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쯤. 콩을 심는 할아버지 모습전희식
몸의 건강은 정신의 건강과 직결되는 법. 더구나 아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날로 병약해지면서 귀도 멀고 걸음도 어줍어지자 바깥출입도 잘 안 하더니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갔고 남 보기 창피하다고 아예 방안에 들어앉아버렸다. 할아버지랑 얘기하다 말고 아픈 데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귀가 머신 우리 어머니가 떠올랐다. 늙으신 어머니가 헛소리를 할 때마다 조카들이 까르르 웃어대는 모습도 떠올랐다. 할아버지 몸을 살펴보았다. 머리와 목, 가슴, 팔뚝과 발까지 꺼먼 반점이 번져 있었다. 어떤 곳은 손바닥만하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뒷머리만 하얀 곰팡이가 슬었었는데 온 몸에 시커먼 반점이 퍼져 있었다. 아들의 얘기로는 피부암이라고 했다. 그것도 말기. 할아버지만 모르고 계신다고 했다. 병원 입원도 여러 차례 했었고 머리맡에는 진통제와 연고가 수북하였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놓지 않고 하소연을 했다. 윗머리에서 뭔가가 얼굴로 흘러내려서 손으로 닦으려고 하다 보면 아무것도 없다면서 머릿속에 있는 병이 여기저기로 흘러 다닌다고 하셨다. 그것이 이제 가슴까지 내려 왔다면서 가슴을 활짝 열어 보였다.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인자 살만큼 살았고 죽을 때가 되었나보다고 하셨다.
"내가 소원하는기 죽는기여. 그런데 죽지도 않고 이제 나는 들리지도 않아.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여. 인자 인간도 아녀"하고 자탄하셨다.
나는 섣부른 위로를 하지는 않았다. 하나마나한 위로는 그것이 허황되다는 것을 당신이 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잘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또 무엇보다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냐고 말해 주었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새로운 발견이라도 되는 듯 수긍하시는 태도였다. 남의 불행을 위안꺼리로 삼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 드렸다.
할아버지는 머리와 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받기 위해 일회용 기저귀를 베개에 받쳐두셨고 거기에는 말라붙은 혈흔이 있었다. 머리맡에는 기저귀 다발이 여럿 더 있었다. 주의 깊으신 할아버지는 혹, 주무시다 실수할까봐 요 위에 넓은 비닐을 까셨는데 움직이실 때마다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에 여러 번 잠을 깨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서 보면 방안의 공기가 몹시 탁하고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토방인 내 방에서 자다가 도시 아파트 집에서 잘 때 느끼는 탁한 기운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쇠한 할아버지의 숨과 몸에서 나는 쇠락한 기운이 방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결이지만 할아버지 손을 살그머니 잡아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근데 말여. 어이 히시기. 콩 순 문질러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