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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재평가로 인하여 독립운동가로 다시 태어난 이효정 선생. 93세의 할머니. 우리로 하여금 '경성 트로이카'를 알게 해주신 고마운 분. 그분이 우리 교회 사회봉사관에서 50m도 안되는 거리에 살고 계셨다.
8월 17일, 며느님의 초청으로 방문하여 점심까지 대접받았다. 사진과 TV로 뵌 모습 그대로 반겨 주셨다. 아직도 고운 얼굴 그대로 간직하고 계셨다. 얼굴에 악의라곤 하나도 없이 선한 모습 그대로 이셨다. 눈빛은 반짝이며 총기를 잃지 않고 말씀도 비교적 또박또박 잘 하셨다.
하루에 두세 번 화장실에 가실 때를 제외하곤 계속 누워계시거나 앉아 계시다고 말씀하셔서 바깥세상 구경하고 싶지 않으신지 여쭈어 보았다. “걸을 수가 있어야지”하시는 말씀에 휠체어 한대 구하여 한번 모시고 나들이 했으면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며느님으로부터 점심을 대접받고 이효정 선생님 시집을 선물로 받았다. 이효정 선생님은 ‘회상’이라는 시집과 <여든을 살면서>라는 시집 등 2권을 출간하셨다. 그 것을 조카 권영건 씨가 합본하여 <일흔에서 여든을 살면서>라는 시집을 출간 하였다.
그 서시가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序 詩
詩가 아니라도 좋다
노래가 아니라도 좋다
나의 넋두리
나의 하소연
나의 노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나 혼자 부르는
나의 노래
풀피리 속에서
흐르는 노래
고통의 세월을 참고 견디어온 여전사의 피울음이 시로 토해내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여느 서정시인하고는 구별이 된다. 역사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저항해온 그 몸부림이 시가 되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다.
이효정 선생은 그의 시를 통하여 역사의식 민족의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시가 곧 역사요 민족이다. 그녀는 비뚤어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저항적 서정시인이요 곧 혁명적 서정시인이다.
그 때와 이제
봉숭아 꽃물 들여 빨갛게 타는 손톱
신선이 된다는 구기자 열매
발그레 익기 바쁘게 한알 한알 따 모아
증조 할아버님께 바쳐 올리던
소꿉 놀이에서도 서로 할아버지 노릇만
하고 싶어하던 나의 유년
(그때는 할아버지가 제일 높았으니까)
반쯤 깎이어 반달을 그리던 봉숭아 손톱
수없이 깎아 버려 흔적도 없고
증조 할아버지는 신선이 되어 가신 지 까마득한데
창씨개명을 강요하던 일경에게
원 별 해괴한 소리
성을 갈다니 성을 왜 갈아
호통 치시던 종조부님(從祖父)도 떠나시고
악랄했던 일제가 쫓겨 간 지도 어언 반세기
6.25 동족상잔
군사 독재
시대가 바뀌고 인륜이 변하고
짓밟힌 세월 어지간히 버티어 왔구나
이제 민중의 소리 높아지고
독재가 슬슬 꼬리를 숨기고 있다지만
잔뿌리까지 무성하게 뻗어
끈끈히 눌어 붙은 부정 부패 비리
무질서한 공중도덕
언제 어떻게 다 뽑을 수 있을까
잔뿌리까지 말끔히 뽑히는 날
모두의 밝은 얼굴
내 살아서 볼 수 있을까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인내를 최고의 덕목으로 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반드시 그 날은 오리라 확신하고 오늘을 인내한다. 그 기다림이 시가 되어 우리를 위로한다.
기다림 1
드디어 파아란 싹을 찾아냈다
떨리도록 환한 기쁨이다
땅이 메마른 탓인지
쥐나 새들이 까먹어버렸나
열흘이 넘도록 애타게 기다렸다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기다림이 즐거움인 것을
기다림에 지겨워 말자
느긋하게 기다려보자
기다림은 행복하니라
기다림은 이별보다 훨씬 밝은
별빛이어라
우린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지 않으려도 기다려야 한다
세월을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조국의 통일을 기다린다
싹 트기를 기다리고
꽃 피우길 기다리고
열매 맺기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말하리라
기다리는 재미로 살아왔고
기다리는 재미로 살고 있노라고
과연 이효정 할머니는 독립운동가로 다시 태어났으며 또한 저항적 서정시인으로 아니 혁명적 서정시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덧붙이는 글 | 당당뉴스와 에큐메니안에도 송고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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