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깍단, 삭깔, 원앞, 길명, 장싯골, 깃당 그리고 우리 동네인 올막까지 한 눈에 다 보이네요.안상숙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하면 땡감을 몇 개 따서 팬티 고무줄에 끼우고 왕소금 한 움큼 집어서 종이쪽지에 싸서는 뒷산으로 내달렸다. 한 입 베어 물면 떨떠름하고 입 안이 뻑뻑해지는 땡감을 왕소금에 꾹 찍어서 씹어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하지만 몇 입 먹지 않아도,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 그러면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면서 "와와 뭇노(먹었나), 묵고 싶어 뭇따, 맻 쪼가리 뭇노, 두 쪼가리 뭇따"라고 노래 부르며 산에 올라갔다.
뒷산 '만댕이'(꼭대기)에는 동네 애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아침에 산에 올려놓으면 소들은 하루 온종일 풀을 뜯으면서 산을 한 바퀴 돌아서 뒷산 꼭대기에 와 있었다.
소 찾으러 온 우리는 온 산이 비좁도록 뛰어놀았다. '머시마'(남자애)들은 말 타기도 하고 전쟁놀이도 하지만 '여식아'(여자애)들은 한데 모여서 '빰돌'을 했다. 편을 갈라 '빰돌'을 하다보면 손등에는 뽀얗게 흙먼지가 앉았고 손톱은 닳아서 깎을 필요도 없었다.
저녁 어스름이 밀려오고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면 우리들은 툴툴 손을 털고 소를 찾아 몰고 내려왔다. 하루 종일 배불리 풀을 뜯은 소들은 주인이 일부러 찾지 않아도 제 혼자서 집을 찾아 산을 내려갔다. 소들이 앞서고 애들은 그 뒤를 따라서 산을 내려오노라면 푸르스름한 저녁연기가 온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
'마실'(마을) 어귀에 도착하면 돌담장 너머로 밥 익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종일 온 산을 헤매고 다녔던 우리는 그 냄새에 허기가 돌았고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그래서 소 궁둥이를 괜히 한번 철썩 치며 말했다. "이랴, 빨리 가자".
어떤 재수 없는 날엔 우리 소가 싸움질을 해 소 '뿔떼기' 하나가 빠져버렸다. 아버지께 꾸중들을 생각에 겁이 난 나는 소를 살짝 외양간에 묶어두고는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문고리를 잠그고 숨을 죽인 채 바깥 기척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밥 '무로'(먹으러) 나오너라"는 말이 들릴 때까지 덥고 답답한 방 안에서 죽은 듯이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