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63회

새로운 만남

등록 2006.08.25 16:51수정 2006.08.2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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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은 입조차 벙긋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불쑥 내미는 사영을 바라보다가 키에게 도움을 청하듯이 돌아보았다.

-그 여자는 어차피 말을 하지 못한다. 무슨 의미로 그 나뭇가지를 왜 내밀었다고 여기나?


키의 말에 솟은 다시 한번 사영을 바라보았다. 사영은 여전히 나뭇가지를 내민 채 움직이지 않았다. 솟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나뭇가지를 받아들고서는 땅에 그려는 새와 같은 무늬를 바라보았다.

‘새는 난다. 나는 것을 잡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난 잡아야 한다.’

솟은 새 옆에 커다랗게 입을 벌린 짐승을 그려 넣었다. 사영은 그 그림을 보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솟에게 웃음을 보였다. 솟이 보기에 사영은 유독 흰자위가 많은 눈만 아니라면 매우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솟, 자네 뜻이 통한 모양이다.

사영이 그차와 모로에게 그림을 보여주자 그차와 모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솟과 키를 적극적으로 따를 의향은 없어보였다.


-이들이 우리를 믿고 따르기 전에 바라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아.

솟의 말에 키도 수긍했다.


-맞아. 역시 같은 종족이니 쉽게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군. 이들이 여기서 귀찮아하는 존재가 있다. 그것을 잡아 보여서 호의를 보이면 될 테니 일단 자네가 그럴만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라.

-어떻게 말인가?

솟은 중얼거리며 자신을 지켜보는 그차, 모로, 사영을 마주보았다. 사영은 여자이니 제켜두고 그차와 모로 중에는 그차가 힘깨나 쓸 듯이 보였다.

-저 놈과 겨루기를 해서 내 힘을 보여줄까?

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커다란 늙은 새 한마리가 퍼덕거리며 바위위에 솟을 마주보며 내려앉았다.

-저 새는 이들의 양식을 숱하게 훔쳐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곧 죽을 운명이다. 그냥 죽기 전에 널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다.

키는 손에 딱 맞는 돌을 솟의 손에 쥐어주었다. 솟은 돌을 손에 주고 새를 노려보았다. 새는 솟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놀랍게도 눈을 지그시 감고 날개에 힘을 뺀 채 웅크렸다. 보통 돌을 던져 무엇을 맞추기에는 먼 거리였지만 돌팔매질에 자신이 있는 솟으로서는 어려운 거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솟은 새에게 돌을 던지기에 순간적으로 망설여졌다. 사냥을 하기위해 솟은 숱한 짐승을 죽여 왔지만 그때마다 별다른 감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 살기위해 발악하는 짐승을 쳐 죽이면서도 솟은 무덤덤했고 그것을 순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늙은 새를 보며 솟은 마음속 깊이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돌을 던지지 않아도 저 새는 죽지만 그것은 저 새를 위한 일이 아니다. 던져라.

생명에 대해 늘 경외심을 가지고 얘기하던 키가 돌을 던질 것을 부추기자 솟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순간 눈을 감고 있던 새가 눈을 번쩍 뜨고서는 솟을 바라보았다. 그 눈으로 새는 분명히 솟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괜찮다. 친구여 너의 능력을 저 자들에게 보여주어라. 그리고 모두를 구하라. 돌을 던져라.

솟은 천천히 돌을 쥔 팔을 올렸다. 그차와 모로, 사영은 솟의 시선을 쫓아 새를 바라보았다. 솟의 손에서 돌이 힘차게 날아올랐고 그것은 정확하게 새를 맞추었다.

-그 새가 한 말을 들었나?

키의 말에 솟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른 생명을 이해한 순간 귀가 열린 것이다. 너의 뜻은 저들에게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다.

-난 수이만을 구해야 한다고 여겨왔다.

솟은 그차와 모로가 자신의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소리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키의 반응에 솔직히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새는 왜 모든 생명을 구하라고 얘기하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나?
-너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키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낮고 깊게 읊조렸다.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잊지 말아라. 난 너에게 진실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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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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