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주인공이 꼬마들에게 말을 거네요

가족뮤지컬 '아주 특별한 그림여행' 관람기

등록 2006.08.03 18:08수정 2006.08.0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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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이를 찾아 액자를 들고 나오는 원판이
종달이를 찾아 액자를 들고 나오는 원판이김혜원
7월 25일. 화창한 햇살을 모처럼 맞으며 다섯 살 조카 주석이와 집 근처에 있는 성남아트센터 앙상블 시어터를 찾았다. 음악과 미술에 한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주석이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문화적인 시각을 다양하게 넓혀주는 음악회나 미술관 관람이 아주 좋은 현장학습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공연이나 전시회라도 모든 어린이들에 관람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행동특성 때문에 전시장이나 무대가 소란해질 것을 우려해 대부분의 공연은 7세 이하는 '입장 불가'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입장이 가능한 공연이나 전시회를 만난다 치더라도 아이 입장에서는 긴 시간동안 자유를 억압당한 채 시선을 무대에나 전시물에만 고정해야 하는 것 자체가 고문이기 때문에 부모 역시 어지간해서는 일반 공연이나 전시회에 아이를 동반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찾게 되는 것이 어린이전용 전시회나 무대. 하지만 대다수의 어린이를 위해 기획된 공연이 그렇듯 관객의 기대를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많다. '어린이 난타'나 '가루야 가루야'처럼 독특한 주제와 탄탄한 기획력, 높은 완성도가 돋보이는 어린이전용 공연이나 전시를 만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어린이를 위한 양질의 무대와 전시가 드문 요즘 극단 <봄>의 가족뮤지컬 '아주 특별한 그림여행'은 모처럼 아이 손을 잡고 무대를 찾은 부모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낮 시간 공연이라 그런지 객석은 유아원 유치원생들로 만원이다. 저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대를 지켜보는 어린이들 앞에 커다란 액자가 나타난다. 액자 속에는 우리 눈에 익은 그림 '종달새를 쫓는 원판'(원작자 미로)이 들어 있다.


기괴하거나 희한하게 보이기도 하는 미로의 '종달새를 쫓는 원판'은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유치원 정도의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그려 놓은 그림과 흡사해서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그린 그림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종달아! 어디 있니? 종달아!"


'종달새를 쫓는 원판'이라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은 어린이 뮤지컬 '아주 특별한 그림 여행'은 미로의 그림 '종달이를 쫓는 원판' 속에 그려져 있던 종달새가 날아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날아가 버린 종달새를 찾기 위해 액자 속에서 걸어나온 원판이는 꼬마 관객들과 함께 종달새를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샤갈과 피카소-무대에서는 각 캐릭터들이 연주를 들려준다
샤갈과 피카소-무대에서는 각 캐릭터들이 연주를 들려준다김혜원
달리의 '잠'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있는 커다란 얼굴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아기 때 보았던 그림책과 비슷한 레제의 '붉은 배경의 대퍼레이드' 속에 들어가서는 잠시 종달새의 존재를 잊고 재미있는 서커스 구경에 넋이 나가기도 한다.

다시 종달새를 찾아 앙리 루소의 '꿈'이라는 그림 속에 들어간 원판이는 관객들과 함께 숨을 그림 찾기의 재미에 빠져보기도 하고, 샤갈의 '첼리스트'와 피카소의 '피아노'의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커다란 손가락 모양을 표현한 키이쓰 하링의 'POPSHOP VI: B'에서는 관객과 함께 가위, 바위, 보를 진행하면서 움직이는 그림, 말하는 그림, 관객과 소통하는 그림을 표현한다. 그렇게 몇 개의 꿈과 같은 환상적인 씬을 지나 원판이는 결국 다시 자신의 액자가 있던 무대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잃어 버렸던 종달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종달이 저기 있어요."
"찾았다. 짝짝짝."

처음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원판이에게 거부감을 느껴 무대에 집중하지 못하던 어린이들도 원판이와 함께 여섯 개의 그림 속 이야기를 지나 잃어버린 종달새를 다시 찾는 과정에서 어느덧 캐릭터들과 친구가 되어 노래하거나 박수를 치면서 뮤지컬의 일부가 된 듯 자연스럽게 작품과 친해진 모습을 보인다.

난해한 그림이라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나의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들은 어느새 그림과 친구가 되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뮤지컬이 끝난 후 극장밖에 전시된 실제 그림을 만나는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다가가 그림에게 말은 건다.

"이 아줌마 아까 봤는데. 여기 사자가 있었어."
"잠꾸러기 아저씨는 아직도 자고 있네."
"나는 가위. 바위. 보가 제일 재미있었어."

'아주 특별한 그림여행'은 초현실주의나 입체파 등 어린이들이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화풍의 그림들도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해석하며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적인 무대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어린이 무대였다.

다만 50분 이상 되는 긴 무대인 만큼 꼼짝하지 않고 엉덩이를 붙이고 보아야 하는 딱딱한 규정을 적용하기보다는 어린이 특성에 맞게 편하게 몸을 움직이거나 땅에 앉거나 누울 수도 있도록 좀 더 자유로운 관람 분위기가 허용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주 특별한 그림 여행-달리의 <잠>
아주 특별한 그림 여행-달리의 <잠>극단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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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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