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입맛대로 춤추는 '코드' 판별법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언론의 헌재 인사 보도 '소모적' 논란만

등록 2006.08.17 10:46수정 2006.08.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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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사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논조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는 17일자 <중앙>과 <한겨레>.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사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논조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는 17일자 <중앙>과 <한겨레>.


헌법재판소 구성을 두고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한겨레>는 '헌재 시계'가 6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평가절하했다. "헌재 안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온 전효숙·이공현·조대현 재판관에다 사법개혁 작업을 지휘해온 목영준 (법원행정처)차장 정도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될 뿐 나머지 내정자들은 법원·검찰의 주류 관료조직에서 성장해 온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조선일보>는 "헌재가 상대적으로 진보·개혁적인 색채를 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했고, <한국일보>는 성향 분포로 볼 때 개혁 : 중도 : 보수가 2 : 5 : 2로 중도 성향의 재판관이 다수를 점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세 신문의 평가는 이처럼 다르다. 헌재 재판관 구성을 두고 <한겨레>가 보수, <조선일보> 진보로 규정했다면 <한국일보>는 중도에 방점을 찍었다.

어느 신문의 평가가 타당한지를 재는 건 무의미하다. 평가항목이 '성향'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꼴통' 인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한 '성향' 평가는 '추이'를 살피는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 평가자의 주관적 '성향'이 개입된다. '성향' 평가는 근본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신문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있다. '코드 인사'다.

<동아일보>는 전효숙 헌재소장 내정자, 김종대 재판관 내정자, 조대현 재판관 등이 모두 사법고시 17회 동기라며 '시벌(試閥)'이 헌법기관을 장악했다고 맹비난했다.


<중앙일보>는 "야당과 대한변호사협회는…'서열파괴' '코드집착'이라고 반대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고 비판했다.

'코드 인사' 비판은 나름대로 객관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인다. 사시 17회 동기라는 점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상징적인 예가 하나 있다. 김종대 재판관 내정자는 사시 17회일 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 모임인 '8인회' 멤버다. '코드 인사'로 치면 전효숙 헌재소장 내정자보다 한 수 위인 '성골'인 셈이다. 그럼 이 사람에 대한 신문의 평가는 어떨까?

'보수 성향' 김종대 재판관도 코드 인사?

<한겨레>는 김종대 내정자를 '보수'로 분류한 반면 <한국일보>는 '합리적 중도파'에 포함시켰다. 그럼 <조선일보>는 개인의 이익보다 환경적 이익을 중시하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지만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보수적 시각을 보였다"고 평했다. '시벌(試閥)'을 맹비난한 <동아일보>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보수 성향이지만 판결에서는 소신이 뚜렷하다는 평"이라고 했다.

참으로 희한한 장면이 여기서 클로즈업 된다. '코드 인사'의 전형이자 '시벌(試閥)'의 멤버인 김종대 내정자의 성향은 중도 또는 보수다. 그런데도 왜 코드를 문제 삼을까?

성향을 문제 삼지만 기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더 중한 문제가 있다. <동아일보>는 헌재 재판관 구성을 두고 "폐쇄적 연고주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헌재 재판관들이 "인연에 약하다"고 했다.

이런 주장엔 하나의 예단이 깔려있다. 헌재 재판관들이 성향과는 무관하게 연줄에 따라 정치적 판결을 내려왔으니까 이번에 내정된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는 단정 말이다.

그렇다고 치자.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조선일보>는 그랬다. "국민들은 신행정수도법 사건과 행정복합도시법 위헌 청구에 대한 헌재 결정을 통해 대통령과 여당이 지명한 재판관은 누구고, 누가 대통령과 사시 동기이며, 누가 야당이 지명한 재판관인가를 아무런 정보 없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하필이면 대통령 탄핵 심판 사례는 쏙 뺐냐고 묻고 싶지만 제쳐 두자. 헌재 재판관들이 추천 연고에 따라 판결을 내렸다면, 그리고 그것이 문제라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추천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뾰족수가 없다

추천제도 바뀌면 해결될까?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판관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3부가 각각 3분의 1씩의 추천권을 행사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특정 집단이나 특정 인물이 추천권을 독점하는 경우, 정반대로 국민 대표성을 띠지 못하는 집단들이 추천권을 나눠갖는 경우 모두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문제라고 하니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뭐가 있을까?

국회가 추천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면? 그럼 정파별 나눠먹기로 귀결돼 헌재는 국회 복사판이 될 것이다.

대법원장이 추천권을 쥐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김종대 내정자는 대법원장 추천 케이스다. 그런데도 코드 인사를 운위한다. 왜일까?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큰 코드'가 '작은 코드'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말고도 대법원장이 추천권을 독점 행사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대법원과 헌재는 대등한 위상을 가진 헌법기관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제도적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설령 대안을 찾는다 해도 추천권을 행사하는 측의 코드가 또 다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코드의 주체가 바뀔 뿐 코드 인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말을 돌리자. 핵심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운영이다. 추천권자나 임명권자가 자신과 특별한 연고가 있는 사람을 배제해 논란을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하면 된다. 예를 들어 사시 17회를 배제하면 된다.

그러면 만사 해결일까? 이 또한 아니다. 사시 17회만 콕 찍어 배제하면 이는 일종의 연좌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한 문제가 있다. 설령 사시 17회를 배제하고 다른 인물을 재판관에 앉힌다 해도 <조선일보> 등의 논리대로라면 그들 역시 추천 연고에 따라 판결을 내릴 것이다.

말은 많고 표현은 거칠지만 생산성은 없다. 자기 입으로 자기 꼬리를 무는, 무한궤도의 소모적 논란만 낳고 있다. 실상이 이렇다면 이제 접을 만도 하다. 일부 언론과 야당이 주장하는 '코드'에 실체가 있는 건지 되돌아볼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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