섯 개의 공깃돌로 하는 놀이입니다. '빰돌'을 하나씩 잡아올리는 한 알, 두 개씩 올리는 두 알,그리고 세 알, 네 알까지 차례대로 합니다. 

그 다음엔 '범굴'을 하지요. '범굴'은 공깃돌 다섯 개를 땅에 굴려놓고 적당한 곳에다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으로 굴을 만들어서 그 안으로 공깃돌을 몰아넣는 놀이입니다. 

'알까기'는 먼저 받은 공깃돌을 뒤로 보내 땅에 놓으며 나중 받은 공깃돌을 손에 남기는 방법으로 계속합니다. 

'줄줄이'는 공깃돌을 받은 차례대로 계속 손 안에 둔 채 다음 공깃돌을 집습니다. 맨 마지막엔 공깃돌 다섯 개가 다 손 안에 있겠지요. 

'솥걸기'는 공깃돌 세 개로 솥 다리를 만들고 마지막 한 개를 그 위에 얹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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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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