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이 되어버린 어릴적 친구의 편지

우정은 사랑을 싣고 중국과 하늘나라까지

등록 2006.08.20 17:50수정 2006.08.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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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편지를 나누었던 여자 동창 친구로부터 중국에서 연락이 왔다. 막상 연락이 되고나니 할 말을 서로 잊었다. 미팅하듯이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나야! OO이. 잘 지냈니?"
"어, 반갑다. 어떻게 지내!"
"그냥 그렇지 뭐, 아이들 키우고 학원 데리고 다니고 한국과 똑같지 뭐."
"그렇구나."

잠시 말이 끊겼다. 세월의 흐름만큼 침묵은 긴장감을 주었다. 머리에서는 할 말이 맴도는데 입이 안 열렸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아이들 잘 크지? 남편 사업은 잘 되니?"
"어, 잘돼. 여긴 한국 사람들 많아. 언제 중국 안 오니?"
"작년 여름에 갔었어. 베이징에."
"그랬구나. 여기도 한 번 와라."

"글쎄. 가도 되나."
"오면 좋지. 생각보다 구경할 게 많아."
"한 번 가볼까. 9월은 넘어야 시간 될 것 같다. 9월에 내 책이 나와."
"그래. 참 넌 학교 다닐 때 글 잘 썼었잖아."
"그랬나?"

친구의 그 말이 나오면서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옛날 생각이 스쳐갔다. 아마 그 친구도 그랬을 것이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때 너희 학교 축제에 친구들하고 갔었어."
"그랬구나."
"그때 네가 그린 그림도 보고, 시화도 보고 웃었었지.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머니는 어떠시니?"
"노인들 다 그렇지 뭐."
"<오마이뉴스> 글 잘 읽고 있어. 어머니 신경 많이 쓰이지?"

그 친구의 말에 잠시 마음이 뭉클했다. 일상적인 안부지만 어머니를 생각하고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담긴 말에 감동했다. 마음이 뭉클했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삶이 다 그런 거지. 다른 분에 비하면 건강하시지."
"그래. 네 몸도 잘 관리해라. 밖에서 나 찾는다 야. 다음에 연락 다시 하자."
"그래. 그래. 샬롬!"

짧은 대화였지만 나를 격려해 주는 친구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대화는 마치 학창시절 같은 풋풋함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을 놓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그 친구는 항상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던 친구였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가 나에게 보낸 모든 편지 말미에는 항상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전진하라는 격려가 있었다. 그 마음은 30년이 지났어도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a 유품이된 중학교 3학년 때 받은 친구의 편지

유품이된 중학교 3학년 때 받은 친구의 편지 ⓒ 나관호

전화를 끊고 다시 옛 편지 중 하나를 꺼내 보았다. 그런데 그 편지 속에는 여자친구와 단짝이었던 은경이의 편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 아이는 중학교 3학년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간 친구였다. 은경이가 저 세상으로 가기 얼마 전에 보낸 것 같았다. 마음이 아파 온다. 그 편지는 그 아이가 남긴 유품이 되어 나에게 있다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프다.

관호에게
관호 친구 안녕.
관호야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의과대학에 진학해라.
그래서 불쌍한 환자들을 돌봐라.
그러기 위해선 오직 목표는 공부다 공부야.
부모님께 '효' 나라에 '충'.
우린 중 3이니까 말야.
그리고 OO이와의 우정 변치 말고 영원토록...
안녕.



그 아이의 편지를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살아 있다면 어딘가에서 아들 낳고 잘 살고 있을 그 아이가 안됐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얀 얼굴에 키고 제법 컸고 당당했던 아이로 기억한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여자 친구의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자신의 갈등과 괴로움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말미에 역시 나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써 놓았다.

나도 너에게 부탁하고 바라고 싶은 게 있어.
꼭 닿을 수 없는 곳, 불가능한 곳까지라고
의지를 굳히지 말고 꼭 노력하란 말. -안녕-



그리고 편지지 뒤에는 어느 작가의 글이 써져 있다.

진주를 배는 상처를
그대의 능력이 미치는 한
상처와 시련을 무한정 기꺼이 용납하여라.
하등의 인간적 고뇌없이 밥만 먹으며 살기보다는
껍질을 깨고 새순을 불러내는 나무가 되거라.
살을 가르고 진주를 품거라.


나는 두 친구를 생각하며 우정 어린 친구들이 남긴 글을 내 책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먼저 간 친구가 이루지 못한 삶도 대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이국땅에 있는 친구에게도 어린시절 순수했던 마음 변치 말고 이웃들에게 그런 마음을 섬기며 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나 자신을 향해 말했다.

"사랑하기도 모자란 세상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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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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