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하고 싶을 때 이 일을 그만 둘 것"

[호주에서 열달 9] 매니저 그레이엄과 울 핸들러 타니아 인터뷰

등록 2006.08.04 11:44수정 2006.08.0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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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양털깎이 팀은 총 9명으로 매니저 1명, 양털깍이(Shearer) 4명, 울 핸들러(Wool handler:양모 손질자) 2명, 울 클라서(Wool classer:양모 선별자)1명, 요리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보기엔 조금은 생소한 이들은 과연 각각 어떤 일을 할까?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하는 일을 알아봤다. - 기자 주

이 팀의 매니저인 그레이엄(55)은 팀을 짜고 일거리가 있는 농장을 알아봐 일정을 짜는 일을 주로 하며 누가 몇 마리의 양털을 깎았는지도 기록한다. 그레이엄은 자신을 돕는 양치기 개 한 마리와 호주 전역을 누비고 있다.

양털깎이팀에는 우리에겐 좀 생소한 이름의 '울 핸들러'가 있다. 울 핸들러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양털깎이들이 깎은 양털을 정리하고 다듬는 일을 한다. 이 팀에선 다니엘과 타니아(40)가 이 일을 맡고 있었다.

매니저인 그레이엄과 울 핸들러인 타니아를 만나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들어봤다.

-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고,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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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사람을 찾아서 팀을 짜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매너저 그레이엄. ⓒ 김하영

그레이엄 : "나는 16살 때부터 양털깎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7년 후, 조금만 머리를 쓰면 양털깎이 일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니저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이가 들어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니저는 우선, 팀을 짜야 하는데, 우리는 호주 전역에 있는 거의 모든 양농장과 일꾼들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 내 수첩은 온통 전화번호로 꽉 차 있다. 이게 아주 중요한 정보이다.

팀을 짠 이후, 우리를 필요로 하는 양농장들을 섭외해서 일정을 잡는다.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게 일정을 잘 잡아야 한다. 그리고 누가 몇 개의 양털을 깎았는지 수를 세기도 한다. 한마디로 양털깎이들을 보조한다고 볼 수 있다."

- 매니저로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
그레이엄 : "일 할 사람을 찾아서 팀을 짜는 것이다. 한 번 팀을 짜면 보통 1~2년 정도 같이 다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 1년에 보통 몇 군데의 양 농장에서 일을 하는가?
그레이엄 : "음, 한 30군데 정도 된다. 한 농장에서 보통 10일~2주간 일을 한다."

- 여성 양털깎이나 이런 일을 하는 동양인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그레이엄 : '여성 양털깎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딱 한 번 만나 본적이 있다. 대신 울 핸들러, 울 클라서, 요리사를 하는 여성은 꽤 있다. 우리 팀에도 2명이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일에 종사하는 동양인은 만나본 적이 없다."

- 만약 내가 원한다면, 나도 팀에 들어가 일 할 수 있는가?
그레이엄 : "가능하다. 양털깎이는 큰 체력이 뒷받침이 돼야하므로 힘들지도 모르지만, 울 핸들러는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 이 일이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처음 며칠간은 수습기간으로 잡아 일을 배워야 한다. 이때, 월급은 지불하지 않는다."

- 경력이 얼마나 되었고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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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시간 때마다 나에게 적극적으로 간식을 권하던 다정한 울 핸들러 타니아. ⓒ 김하영

타니아 :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이 직업은 독특하게도 일하면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시작하게 됐다. 호주 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쉽게 비자를 받아 일 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젊었을 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뉴질랜드에서 울 핸들러로 2년 동안 일을 해봤다. 뉴질랜드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더라. 호주보다 훨씬 더 깨끗한 자연환경에 모기나 파리도 별로 없더라.

그리고 나는 울 클라서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전에는 울 클라서로도 일을 했었다. 그 일은 일당이 250호주달러(약 19만원)로 울 핸들러의 일당 150호주달러(약 12만원)과 비교했을 때 훨씬 높다. 하지만, 이 팀에는 이미 울 클라서가 있어서 울 핸들러로 일하고 있다."

- 지금은 울 핸들러인데, 양털깎이가 될 계획이 있는가?
타니아 : "그럴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내 나이가 마흔이라, 양털깎이 일을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지금 수입이 그렇게 큰돈은 아니지만 괜찮은 수입이라고 생각한다."

- 가족이 있나? 있다면 많이 보고 싶지 않은가?
타니아 : "여기 한 팀에서 일하고 있는 양털깎이 크레이그가 내 파트너(호주에서는 법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혼인 경우, 상대방을 파트너라고 부른다)이다."

- 앞으로의 미래는 어떤가? 이 일을 계속 할 것인가?
타니아 : "아, 그건 어려운 질문이다. 한 번도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아마도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만약, 내가 내 집을 지어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때 이 일을 그만 둘 것이다. 그것도 그때까지 내가 얼마의 돈을 모으느냐에 달렸다."

"좋은 수입, 여행할 수 있단 점이 매력적"
[인터뷰] 양털깎이팀의 요리사 '데비'


앞서 양털깎이인 니노가 말했듯, 양털을 깎는 일은 체력소모가 크기 때문에 '영양' 가득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팀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양털깎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요리사 데비(41)를 만나봤다. 참고로 데비는 브리(4)라는 예쁜 딸을 두고 있다.

다음은 데비와의 일문일답

-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고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1살에 울 핸들러 일을 시작했고 그 이후에 울 클라서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지금은 이 팀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딸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내가 요리사의 경우 일을 하면서 딸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이 1살 정도 됐을 때, 뉴질랜드에서 여기로 일을 하러 왔는데, 그때는 딸을 봐주는 사람을 고용해서 같이 다녔다. 나는 남편과 같이 일을 하고 쉬는 시간에 딸을 돌보곤 했다. 그렇게 1년 정도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일단 좋은 수입,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 재미있다는 점, 매일 야영하는 것 같은 생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 왜 호주로 일을 하러 왔나?
"세계 여러 나라에 양농장이 있지만, 호주에서 받는 수입이 가장 크다. 특히 양털깎이들의 수입은 뉴질랜드와 비교 했을 때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호주를 여행하고 싶었다. 얼마 후면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간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곳을 여행했다. 아주 재미있었고 좋은 추억이 되었다. 저기 있는 저 캐라반이 그동안 우리 가족이 지낸 집이다. 떠나기 전에 팔고 떠날 거다."

- 남편인 글리와는 어떻게 만났나?
"원래 3년 동안 같은 팀에서 일한 동료였다. 그러다가 관계가 발전하게 됐다. 우리 일은 가족을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게 단점인데, 이렇게 모든 가족이 같이 다니니 다행이다. 또 팀원들이 모두 다 다정해서 우리 딸 브리와도 잘 놀아준다. 특히 울 핸들러 중 한 명인 다니엘이 브리랑 장난도 치고 하는데 그럴 때는 삼촌 같아서 좋다."

- 또 어느 나라에서 일해 봤나?
"나는 별로 여러 나라를 가보지 않았지만, 내 남편 글리는 스코트랜드와 영국, 아일랜드에서 일했는데 스코트랜드에서만 4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오래 전 일인데도, 그때 만나 동료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 뉴질랜드로 돌아가면 무슨 일을 할 건가?
"아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 우리 고향에 소 농장을 샀다. 절대 양 농장이 아니다. 남편 글리는 38살이라 이제 그 일을 그만둘 나이가 됐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라 이제 그만 둬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22부터 2006년 7월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8개월 동안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덧붙이는 글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22부터 2006년 7월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8개월 동안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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