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찜 먹자 한 해 체증 '확~'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109] 잠자던 홍어 폐인 되살아나다

등록 2006.08.29 20:41수정 2006.09.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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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당동 홍어찜 참 맛있다. 특히 삭힌 걸 먹으면 곧 중독되고 만다.

신당동 홍어찜 참 맛있다. 특히 삭힌 걸 먹으면 곧 중독되고 만다. ⓒ 시골아이 김규환


홍어 때문에 웃고 울었던 5년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로 접어들 때 홍어탕 이야기로 일약 홍어광, 홍어미치광이, 홍어 전문가, 홍어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작년 4월 이후 한동안 ‘홍어’의 ‘홍’자도 꺼내고 싶지 않을 지경으로 홍어와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완전히 내 머리에서 홍어가 지워지는 듯 했다. 다시는 입에도 대지 않을 진절머리 나는 음식인줄 알았다.

마치 20대 후반 사귀었던 여성과 애증관계를 지속하다가 어느 날 헤어짐을 결정한 일보다 더 지독히 싫은 존재로 바뀌고 만 것이다. 몇 달 간은 맘고생이 심하여 밭에 가서 풀을 뽑아도 세상사가 잊혀지지가 않았다.

얼마나 앓았던지 쌩쌩하던 치아가 어금니 중심으로 위 아래로 다섯 개나 빠지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홍어 장사를 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내 삶의 일부가 된 건 기사를 책 한권 분량에 가까운 30편 넘게 쓰고 방송사마다 출연이 쇄도했음은 물론 일주일에 많게는 8번이나 먹고 그 냄새나는 걸 거르면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오죽했겠는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 속옷에도 냄새가 절어 선생님께서 비누칠을 대여섯 번 해도 가시지 않았다고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집에서 나는 그 냄새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아쉬워한 이도 한둘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홍어에 웃고 홍어에 울었던 지난 5년이 내겐 행복과 절망을 안겨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가능성을 보았고 불행을 겪었다. 그렇게 내게 멀어져간 홍어이기에 아쉬움이 남달리 클 수밖에 없었으리라.

a 전어철이 약간 이르지만 언론에서 자꾸 떠들어대니 맛보지 않을 수 없어 노량진으로 갔다.

전어철이 약간 이르지만 언론에서 자꾸 떠들어대니 맛보지 않을 수 없어 노량진으로 갔다. ⓒ 시골아이 김규환


아내까지 홍어먹자고 조르던 터에...


누군가 그랬다. 세상이 가만두지 않는다고…. 귀향하여 조용히 농사만 짓고 살려고 했는데 그 놈의 질기고 모진 홍어가 놀자고 야단이다. 법석을 떠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홍어집이 즐비하고 잊을만하면 방송국에서 어찌 연락처를 알았는지 홍어 좀 먹으란다.

홍어 잘 하는 집 소개 좀 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특이한 홍어 있으면 가르쳐달란다. 거개가 홍어회,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탕, 홍어앳국, 홍탁삼합을 들먹이는데 귀찮기도 했다. 갖가지 구실을 붙여 홍어와 만나기를 삼갔다.

근신에 근신을 거듭하며 홍어 좀 공부하고 다뤄달라고 부탁 아닌 핀잔에 그만 좀 우려먹을 수 없느냐는 투로 뿌리치기 일쑤였다. 프로그램마다 일주일에 서너 번에서 적어도 한번은 연락이 와서 나를 괴롭혔다.

아직 내 몸에서 홍어냄새가 덜 빠져나간 탓일까. 이거 안 되겠다 싶었다. 한번 발을 디딘 이상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지 않았던가. 근래 몇 년 간 부지기수로 생긴 홍어집이 곳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뿌린 씨앗이 적지 않으니 내 손으로 거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책임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다.

더구나 두 달 전부터 홍어 초짜로 돈 없는 내게 시집온 아내까지 홍어찜을 먹자고 조르는 게 아닌가. 지긋지긋한 걸 또 먹자고 하니 처음엔 남편 속을 알기나 하는 건지 야속하다가 곧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줄 겸 7월 말에 늦은 시각에 집을 나섰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 손님이 없자 문을 일찍 닫은 모양이다.

유야무야 넘어가려던 내게 자꾸 채근하던 아내다. 나는 비나 오면 모를까 당장은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홍어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야 맛이 나지 않던가.

a 2002년 12월 9일 홍어와 본격 만남을 가졌는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요란한 모임을 지양하리라.

2002년 12월 9일 홍어와 본격 만남을 가졌는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요란한 모임을 지양하리라. ⓒ 시골아이 김규환


고심 끝에 내린 방송출연

며칠 전 금요일 전어 맛보러 노량진수산시장에 들러 맛나게 먹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KBS 2TV <생방송 세상의 아침>이란다. 삭힌 홍어를 찍어야 하는데 적당한 곳 없느냐고 한다.

잠깐 동안이지만 망설여졌다. 덥석 물었다가 안 먹느니 못한 상황이 오면 큰 일 아닌가. 1시간 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하고는 내 궁한 주머니와 궁금한 입을 채워주고 있는 ‘맛객’에게 물었다.

“어쩔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라고 하는데요?”
“한다고 하세요. 뭐 어때서….”
“정말 가만두지 않는다니까.”

전어회 비빔밥을 손수 만드는 동안 옆에서 소주를 들이켜며 내 장황설이 이어졌다.

“참, 아쉬웠습니다. 둘 다 힘들었구요. 다시 시작해봅시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자랑거리가 한 가지는 있어야 해요. 고향신문 <시골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렇구요. 더구나 홍어집은 그렇게 많이 생겼지만 한참 거들어줘야 할 때 손을 뗐으니 수많은 사장님들께 면목이 없답니다. 다시 시작해도 되겠지요? 신당동에 오실 거죠?”
“갈게요.”

초고추장에 참기름치고 상추와 깻잎, 청양고추를 넣고 식은 밥을 몇 수저 퍼서 둘둘 비벼서 먹고 있는데 벌써 1시간이 지난 건가. 작가에게서 딱 맞춰 전화가 왔다. 승낙을 하고는 다음 주 초쯤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얼마나 급한지 내일 찍자고 한다.

a 홍어찜을 이 집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 식초에 찍으면 맛이 살아난다.

홍어찜을 이 집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 식초에 찍으면 맛이 살아난다. ⓒ 시골아이 김규환

번개 치는 요즘에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 먹기라도 할 모양이다. 서로 대강의 인원을 말하고는 그쪽에서 먼저 끝낼 참이다.

“저기요,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때로 방송국에서 식당을 촬영할 때는 홍보를 빌미로 가득 차린 음식 값을 지불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조금 낼 테니까 방송국에서도 일부 내시죠. 제 원칙이니까요?”
“잠깐만요. 한번 여쭤보구요.”

잠시 뒤 몇 만원을 낸다고 한다. 그렇게 해놓고선 다음날 가평 산나물 밭에 가서 풀을 뽑았다. 땀이 범벅이었다. 쉬면서 서너 명에서 전화를 돌리니 금세 열 명 가까이나 된다. 일찌감치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차가 밀리고 아이를 챙겨오느라 시간이 꽤나 지체되었다.

제작팀은 한 시간이나 이르게 도착해있는데 흙을 씻고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자니 천둥번개에 장대비가 쏟아져 우산을 잡고 있기도 힘겨웠다. 아내와 아이들을 가까운 세탁소로 대피시키고 홀로 택시를 잡아타고 신당동 홍어찜 집으로 향했다.

a 홍어찜을 먹고나면  "밥 주세요" 하면 내겐 내장을 듬뿍 넣고 밥을 볶아준다.

홍어찜을 먹고나면 "밥 주세요" 하면 내겐 내장을 듬뿍 넣고 밥을 볶아준다. ⓒ 시골아이 김규환


홍어와 맺은 질긴 인연은 계속된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은 일면식이 없는지라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며 뒤늦은 출동에 다소 불만이 섞인 투다. 자기네들 길 가르쳐달라는 전화 받느라 30분을 지체하고 교통상황이 좋지 않아 또 10분, 비 때문에 10분을 허비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랜만에 홍어 만나기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자리를 정리하고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담근 누룩 내 가득한 막걸리부터 한잔씩 돌렸다. 홍어찜은 벌써 포슬포슬 김을 내며 ‘화~’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초보를 위해 삭힌 것과 덜 삭힌 걸 반반씩 두 솥이 나왔다. 양배추도 적당히 익었다. 막걸리식초에 담그듯 찍어서 한 입 넣자 ‘헉!’ 바튼 기침이 나온다. 그걸 놓칠 리 없다.

오늘의 핵심은 삭힌 홍어다. 연신 질문이 이어지고 각자 방송용 멘트를 남발한다. 부부가 함께 나와 즐겨먹는다는 후배는 단연 돋보였다. 1개를 2시간 넘게 진행된 촬영이 끝날 무렵 내 식성을 잘 알고 있는 할머니는 내장과 깍두기를 넣고 밥을 볶아서 내온다.

알딸딸하니 취기가 돌고 배마저 부르자 토요일 저녁이었지만 별미를 맛본 즐거움이 더했다. 한 해도 더 묵은 체증이 싹 가시고 뜨뜻미지근한 냉골 방 고랫재가 뻥 뚫린 듯 했다.

방송과 <맛난 홍어 생각> 창립 대회를 겸한 흡족한 자리였다. 1차에서 바로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cafe.daum.net/goodhongae를 개설하고 편히 잤다. 이렇게 홍어와 맺은 인연은 지속될 모양이다. 참 질긴 인연이 아니고 무언가.

a 2004년 TBN교통방송 출연 후 옥구슬처럼 굴러가는 목소리 주인공 김옥경씨와 한 장 찍었다.

2004년 TBN교통방송 출연 후 옥구슬처럼 굴러가는 목소리 주인공 김옥경씨와 한 장 찍었다. ⓒ 시골아이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신당동 홍어찜 소개는 다음으로 미룹니다. 8. 30(수) 아침 <생방송 세상의 아침> ‘으랏차차 대탐험’ 코너에 7시 30분 경 방송될 예정입니다.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바로가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신당동 홍어찜 소개는 다음으로 미룹니다. 8. 30(수) 아침 <생방송 세상의 아침> ‘으랏차차 대탐험’ 코너에 7시 30분 경 방송될 예정입니다.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바로가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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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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