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6일 낮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권력"이라며 "인사권의 문제는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이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얼핏 외형적으로는 당·청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해 갈등을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평행선'이다. 그것은 다른 비대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석현 비대위원도 "대통령과 당은 공동운명체이므로 국민여론을 수렴해서 대통령께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인사 문제에 관해서도 건의는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당·청간에 대화나 대화 협의체가 없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대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당·청이 근본적으로 서로 처한 입각점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회동에서 합의된 결론은 당·청이 모두 인정하듯 '미봉책'일 뿐이다. 그것은 당·청간의 갈등이 '중층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의 당·청 갈등은 단순히 인사권 차원을 넘어 정국 운영방향을 둘러싼 '미래권력'(당)과 '현재권력'(청와대) 간의 대립구도에서 나온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참모들과의 회동에서 "대통령 한 번 하려고 그렇게 대통령을 때려서 잘 된 사람 하나도 못 봤다"고 말해,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거취와 법무부 장관 인선에 대한 당 지도부의 문제 제기를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로 규정하고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권력의 도전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문재인 법무카드'가 김근태·정동영으로 대표되는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군'과의 대립구도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권에서는 오히려 참여정부에서 '왕수석'으로 통한 문재인 전 수석이 이른바 '부산파'의 좌장이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이광재·안희정 라인 등 계파간 권력투쟁 양상으로 진단한다.
노 대통령이 이날 회동에서 "청와대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동안 특정 측근에게 권력을 과도하게 위임한 적이 없었다"면서 "철저하게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노 대통령은 이어 "장담컨대 참여정부는 임기를 끝내는 마지막까지 권력형 게이트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재인 카드' 세 가지 경우의 수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제 노 대통령이 과연 '문재인 카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이다. '문재인 카드'를 고수 혹은 철회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자리'에 쓰는 것이다.
아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노 대통령이 정작 이날 회동의 성격에 대해 "문재인 수석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오찬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인사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비추어 현재로서는 '문재인 카드'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휴가중에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한 한 인사도 노 대통령이 "나더러 주위에 같이 있는 사람만 쓴다고 비판하는데,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건대, 문재인 카드를 강행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인사권을 내세워 문재인 카드를 고수할 경우, 겨우 봉합된 당·청관계는 다시 악화될 것이 뻔하다. 특히 이는 문 전 수석의 '영남 정권' 발언으로 5·31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호남 및 수도권 출신 일부 의원들에게 탈당의 명분을 제공하는 등 당 분열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문재인 카드를 철회하는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이날 회동에서 "우리에게 정치지형이 유리하지 않는데 대통령도 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당·청 갈등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에게 당에 소속된 의원들을 수습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한 데서 유추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당·청 관계는 상당 부분 복원되겠지만, 노 대통령으로서는 임기말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가중될 것이 뻔하다.
마지막 세 번째는 문재인 전 수석을 법무장관이 아닌 '비서실장' 같은 청와대 참모로 기용하는 것이다. 이는 당·청은 물론 한나라당을 포함한 여·야 모두에게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럴 듯한 카드이다.
사실 문재인 카드는 여당 내에서뿐만 아니라 야당으로부터도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야당은 다른 자리와 달리 법무장관은 향후 대선을 엄정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 인사를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정치 공세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당·청은 대통령의 휴가중에 발생한 인사권 문제를 계기로 당·청 간의 갈등 수위가 비등점으로까지 치닫자, 파국을 막기 위해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러나 양측은 정작 문재인 카드라는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의 뇌관은 그대로 둔 채 오찬에서 서로 '폭탄 돌리기'만 하고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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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청 '문재인 카드' 뇌관 둔 채 '폭탄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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