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우유를 짜 먹었다?

[푸른깨비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③] 우유로 만든 죽은 임금님의 보양식

등록 2006.08.20 13:40수정 2006.08.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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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슈퍼마켓에는 수많은 종류의 우유가 저 마다 다른 빛깔과 맛으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시장세분화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우유가 갖는 참맛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그 앞에만 서면 어떤 것이 나를 위한 우유인지 무척이나 헷갈립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우유를 많이 먹으면 키가 쑥쑥 자란다고 하여 저 또한 어릴 적 꽤나 많은 양의 우유를 소비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쭈욱 칠판 앞 맨 앞자리에만 있어야 했고, 가끔은 조금 높은 곳의 공기는 좀 더 상쾌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까지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이 허여 멀건 한 녀석만 위속에 들어 왔다 치면 배속에서는 늘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바로 화장실로 줄행랑을 쳐야만 했기에 우유신이 내 몸에 강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금 커서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우유 속에는 라토오스라는 성분이 있고 이것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락타제라는 것이 몸속에 있어야 하는데 한국인 중에는 이것이 체질적으로 없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군요.

이젠 예전에 먹던 일반 우유가 아닌 우유의 차별화시대를 이야기하며 고칼슘이다 저지방이다 하며 우유에 뭔가를 더 집어넣고 빼는 현실이 조금은 낯설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때에도 이렇게 지금처럼 생우유를 마시고, 다양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우유가공 식품이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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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조영석이 그린 젖짜기(採油) 그림입니다. 행여나 소가 뒷발로 찰까봐 단단히 붙들어 밧줄로 매고, 코뚜레까지 단단히 부여잡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복색으로 보아 아마 저 우유는 임금님께 드릴 우유죽을 쑬 재료인 듯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조선시대 임금님의 보양식 우유죽-타락(酡酪)

조선 숙종 때 실학자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이 농업과 일상생활에 관한 광범위한 사항을 기술한 책인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살펴보면 우유에 대한 다양한 식용법이 나와 있습니다.

먼저, 우유로 만든 죽에 대해 살펴보면, 우유죽(牛乳粥)은, 죽을 쑤다가 반쯤 익거든 죽물을 따라내고 우유를 쌀물 대신 부어 끓인 뒤에 떠서 사발에 담고 사발마다 연유(煉乳) 반냥을 죽 위에 부어, 마치 기름처럼 죽에 고루 덮었을 때 바로 저으면서 먹으면 비길 데 없이 감미롭다고 하여 좋은 영양죽으로 우유죽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인종의 경우 가장 짧은 재위기간을 가졌는데, 그의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여러 신하들이 우유로 만든 타락죽을 영양식으로 권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맛좋고 영양 만점인 우유죽을 인종은 먹기 거부했습니다. 혹시 저처럼 우유로 만든 뭔가가 들어가면 뱃속에서 천둥이 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리고 조선후기 문예부흥의 황금 같은 시기를 만들었던 정조의 경우에도 겨울철이면 늘 우유죽을 먹고 힘을 내어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우유로 만든 죽은 실제로 조선시대에 왕들의 보양식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몸이 허약한 상태거나 겨울에는 우유로 만든 타락죽을 내의원에서 권장했을 정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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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의 젖짜기 그림 중 애처럽게 어미소를 바라보는 송아지의 모습입니다. 자기밥 뺏어간다고 얼마나 심통이 나 있을까요? 아마 다음에 크면 저 사람들 모두 혼내 줄 거라고 마음속에 새기는지도 모르겠군요. ⓒ 푸른깨비 최형국

우유를 너무 많이 짜면 백성이 괴롭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축산환경이 젖소한테 우유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낳은 어미소의 젖을 모아서 우유를 진상했기에 애꿎은 송아지만 굶기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단지 송아지만 굶는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로 인하여 농업 생산력의 핵심이었던 황소들과 그 주인인 농부들이 함께 고통을 나눠야만 했습니다.

송아지가 잘 커야 소도 기뻐서 일을 열심히 할 것이고, 그 주인은 당연히 기쁨이 두 배로 커지는데 송아지가 배고파서 우니 소는 일할 맛이 나지 않았겠지요. 이를 좀 더 확대 해석해 보면 송아지의 슬픔은 곧 농부의 슬픔이요, 농부의 슬픔은 곧 민심의 악화라는 '조선시대 임금의 최대 난제'에 봉착하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중종의 경우에는 '우유죽이 폐단이다'라고 하며 우유죽 먹는 것을 금지하였고, 영조의 경우에는 우유를 짜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소 도살을 금지해서 당시 사람들이 한동안 소고기를 입에 대지도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전(前) 영의정 윤원형 우유죽을 맛있게 먹다가 그만...

영의정 윤원형은 명종의 재위기간 중 상당한 파워를 가진 권문세족 중의 하나였는데, 임금님이 즐겨 먹는 우유죽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가 탄핵의 대상이 되어 귀향을 당할 뻔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임금님을 위한 특별한 우유죽을 만드는 기구를 몰래 가지고 나와 처자식은 물론이고 심지어 첩까지 그 귀한 우유죽을 배불리 먹여서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1545년에 일어났던 을사사화(乙巳士禍)에서 화를 입은 여러 사람의 전기를 모은 책인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에 보다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복(太僕)의 소락(酥酪)은 주상을 위해 공급하는 것인데, 낙부(酪夫)가 그릇을 들고 가서 그 집에서 끓이기를 어전(御前)에 올리는 것처럼 하며, 자녀와 복첩(僕妾)들도 싫증이 나도록 먹었다."

이렇듯 심지어 싫증이 나도록 그 귀하디귀한 우유죽을 온 가족이 그리고 첩까지 먹었으니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될 만도 했겠지요.

때맞춰 우유를 구하지 못하면 파면 및 징계에 회부?

고종 1년(1901)의 실록 내용을 살펴보면 심지어 임금님이 드실 우유죽의 원료인 우유를 제때에 구하지 못한다고 파면당할 뻔 한 일도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우유배달을 담당했던 봉진관(封進官)을 직무유기로 면직하고, 우유배달 감독관이었던 검독(檢督)은 사법부로 이송해서 징계를 하자고 하였는데, 다행히 고종이 너그러운 마음씨로 특별히 이번만은 용서해주자고 하여 해고의 쓴맛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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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우유의 영양성분표입니다. 과연 실제로 저 성분이라면 조선시대처럼 약으로 써도 될까요? 그래도 저는 어릴 적 울엄마표 모유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성분에는 결코 나오지 않지만 엄마의 따뜻한 체온과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조선시대 우유는 약으로도 쓰였다

이렇듯 조선시대에 우유는 맛좋은 영양식으로 임금님이 즐겨 먹었던 보양식이었는데, 심지어 우유를 약으로 복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앵도창(櫻桃瘡)이라고 하여 목 위에 앵두 크기만 한 창이 생기면 날마다 우유를 마시면 저절로 사라진다고 하였고, <증류본초>에서는 대맥초 한 근과 백복령 가루 4냥을 생우유에 개서 먹으면 1백일동안 배가 고프지 않아 구황에 도움이 된다고 했을 정도로 우유의 영양성과 약재성을 풀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이야 앞서 이야기한대로 우유에다가 콩도 넣고, 깨도 넣고, 딸기에 바나나까지 넣어 먹는 세상이라서 오히려 그 우유의 참맛을 잃어버린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낙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내일부터 우유 한잔 어떠신지요?

덧붙이는 글 |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http://muye24ki.com 입니다.

덧붙이는 글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http://muye24ki.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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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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