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현대음악,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들어보자

등록 2006.08.18 17:19수정 2006.08.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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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아프고 졸린 클래식. 특히 현대음악이란 녀석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 다양한 퍼포먼스, 타악기의 과도한 사용 등으로 인해 음악인지 소음인지 분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음악은 음악사에서 빼 놓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현대음악이야 말로 철학적 진리를 전하고자 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먼저 넓은 의미로서 현대음악을 들 수 있는데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음악을 일컫는다.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하는 좁은 의미의 현대음악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감수성, 예술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음악은 의외로 지극히 합리적이고 수학적이며 건축과 흡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한 옥타브를 7개의 음(도레미파솔라시)으로 나누고 그것들 간의 관계를 조합해 사람들이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 또한 협화음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음과 음사이의 수학적 관계가 일정하게 드러난다. 그 관계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아름다운 소리는 금방 불편한 소리로 변한다.

이러한 수학적 관계가 있기에 음악을 이루고 있는 구조 즉 템포, 리듬, 주요 주파수 대역, 음악의 구성 형태 등 음악을 구별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컴퓨터를 이용해 데이터화 하는 음악 유전자의 추출이 가능하다. 아무것도 없는 오선지에 음표를 쌓아 음의 높이에 따른 화음을 만들고 음의 길이에 따라 음표를 늘어놓음으로 리듬과 박자를 형성하는 작업은 기둥과 벽으로 공간을 만들고 나누는 건축과 흡사하다.

이렇게 음악은 서양의 합리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이런 수학적 합리성은 피아노 건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1개의 옥타브를 7개의 음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뒤로 길게 이어지는 소수점을 정확히 표현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 즉 반음이다. 이는 달력에서 윤년, 윤달과 같이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클래식 음악은 당연히 머리 아플 수밖에 없다. 이는 악기가 많이 사용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하나의 테마는 여러 악기가 내는 다양한 소리로 구성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여러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내어 화음을 만들며 각각의 악기는 또한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진행되기도 한다. 따라서 청자는 음표의 수직적 관계(화음)와 수평적 관계(리듬과 박자) 모두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러한 관계를 통해 다양한 의미(기쁨, 슬픔, 감동 등)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자는 테마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의 테마가 끝나면 그 테마는 변주되는데 그 변화를 찾아내며 듣는 것이 클래식 음악 감상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테마 안에서도 어떠한 악기가 주 멜로디를 연주하는지 주 멜로디가 어떠한 악기로 이동하는지에 대한 것들도 클래식 음악의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아놀드 쇤베르크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는 서양음악의 바탕에 깔려있는 합리성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음 사용의 비평등성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C장조 1악장 알레그로를 예로 들어보자. 모 피아노 회사의 CM송으로도 삽입된 이 곡에 사용되는 악기는 피아노이며 형식은 소나타형식을 따른다.
사용되는 조는 C장조로 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도레미파솔라시도로 구성된다. 즉 C장조란 뜻은 C장조를 이루는 음들과 화음을 이루는 음을 사용한다는 뜻이고 결과적으로 악장 전체가 진행되는 동안 화음을 이루지 못하는 음 즉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음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한 옥타브를 7개의 음으로 나누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반음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음악을 작곡함에 있어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 음이 존재하고 특정 음이 과다하게 많이 사용되는 것은 모든 소리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성과 완벽함을 잃는 행위다.

이러한 비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해 쇤베르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 12음 기법이다. 이는 한 옥타브 안에 있는 12개의 모든 음을 1번씩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나열된 음은 역행, 전위, 역행전위 등으로 발전, 진행되어 곡을 만들어 나간다. 마치 수학시간에 배운 역 명제, 대우 명제를 만드는 것과 흡사한 방법이다. 이러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은 모든 음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해 새로운 소리를 표현한다.

즉 기존 음악이 가지고 있던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성을 깨뜨리고 진정한 합리성 즉 진리에 다가가고자 한 시도다. 덕분에 이러한 작곡 기법은 기존의 하모니를 크게 벗어나 불협화음으로 가득 차 있으며 기괴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기존에 협화음을 사용하는 다른 곡들에 비해 듣기에 불편하다. 아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짜증이 나고 화가 날 정도다.

그러나 바그너, 쇤베르크 등에 의해 시도된 이러한 작업 즉 현대음악이야 말로 철학적으로 진리에 근접하다. 그러나 현대음악은 큰 딜레마를 안고 있다. 철학적으로는 진리에 근접하다고 하지만 이것이 소통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불협화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불편을 느끼게 한다. 또한 여러 가지 퍼포먼스가 동반됨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불편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한 현대음악은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혼자 진리를 이야기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필립 글래스

이렇게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한 현대음악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각 예술 분야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그 이후 예술 전반에 걸쳐 미니멀리즘은 나타난다. 용어에서 보이는 그대로 모든 기교와 각색을 떼어내고 사물의 본질만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어 사물의 본질 즉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쇤베르크의 시도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가장 핵심이 되는 선율과 리듬을 끊임없이 반복, 변주함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주제를 둘러싼 정서와 분위기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필립 글래스(Philip Glass)나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가 대표적인 작곡가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클래식이 머리 아픈 이유. 현대음악이 발생하게 된 이유. 그것은 음악이 철학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자는 음악이 무엇을 말하든 개의치 않는다. 음악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이 편안함이고 따스함이며 감동이라면 그것을 전해주는 음악을 들으면 된다. 그러나 음악을 통해 치열한 사고와 철학적 진리를 향한 노력을 접해보고 싶다면 조금은 힘들지라도 쇤베르크, 필립 글래스, 스티비 라이히와 친해져 보자.

덧붙이는 글 | 대학생 잡지 캠퍼스 헤럴드와 오마이뉴스, 네이버 블로그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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