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입니다'

[호주에서 열달10] 동성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등록 2006.08.15 18:29수정 2006.08.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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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에서 열 달을 지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 유기농 농장에서 자발적으로 일하기) 생활을 하며 지냈다. 친언니와 함께 여행 중이던 나는 세 번째 우프 집을 떠나기 전, 우프 회원 책에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 머무를 곳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입니다'

시드니 근처의 우프 호스트들을 중심으로 약 십여 군데에 메일을 보냈다. 그중 한 곳에서만 와도 좋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보기 위해 다시 우프 회원 책을 살펴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개 글 첫 문장이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입니다'였기 때문이다.

우선 말해두지만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다. 우리 언니도 아니다. 그렇다고 동성애자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20년 넘게 밥 먹고 TV보고 학교 다닌 우리들로서는 레즈비언 커플이 사는 곳에 간다는 것이 '어, 그래'하고 그냥 넘길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 엄마만 해도 '저런 정신병자들'하고 끝 아닌가.

무서움 반 호기심 반

그 문장 하나 때문에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우선 처음 드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무서움'이었다. 그들이 분명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이 아닌 줄 알지만, 나를 어떻게 해버리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지만 말이다.

'무서움' 뒤편으로는 '호기심'이 있었다. 내가 호주에 왔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인데, 무섭기는 하지만 한번 만나보고 싶기는 했다. 또, 대단히 보수적인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호주에서는 동성애자 문화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거기에 성격이 털털한 언니의 의견이 더해져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이 사는 곳에서 우프를 시작하게 됐다.

'지극히 평범한 두 엄마'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나치게 겁을 먹은 내 스스로 민망할 정도로 그들은 지극히 평범했다.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밤에 잠자러 갈 때 여자 둘이 같은 방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게 다다. 그 외에 다른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시드니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산에서 집을 짓고 사는 샐리(40대 중반, 가명)와 비키(30대 중반, 가명)는 7년 전부터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샐리는 '남자'와 한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딸이 있는데,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하였고 딸은 아직 청소년이라 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 아빠가 아닌 새 엄마와 사는 좀 낯선 풍경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지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리고 샐리와 비키의 사이에 4살짜리 아들, 에이드리안(가명)이 또 있었다. 비키가 남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것이다. 비키는 보통 엄마들처럼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는데, 어찌나 오냐오냐 키우는지 내 눈에는 그저 버릇없는 꼬마로만 보였다. 하지만 비키는 아들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닐 초등학교까지 이미 정해 놓은 상태였다. 차로 40분 걸리는 곳에 마음에 드는 대안학교가 있단다.

'동성애자는 결혼 못하는 나라, 호주'

이쯤 되면, 내가 예상한 대로 호주는 동성애자에게 친절한 나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샐리와 비키의 대답은 의외로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그들은 호주 정부를 아주 싫어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호주 정부는 아직 동성애자끼리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에이드리안의 친모인 비키가 죽으면 그의 양육권은 자동적으로 비키의 부모가 갖게 된다. 실제로 비키의 배우자인 샐리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유럽의 네덜란드나, 영국,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스웨덴, 독일 등이 동성애자의 결혼을 법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성애자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는 것까지도 합법인 것에 비하면 호주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이렇게 자국민에게는 보수적인 호주 정부가 호주로 이민을 오려는 동성애자 커플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해 12월, 영국에서 파트너인 데이비드 퍼니시와 결혼식을 올린 가수 앨튼 존이 호주에 이민 신청을 했다고 치자. 이런 경우 퍼니시는 존의 배우자로 인정을 받아 존과 함께 호주로 이민 올 수 있다. 만약 퍼니시와 존이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오랜 기간 동거만 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서로의 파트너라는 것만 증명을 하면 아무런 법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서로 사랑할 뿐 우리랑 다른 점 없어'

호주의 법은 이렇다고 치고. 그렇다면 호주 사람들은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이 동성애자 커플들과 10일 동안 같이 지냈는데, 그 이후로 다른 우프 가정을 만날 때마다 이 얘기를 꺼냈다. 사실 나에게는 큰 문화적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 자신들도 동생애자인 친구들이 있는데, 일반 사람이랑 다른 거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들은 그저 서로 사랑하는 것뿐이라며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직 호주 정부에서만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실제 호주 국민들은 동성애자에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자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60대 이상인 사람들 중에는 동성애자를 꺼려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소수의 의견이었다.

'게이커플 키스하는데 쳐다보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

이를 증명하듯, 시드니에서는 매년 3월 마디그라 게이&레즈비언 축제(The Sydney Gay & Lesbian Mardi Gras)가 3주 동안 아주 크게 열린다. 참가자만 1만2000여명이고 8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 내가 시드니에 있을 때, 작은 나이트클럽에 간적이 있다. 그곳에서 게이 커플이 키스를 하는 걸 본적이 있는데,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이런 호주와는 반대로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저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상'인 자신들을 기준으로 봤을 때 동성애자들은 너무도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 데이트하고 결혼해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선량한 풍습'을 해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거기에 우리 엄마, 아빠도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동성애자들을 존중한다. 내가 샐리와 미키랑 10일 동안 같이 지내 본 결과 그들은 비정상이 절대로 아니다. 정신병자는 더욱이 아니다. 그들의 동성애적 특성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다. 한국사회는 서로의 다양성을 더 많이 존중해 줘야 한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고 모두 평등한데, 어느 한쪽의 숫자가 훨씬 많다고 해서 거기에 기준을 맞춰 그렇지 않은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22부터 2006년 7월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8개월 동안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덧붙이는 글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22부터 2006년 7월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8개월 동안 우프(WWOOF;Willing Worker On Oganic Farm)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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