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권토중래할 날 있겠나?

뒷산에 토종닭들이 활개 치는 그날을 그리며

등록 2006.08.17 16:11수정 2006.08.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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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장인어른한테 닭둥우리 두어 개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자."
"닭둥우리는 왜?"
"응, 또 다시 시작해 봐야지. 아무래도 닭둥우리가 있어야 부화가 잘 될 거 같아."
"에이구, 알 까봤자 뭐 해? 또 개 풀리면 다 사냥해 버릴 걸."



우리 남편은 지치지도 않나 봐요.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도전하네요. 도대체 그 사람 꿈은 뭘까요?

그 사람 꿈은 우리 집 뒷동산에 닭들이 활개 치며 돌아다니는 거래요.

알을 까고 나온 병아리들을 어미 닭이 데리고 다니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알을 까고 나온 병아리들을 어미 닭이 데리고 다니며 가르치고 있습니다.이승숙
우리 집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집인데, 집 뒤가 바로 야트막한 동산이에요. 그래서 닭 키우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지요.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집은 닭들이 제법 많았답니다.

처음 시골로 이사온 사람들은 멋모르고 이것저것 다 심고 다 키워보거든요. 우리도 그랬어요. 시골로 이사 온 첫 해에 우리는 200평도 채 되지 않는 텃밭에 10가지도 넘는 작물을 심었어요.

밭작물만 많이 심은 게 아니고 동물들도 욕심스레 많이 키웠어요. 개가 서너 마리가 있었고 고양이에 닭에 오리까지 키웠거든요. 그러다가 차츰 정리를 하고, 지금 우리가 키우는 동물은 개 세 마리와 토종닭뿐입니다.


예전 우리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다 닭을 키웠지요. 어디 나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닭이 마당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푸근해져요.
예전 우리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다 닭을 키웠지요. 어디 나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닭이 마당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푸근해져요.이승숙
한때는 토종닭이 30∼40마리도 넘게 집 뒷산을 돌아다닌 적도 있어요. 우리 집은 처음에 토종닭 몇 마리로 시작했는데, 그게 2년쯤 지나니까 그렇게 많이 불어나더라고요. 유정란도 하루에 열댓 개씩 나왔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때 참 인심도 많이 썼어요. 누구든지 우리 집에 오면 유정란을 주었거든요.

그렇게 닭들의 세상이었는데, 지금은 지리멸렬입니다. 닭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놈의 삽살개들 때문입니다.


삽살개가 한 번 끈을 풀고 나서는 날이면 양들의 침묵이 아니라 '닭들의 침묵'이 됩니다. 발바리들은 닭들과 평화롭게 잘 지냈는데, 이상하게 진돗개나 삽살개는 사냥 본능이 있는지 끈만 풀리면 왕창 사냥을 해버립니다. 그때마다 맥이 풀린 남편은 몽둥이를 들고 개를 으르고 했지만, 이제는 우리 남편도 도가 통했는지 그러면 그랬냐, 또 부화하면 되지 그런 식으로 나갑니다. 개가 닭을 사냥하는 거, 그건 개의 본능이 아니라 개의 업보라고 하네요.

장닭은 늘 주변을 경계합니다. 주변에 위험 요인이 등장하면 장닭은 암닭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래서 개가 풀리면 장닭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습니다.
장닭은 늘 주변을 경계합니다. 주변에 위험 요인이 등장하면 장닭은 암닭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래서 개가 풀리면 장닭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습니다.이승숙
올 봄에도 남편은 온갖 정성을 다 들여서 병아리를 얻을 꿈에 부풀었습니다. 추위가 가시자마자 우리 집 씨암탉이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밤나무 밑에 어설프게 만들어둔 닭장 바닥에 낙엽을 긁어모아서 옴폭하게 알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씨암탉은 하루에 하나씩 낳은 알들을 드디어 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서둔 탓일까요. 아니면 강화의 바닷바람이 맵찼던 걸까요. 나중에 알을 까고 나온 병아리는 몇 마리밖에 안 되었고, 나머지 알들은 얼었다 녹았다 하다가 다 썩어버렸더군요.

몇 마리 안 되는 병아리들이었지만 어미 닭은 정성을 다해 돌보더군요. 한 달 정도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건사하다가 또 다시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5월 중순께였습니다. 스무 하루가 지난 뒤인 유월 초순에 알을 깨고 병아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엔 중병아리 대여섯 마리와 금방 나온 병아리 열두어 마리, 그리고 씨암탉 한 마리, 수탉 두 마리 이렇게 닭들이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잔디밭에 오종종 거리면서 병아리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지푸라기들을 긁어 모아서 알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네요. 봄이 되면 암닭은 이렇게 모인 알을 품기 시작합니다. 대개 15개 정도 품습니다.
지푸라기들을 긁어 모아서 알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네요. 봄이 되면 암닭은 이렇게 모인 알을 품기 시작합니다. 대개 15개 정도 품습니다.이승숙
그런데 또 사단이 터졌습니다. 일은 꼭 우리가 집을 비우면 납니다. 토요일 오후에 서울 사는 친척 언니네 놀러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삽살개 갑비가 꼬리를 치며 우리를 온 몸으로 반기지 뭡니까.

일이 터진 겁니다. 개가 풀렸으니 안 봐도 뻔한 일입니다. 남편은 옷도 안 갈아입고 바로 손전등을 들고 이곳 저곳을 살펴보러 나갔습니다. 그 다음날 확인해 보니 글쎄 알토란같은 씨암탉과 중병아리, 그리고 한 달쯤 큰 새끼 병아리까지 다 사냥해 버린 겁니다.

토종닭들은 나무 위로 날아다닐 수 있는데, 그래서 얼마 정도 큰 어른 닭들은 개가 풀려도 나무 위로 날아올라가서 위기상황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아마도 병아리들이라서 피해가 컸나 봅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수탉 한 마리와 중병아리 2마리, 그리고 새끼 병아리 한 마리밖에 없습니다. 전부 다 수탉입니다.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들은 어른 닭이 되어도 알을 품을 줄 모릅니다. 알 품는 기능이 퇴화되어 버린 거지요. 토종닭은 알 품는 기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무우를 넣고 국을 끓이면 예전 어릴 때 먹었던 그 국맛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들은 어른 닭이 되어도 알을 품을 줄 모릅니다. 알 품는 기능이 퇴화되어 버린 거지요. 토종닭은 알 품는 기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무우를 넣고 국을 끓이면 예전 어릴 때 먹었던 그 국맛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이승숙
개를 잘 단속해도 어느 날인가 끈이 끊어지거나 나사가 풀립니다. 개는 가만 있지 않고 설치고 나대는 동물이라서 알게 모르게 끈이 그리 됩니다. 닭들을 닭장 안에 가둬 두고 키우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날 텐데, 무슨 고집인지 남편은 닭들을 풀어놓고 키웁니다.

남편은 마당이나 채전 밭에 닭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답니다. 그래서 닭들을 풀어놓고 키우는데 그렇게 하니 한번씩은 일을 당합니다. 그래도 우리 남편은 또 꿈을 꿉니다. 집 뒷산에 닭들이 활개 치며 돌아다니는 세상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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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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