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열린우리당이 부추기나

전경련 등이 사면·선처 요구한 경제계 인사 69% 집행유예·보석

등록 2006.08.02 08:41수정 2006.08.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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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가 또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계는 면죄부를 얻기 위한 방패막이로 대통령의 사면권을 선택했다.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지난달 27일 청와대에 8·15 광복절을 앞두고 불법 정치자금, 분식회계 사건 등과 관련돼 형이 확정된 기업인 55명에 대해 사면과 복권을 청원하고 재판이 계류 중인 기업인 23명에 대해 선처를 호소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사면과 선처를 통해 경제인들이 부담을 벗고 경제활동에 임하면 국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 형 확정 6일만에 사면 요구한 두산

두산 4형제는 분식회계와 횡령으로 집유 선고를 받았지만, 항소심 판결 6일만에 경제5단체는 두산 사건 관련자 14명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 사진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던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두산 4형제는 분식회계와 횡령으로 집유 선고를 받았지만, 항소심 판결 6일만에 경제5단체는 두산 사건 관련자 14명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 사진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던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러나 재계가 사면과 선처를 요구한 78명의 경제 인사들 가운데는 두산 박용오·박용성 형제의 분식회계와 회삿돈 횡령사건 관련자 14명이 포함돼 있을뿐 아니라 국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분식회계를 통해 사기 대출 받은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 가운데 69.2%인 54명이 이미 집행유예, 보석을 통해 사법부의 배려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나 이중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두산그룹 오너 4형제와 임원 10명은 항소심 형이 확정된 지 단 6일만에 사면을 건의해 비판을 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재계가 사면과 선처를 요구한 78명에 대한 범죄내역과 사건처리 결과를 법원 판결문과 언론사 보도를 토대로 조사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87%에 이르는 68명이 ▲분식회계와 ▲불법대출 ▲주가조작 ▲편법지원 횡령 등 전형적인 화이트 컬러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는 삼성, 현대·기아차, SK, 한화, 두산, 동부 등 주요 대기업의 CEO와 임원들이 모두 27명으로 34.6%나 됐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화이트 컬러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쁜 범죄지만 전문가들의 범죄이기 때문에 적발률이 매우 낮다"면서 "전문가 범죄 근절을 위해서라도 적발된 사안에 대해 엄정 처벌하는 것이 전제돼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문제점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2월 두산 형제들에게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지자 "남의 집에서 1억원어치 물건을 절도한 사람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200억, 300억원씩 횡령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하면 국민이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사법부의 판결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 역시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건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대규모 경제사범이 엄단돼야 한다"면서 "화이트 컬러 범죄자들이 집행유예로 끝나는 사법부의 관대함이 참으로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화이트 컬러 범죄 엄정 처리 방침은 열린우리당에 의해 6개월도 채 안돼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조건으로 "경제인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잡범들은 실형 살게 하면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타협을 전제로 재계 인사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타협을 전제로 재계 인사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근태 의장은 경제활성화를 위한 조건으로 사면을 들고 나왔지만, 이를 두고 신정경유착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면과 선처를 건의한 경제계 인사들 가운데 권홍사 반도 사장,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박원양 삼미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 핵심 측근인 안희정씨와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 등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동아건설 고병우 전 회장은 16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에게 비자금을 제공했고, 전직 대통령의 처남 관련자에게 공사 수주 청탁 대가로 수억원을 건넸다.

회삿돈 340억원을 횡령한 최용선 전 한신공영 회장은 안병엽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총선 전후에 4600만원을 불법으로 제공해,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안병엽 의원에게 벌금 300만원과 추징금 2700여만원을 선고했다. 안병엽 의원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이뿐 아니다. 이기흥 우성산업개발 회장은 수자원공사 사장과 여권 실세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건설업체로부터 관급공사 수주 로비 명목으로 62억원을 받고, 회삿돈까지 횡령했다. 이와 관련된 고석구 전 수자원공사 사장은 뇌물을 받아 항소심에서는 징역 5년에 추징금 9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김상조 교수는 "잡범들은 실형을 다 살게 하면서, 화이트 컬러 범죄를 집행유예로 다 풀어주고 사면을 해주면 한국경제 주체들이 정부에 대해 불신할 수밖에 없다"면서 "포스코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엄정 대처를 이야기하면서 불법 행위 기업인에 대한 사면이 이야기되는 것은 진정한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새로운 정경유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사면 건의를 약속한 김근태 의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홍종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경원대 교수) 역시 재계 인사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홍종학 교수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경제계 인사들을 사면하겠다는 것은 법치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된 처방"이라면서 "서민경제가 어려워진 원인을 재계 인사들의 사면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근시안적이며, 오히려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계가 사면과 선처를 요구한 경제인
재계가 사면과 선처를 요구한 경제인오마이뉴스 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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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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