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꽃 고개 숙이면 찬이슬 내리고

<노태영의 Photos & Thoughts 4> 강아지풀, 누런 호박 그리고 부추

등록 2006.08.24 17:39수정 2006.08.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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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의 씨가 노랗게 영글어가면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가을입니다. 강아지풀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가을이 시작된 것입니다. 고개를 숙인 강아지풀은 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강아지풀은 앙증맞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기도 하고, 큰누나 방의 자연 장식품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한 장식거리가 없던 시절 큰누나의 방에는 강아지풀이 소주병에 꽂혀 있던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물론 봄에는 그 소주병에 진달래꽃이 꽂혀 있었습니다.


강아지풀은 들이나 텃밭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입니다. 한자로는 구미초(拘尾草)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꼬리풀이라고 어렸을 때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강아지풀은 봄에는 어린 싹을 삶아서 나물처럼 묻혀 먹기도 합니다. 강아지풀은 우리들의 장난감이기도 하였습니다. 강아지풀 꽃을 따서 손바닥에 놓고 살살 흔들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앞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누가 빨리 손바닥 끝까지 가게 만드는지 경주를 하곤 했습니다. 강아지 부르는 흉내를 내면서 말입니다.

강아지 풀꽃이 고개를 숙이면 찬이슬이 내린다는데....
강아지 풀꽃이 고개를 숙이면 찬이슬이 내린다는데....노태영

강아지풀 꽃을 보면 깨벌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꽃을 따서 여자아이들을 많이 놀리면서 장난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여자 아이들 호주머니 속에 몰래 넣거나 옷 속에 넣어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참 짓궂은 장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때의 종석이, 상래, 태석이, 미숙이. 경희 등 동네친구들이 참 그립습니다. 다들 서울로 일본으로 군산으로 멀리 떠난 어린 적 친구들입니다.

호박입니다. 누런 호박입니다. 요즈음은 웰빙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저희들 어렸을 때는 담장이나 작은 언덕 위에 가장 흔했던 것이 바로 호박이었습니다. 새벽에 토끼를 먹일 풀을 베어 한 망태 메고 뒷동산을 내려오면 여기저기에 피어있던 노란 호박꽃이 눈에 선합니다. 손바닥만 꽃들이 언덕을 덮고 있던 모습이 참 장관이었습니다. 호박꽃은 무척 푸짐한 꽃입니다. 그리고 넉넉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애호박이나 늙은 호박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호박 덩쿨을 보면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는 말을 실감하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누런 호박은 우리들의 간식으로 손색이 없었는데.....
누런 호박은 우리들의 간식으로 손색이 없었는데.....노태영

호박은 남아메리카 원산으로 녹말이 많아 감자, 고구마 다음으로 칼로리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대용식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호박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즈음은 노란 늙은 호박으로 만든 호박죽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죽이 바로 호박죽입니다.

예전에는 호박전이나 호박을 넣은 된장국이나 찌개를 많이 먹었습니다. 겨울에 흰눈이 오면 호박죽을 끓여 동네잔치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어머님은 늙은 호박을 새끼줄처럼 길게 잘라 처마 밑에 말려 겨울철에 호박떡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설탕보다 더 달콤했습니다. 그리고 애호박을 잘라서 담장 위나 지붕 위에 널어놓았습니다. 하얀 호박들이 멀리에서 보면 호빵처럼 보였습니다. 말린 호박으로 겨울철에 탕을 끊이면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주 맛을 볼 수 없지만 말입니다.


물론 어렸을 때 ‘호박에 말뚝 박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했지만 그땐 그것이 하나의 놀이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짓궂은 장난이지만 말입니다.

얼마 전에 시골 부모님 댁에 갔더니 텃밭 한쪽 구석에 부추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초여름부터 장마가 끝날 때까지 우리들의 소중한 먹거리가 되어 주었던 부추(솔)가 포기를 늘리기 위해 꽃을 피운 것입니다. 부추가 꽃을 피우면 부추를 베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쉬웠지만 내년 여름을 생각하니 벌써 속으로 웃음이 나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아마 어머님이 내년에도 많이 주실 것입니다. 올해처럼.


부추꽃이 핀 밤은 유난히 별이 많았는데.....
부추꽃이 핀 밤은 유난히 별이 많았는데.....노태영


부추는 전라도에서는 ‘솔’이라고 하고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한답니다. 부추는 특히 정력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월담초’라고도 합니다. 부추를 많이 먹으면 옆집 담을 넘을 수밖에 없다네요. 옛날 사람들의 언어 수사의 재치가 보이죠. 옛날에 흔한 것이 부추였습니다. 그다지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잘 자랐습니다. 그래서 구하기 쉬워서 자주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많이 먹도록 하기 위해 ‘월담초’라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보신탕이나 추어탕에 많이 들어가는 채소입니다. 그리고 각종 찌개나 수제비죽에 넣어 먹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장마철에 부추전을 해서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그만입니다. 어렸을 때는 막걸리는 못 마시고 연신 부추전만 아버지 옆에서 허천나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생과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싸우면서 말입니다.

지난 장마철에 시골에서 부모님이 주신 부추를 아내에게 아양을 떨어 부추전을 해서 막걸리와 함께 먹어 보았더니 어머님 생각과 고향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바로 고향의 맛 그대로였습니다.

부추꽃은 작지만 화려합니다. 하얀 꽃이 솔(부추)밭을 덮으면 동화의 나라처럼 깨끗한 작은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꽃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별꽃처럼 정교한 꽃잎들이 균형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꽃이 여러 개가 모여 하나의 꽃송이를 이룹니다. 특히 솔밭 냄새는 파에서 나는 냄새와는 달리 은은한 풀내음이 코끝에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텃밭에서 자란 부추는 냄새가 진하지만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부추는 그냥 풀냄새만 납니다. 어머님의 손길로 자란 부추와 그렇지 않은 부추는 다른 가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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