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등록 2006.08.09 18:36수정 2006.08.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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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조롱조롱 옥구슬이 달렸네요.
거미줄에 조롱조롱 옥구슬이 달렸네요.이승숙
푸른 미명 아래 대지가 눈을 뜬다. 밤새 촉촉하게 이슬이 내렸다.


찬거리를 장만하러 텃밭으로 나가는데 여기저기에 거미줄이 널려 있다. 그냥 무심코 가다가는 영락없이 거미줄을 뒤집어쓰게 된다. 거미줄은 끈적끈적해서 잘 뜯어지지도 않는다. 얼굴에 묻은 거미줄을 다 뜯어낸 뒤에도 괜히 얼굴이 스멀거린다.

거미줄마다 아침 이슬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바로 그 옥구슬이다. 가만 보면 거미줄은 늘 같은 자리에 쳐져 있는 것 같다. 분명 어제 걷어내었는데 오늘 또 가보면 그 자리에 그 모양으로 거미줄이 쳐져 있다.

거미들도 자기만의 영역이 있는지 왕거미가 거미줄을 친 자리엔 항상 왕거미 줄이 쳐져 있었고 무당거미는 또 다른 자리에 거미줄을 치고 잠복해 있다.


거미줄은 벌레들이 많이 다닐 것 같은 그런 통로에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나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통로 같은 바람 길이다. 추녀 밑에 달려 있는 야외등 밑에도 거미줄이 쳐져 있다. 그 어디건 벌레들이 많이 날아들 것 같은 곳엔 어김없이 거미줄이 쳐져 있다.

엄지 손톱보다 더 큰 왕거미가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네요.
엄지 손톱보다 더 큰 왕거미가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네요.이승숙
거미는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이로운 동물인데도 외양 탓인지 사람들은 거미를 싫어한다.


고려 말의 대문장가인 이규보는 '방선부'라는 글에서 거미를 이렇게 적고 있다.

영리할 손 저 거미란 놈, 그 족속이 번성하네. 누가 네게 가르쳐 둥근 배를 그물로 채웠고, 누가 기교를 주어 그물을 엮느냐. 매미가 그 거물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기에, 내 차마 듣지 못하여 떼어 날려 보내니, 곁에 있던 사람이 나를 보며 힐난하는 말, "저 두 동물은 똑같은 작은 벌레이니, 거미가 그대에게 무슨 손해이며 매미가 그대에게 무슨 이익인가. 매미를 살려주면 거미가 굶주리니 이편은 고마워해도 저편은 억울해 할 것을. 어리석다 그대여, 어찌 그를 놓아주는가" 하기에 즉석에서 대답은 하지 못하고 마음이 매우 언짢았다.

이규보뿐 아니라 사람들은 거미를 흉측하다고 생각하며 음흉하다거니 탐욕스럽다거니 하며 싫어한다. 하지만 거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흉측하고 음흉한 동물은 아니다.

거미의 조상은 고생대의 '삼엽충'이라고 한다. 거미는 그 오랜 옛날부터 줄을 뿜어 내어서 먹잇감을 사냥해왔다.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 훨씬 이전부터 거미는 왕성하게 자손을 번식시키면서 진화해온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주변에서 살아가는 거미들은 우리가 이 곳에 이사 오기 훨씬 전부터, 아니 이 집이 세워지기 전부터 살아온 거미들의 후손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터전에 우리가 끼어든 셈이다.

아침에 거미를 보면 주머니에 돈이 생긴단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많이 찾는다는 속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 부지런한 사람에게 어찌 재물이 생기지 않겠는가. 부지런함이 최고의 미덕이었던 농경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속담이다.

무당거미는 키 낮은 풀숲에 거미줄을 쳤네요.
무당거미는 키 낮은 풀숲에 거미줄을 쳤네요.이승숙
또 아침 거미는 반가운 손님이 올 징조라고 했다. 손님이 오신다는데 어찌 너저분한 집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손님 오신다는 그 핑계로 집을 치우고 정리하면 나가려던 복도 다시 들어올 것이다. 자고로 부지런하면 입이 즐겁고 눈이 즐거워진다.

아침에 텃밭에 나가다가 거미줄을 만나면 귀찮아하고 걷어 버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부터는 달리 생각해야겠다. 아침에 거미를 보면 주머니에 돈이 생기다 했으니 거미 만나는 걸 귀찮아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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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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