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65회

새로운 만남

등록 2006.08.29 17:15수정 2006.08.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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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된다.

솟에 이어 그차 마저도 산양을 향해 나무 막대기를 치며들자 키는 손을 들어 그들을 만류했다. 산양은 솟과 그차의 살기어린 몸짓을 보고서도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지 성큼성큼 사람들 앞으로 다가오더니 거짓말처럼 푹 하고 쓰러졌다.


-뭐야?

그차가 산양의 믿기지 않는 행동을 두고 가까이 다가가 나무막대기로 찔러보려하자 키가 이를 만류하고서는 산양 앞으로 다가갔다. 키는 산양 앞에 엎드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웅얼거린 후 손으로 산양을 쓰다듬었다.

-이제 알아서들 처리해라.

뒤늦게 달려온 모로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벌써 사냥이 끝난 거야? 우왓!
-저 네드족이 이상한 짓을 해서 산양을 쓰러트렸다.


평소 같았다면 즉시 쓰러진 짐승의 배를 갈랐을 그차는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섣불리 산양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것은 솟도 마찬가지였다. 모로는 쓰러진 산양을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간 여기서 그들이 잡아서 먹은 동물이라고는 물고기가 고작이었고 가끔 새 따위를 그차가 사냥해 오기도 했지만 이런 큰 짐승을 사냥했다는 것이 모로는 믿기지가 않았다.

-불을 피워야 할 텐데.


솟이 나뭇가지를 모으는 시늉을 하며 웅얼거리자 그차와 모로는 싱긋 웃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손짓을 해보였다.

-막 죽인 짐승의 고기를 모조리 잘라서 가져가는 건 너무 힘이 드는 일이지. 여기서 바로 구운 뒤 잘라서 가져간다.

그차의 말에 솟은 아직도 귀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말을 잘 못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차는 날카로운 돌을 꺼내어 산양의 배를 힘겹게 갈랐다.

-내가 하지

그차의 서툰 배 가르기를 보다 못한 솟이 나서서 자신이 애용하는 날카로운 돌로 산양의 배를 힘차게 갈랐다. 모로는 솟의 손놀림에 감탄사를 쏟아내었다.

-대단하다! 돌이 손에 붙어 있는 거 같군!

피를 빼낸 후 솟과 그차는 산양을 들어 마른 땅으로 옮겨놓았다. 모로가 허리에서 쥐 가죽을 얼기설기 기워 만든 주머니를 끌러 안에 든 작은 알맹이들을 산양의 이곳저곳에 뿌려대었다. 모로의 허리에는 이런 쥐 가죽 열개가 달려 있었는데 그중 일곱 개를 산양의 안쪽까지 뿌려대었다. 솟은 모로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부싯돌

미처 부싯돌을 챙겨오지 못한 모로가 손을 내밀자 그차는 자신도 미처 챙겨오지 못했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걸 써

솟이 자신의 부싯돌을 내밀자 모로는 이를 받아들고서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정말 좋은 부싯돌이다!

모로는 솟의 부싯돌을 가지고 싶었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룰 만한 물건이 없음을 속으로 아쉬워했다. 모로는 작은 알맹이들이 많이 뿌려진 곳에 부싯돌을 부딪쳐 불꽃을 튀겼다.

-여기서 조금 물러서야 된다.

솟은 영문도 모른 채 그차가 이끄는 대로 뒤로 물러섰다. 불꽃은 작은 알맹이를 중심으로 ‘탁탁탁’소리를 내며 피어오르더니 잠시 후에는 산양의 온 몸을 뒤덮으며 자욱하게 연기를 일으켰다. 솟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지만 그차, 모로, 사영은 당연한 것을 보는 양 팔짱을 낀 채 산양이 익어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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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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