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 모신다면, 좋은 추억만들기 이벤트를

등록 2006.08.10 16:39수정 2007.06.1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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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머니 물품들

어머니 물품들 ⓒ 나관호

어느 날, 어머니가 자신의 보물가방을 들고 그 속에서 지갑을 꺼내셨다. 동전이 가득했다. 거실에 있던 아이들 저금통(밑에 꺼낼 수 있게 되어 있음)을 열어서 자신의 지갑을 채우신 것이다.


이유를 물었다. 옛날에는 지갑에 돈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통장 하나 없이 사셨던 분이 고모와 함께 이불을 만드시면서 수입을 얻으셨던 오래 전 일을 기억하신 것이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큰 고모와 어머니는 집에서 혼수이불 만드는 부업을 하셨다. 그때는 지갑에 두툼한 지폐를 넣고 다니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옛 추억을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물품을 찾아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그때의 일을 술술 말씀하신다. 친목계원들의 사진을 보며 말씀하신다.

"이 이는 식당을 했어. 그리고 이 여자는 남편이 한의사야. 어, 그리고 이 이는……."
"어머니 젊으셨을 때 참 미인이셨어요?"
"뭘, 지금 쭈그렁 방탱이 됐는데."
"지금도 예쁘세요?"
"이때가 좋았어."
"아버지 생각나세요?"
"아이고, 영감이 있었으면 좋았지. 니 아버지만 사람 있는 줄 아니."

a 이모들과 함께(뒷줄 오른쪽이 어머니)

이모들과 함께(뒷줄 오른쪽이 어머니) ⓒ 나관호

그리고 이번에는 사진을 보자마자 웃는다. 이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이모 이름을 기억 못하신다. 그러더니 다시 말씀하신다. "맞아, 정애, 정자, 윤하" 동생들 이름을 대신다. 그런데 막내 이모 이름은 기억 못하신다. 그리고 가슴 아픈 말씀이 이어졌다.


"얘들은 한 번도 안온다니. 동기간은 자주 만나야 하는데."
"그러게요?"
"정애는 전주 살고, 정자는 부여 살지? 윤하는 뭐한데니? 내가 업어 키웠는데."
"네? 그런데……."

나는 말문을 닫았다. 사실 어머니 바로 아래동생인 큰이모와 막내인 외삼촌은 이미 하늘나라에 간 지 십수 년이 넘었다. 어머니 기억에는 아직도 동생들이 살아 있었다. 동생들이 이 땅에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가르쳐 드리고 싶었다. 잠시라도 좋은 추억에 젖으시길 바랐다. 나는 빠르게 어머니의 생각을 이동시켰다.


"어머니, 이 사진 생각나세요?"
"어머, 이게 나네?"

a 땡땡이 옷 입은 어머니(오른쪽)

땡땡이 옷 입은 어머니(오른쪽) ⓒ 나관호

내가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해서 사드린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찍은 어느 분의 행사 때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어머니는 그 땡땡이 원피스를 닿도록 십 수년 간 입으셨다. 당신의 얼굴이 젊은 것을 보고 웃으신다.

a 아들 대학원 졸업식에서

아들 대학원 졸업식에서 ⓒ 나관호

그리고 내 대학원 졸업식 때 찍었던 사진을 보여드렸다. 당신이 가운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계신 모습을 보더니 "이게 뭐냐"고 물으신다.

"내 졸업식 때 찍으신 거예요."
"맞아. 이 모자 보니까 생각나네."
"어떤 생각나세요?"
"그때 참… 어떤 아줌마가 글쎄 꽃을 달라고 했잖니."

a 이불 부업하실 때 남은 소품

이불 부업하실 때 남은 소품 ⓒ 나관호

어머니의 창작소설이 시작됐다. 이런 형상은 지우개를 가진 노인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잠시 시간을 내서 어머니 창작품을 스크랩했다. 그런 후 어머니가 이불 만드는 부업을 하실 때 사용하고 남은 천 조각을 모아놓은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는 중학교 때 여자친구에게 받은 추억의 편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상자를 기억 못하신다.

"이게 뭐냐?"
"어머니, 옛날에 이불 만드시고 남은 천 모아 놓으신 거예요."
"그래. 내가 이렇게 기억이 없어."

그리고 어머니 목걸이와 반지와 시계가 들어 있는 나무상자를 보여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누구 것이냐"고 물으신다. 젊은 시절도 보석이나 치장거리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래서 시큰둥하다. 그래서 여름에도 가끔 찾아 입으시는 빨간 겨울 내복을 보여드렸다. 유난히 그 내복에 집착하신다. 더 좋은 내복이 많은데도 그것은 입지 않으시고 빨간 내복만 입으신다. 그 내복은 내가 첫 월급을 타서 사드린 것이다. 엉덩이 부분은 낡아 구멍이 났다.

언젠가 버리려고 했더니 강경하게 반기를 들으셨다. 어머니를 생각해 옷장 맨 위에 항상 올려놓는다. 생각해보니 그 내복의 의미를 기억은 못하셔도 무의식에는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첫 월급 선물에 대한 의미를 모성애는 기억을 넘어 본능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추억이 제일 많이 담긴 물품인 낡은 성경책을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옛날 교회 이야기를 하신다. 들어보니 거의 정확히 기억하신다.

"어머니 이런 것들 보니 좋아요?"
"좋아. 옛날이 좋았어."
"어머니, 그렇게 말하지 마시고요. 옛날도 좋고 지금도 좋다고 하세요?"

a 어머니 친목계원들(맨 왼쪽이 어머니)

어머니 친목계원들(맨 왼쪽이 어머니) ⓒ 나관호

어머니는 자꾸 옛날이 좋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는 것 같았다. 기억에 혼선이 올 때 가끔은 자신을 모습을 보고 "내가 빨리 OO야 하는데"하시며 가슴을 치시곤 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후부터는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실 수 있도록 좋은 이벤트를 많이 만든다. 수년 후에 좋은 기억만을 말하시기 바라면서.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을 모시고 사는 가족들은 '좋은 추억 만들기' 이벤트를 자주 하면 좋다. 그것은 내년을 위한 준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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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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