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당의 이례적인 '탈중국' 정책 관심

중국 언론 "대만 단독 명의 UN가입 시도할 것"

등록 2006.08.13 14:52수정 2006.08.13 14:53
0
원고료로 응원
지금 천수이볜 대만(중화민국)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민주진보당)은 '중국'이라는 정체성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민진당은 중화민국이 아닌 '대만' 고유의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동안 중화민국 명의로 국제연합(UN) 재가입을 추진해 온 천 총통이 오는 9월부터는 대만 명의로 UN 가입을 시도할 것이라고 최근 중국계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탈중국 노선은 송나라(960~1279년) 이래 역대 중국 왕조의 노선과 비교할 때에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대십국(10세기)의 분열을 극복한 송나라 이후로 중국에서는 탈중국화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명확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는 천수이볜 대만 총통.

도미니카공화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는 천수이볜 대만 총통. ⓒ 총통부 홈페이지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916~1125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년),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1260~1370년), 만주족(여진족의 후예)이 세운 청나라(1616~1911년)는 한족(漢族)이 아닌 변방 이민족이 세운 국가이기는 하지만, 이 국가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중국화를 지향하였다. 변방 이민족 출신이 세운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중국문화를 계승하는 중국의 왕조가 되기를 희망하였던 것이다.

한 예를 들어, 몽골 군대가 고려 무인정권의 저항을 끝내 꺾지 못하고 철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철군을 전후한 시기부터 몽골이 중국 왕조를 지향한 것과 관련있다. 중국 왕조가 되는 데에 국력을 집중하자면, 고려와의 군사적 대결을 회피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중국을 침략한 이민족 왕조가 중국의 흔적을 없애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중국왕조로의 변신을 추구하였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는 중국문화의 용광로 같은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화(中華)에만 집착하고 이적(夷狄)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중화와 이적을 통합하여 화이(華夷)라는 새로운 중국문명을 창조해 내는 면에서 중국 한족은 세계 그 어느 민족도 따라가기 힘든 천부적 재질을 표출한 것이다.


중국 한족의 이러한 특성이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역사분쟁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계속해서 유입되는 이민족 문화를 끊임없이 포용하여 새로운 중국문화를 만들어 내는 한족의 문화적 특성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의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중국과의 경쟁을 계속해야 함은 물론이다.

위와 같은 중국 사회의 통합 지향은 중화민국 건국(1912년) 이후의 군벌 대립기에도 일정 정도 표출되었다. 이 시기에 직예파·안휘파·봉천파 같은 군벌집단뿐만 아니라 국민당계·공산당계 등이 가세한 군사적 대립이 계속되었지만, 특기할 만한 것은 이들 세력이 분열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통일을 지향하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1949년) 후에도 이러한 상황에는 변함이 없었다. 본토의 공산당과 중화민국의 국민당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상호 경쟁을 벌이기는 하였지만, 이 시기에도 두 정치세력은 어디까지나 중국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000년 간의 위와 같은 중국사와 비교할 때에, 천수이볜 총통과 민진당의 노선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00년간 그 어느 정권도 명확하게 탈중국을 내건 사례가 나타나지 않는데, 천 총통과 민진당 만큼은 탈중국이라는 노선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거란족·여진족·몽골족·만주족 같은 이민족 출신의 왕조도 결국에는 중국 왕조를 지향하였다는 점을 본다면, 민진당의 탈중국 노선은 중국 역사에서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만 인구의 85% 정도가 중국 본토인 광뚱성·푸젠성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예라는 점을 볼 때에도, 이들의 탈중국 노선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본래부터 대만에 거주하였던 고산족(인구의 2%)이 탈중국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중국 본토 출신의 후예들이 탈중국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 사회가 고도의 문화 통합력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에도, 지금 대만 내의 현상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천수이볜과 민진당의 탈중국화 실험이 성공할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점들을 고려할 때에, 천수이볜과 민진당의 시도는 지난 1000년간 중국 역사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사실적 관점으로 천 총통과 민진당의 탈중국 노선을 관찰할 경우에는, 자기 정치권력의 유지·강화를 시도하는 노선에 불과하므로 비판받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나 공동체라는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면, 이러한 탈중국 노선은 분명 중국민족에 대한 배신적 도전행위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