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죽이지' 말아 달라

[권혁란 칼럼] 드라마와 현실 속에서 죽어가는 여성들

등록 2006.08.31 09:50수정 2006.08.3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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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CSI 과학수사대 > 출연진

< CSI 과학수사대 > 출연진 ⓒ OCN

폭력물이나 액션물, 공포나 수사물 같은 드라마와 영화는 어릴 때부터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일단 분위기 자체가 무서웠으니까. <전설의 고향>을 텔레비전에서 하던 시절, 여우가 홀딱홀딱 재주를 넘거나 늑대가 워워 울기만 해도 뒤로 거품 물고 넘어 갔었다.

여자가 한을 풀겠다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오거나 입가에 피 한 줄기만 흘러도, 소복만 입고 스윽 스쳐가기만 해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러 가지도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그런 성정을 가진지라 사람이 사람을 줄곧 때리고 맞고 죽이고 죽는 장면들은 더더욱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좀 더 자라서는 진짜 무서워서 그러는 건데도 '내숭 떤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자꾸 보다보면 면역이 될까 싶어 일부러 틀어놓고 눈을 뜨고 보는 식으로 애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주축으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들도 나의 노력과 함께 조금씩 액션의 수위, 폭력의 수위, 또는 쏟아지는 피의 양과 죽어가는 사람의 수를 점차로 높여갔기 때문에 그 흐름을 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 CSI 과학수사대 >, 공포에 눈을 뜨다

아직도 무서운 이야기를 일부러 보는 것에는 재미를 못 붙인 셈인데, 작년 말인가부터 돌연 수사물을 보는 것에서 공포감보다는 흥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 개의 드라마 시리즈 때문이다. 하나는 <춤추는 대수사선>, 또 하나는 < CSI 과학수사대 >.

<춤추는 대수사선>은 주인공 아오시마가 현란한 말재주가 있거나 천재 같은 두뇌가 있지 않고 평범한 일상인의 모습을 한 데다가 마음이나 하는 짓이 아주 다정하고 소심해서 좋았다. 범죄나 살인사건을 다뤄도 그다지 무섭지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수사 드라마에 정을 붙이게 된 것은 오롯이 < CSI 과학수사대 > 시리즈 덕분이다.

첫 번째로 시작한 라스베가스 편을 비롯해 마이애미나 뉴욕 편도 거의 모두가 일급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거의 매번 최소 한두 명은 처절하고 잔인하게 죽어나간다. 피가 튀고 살점이 드러나고 더 심한 것은 내장파열에서 피의 흐름까지 죄다 보여준다.


그런데도 그나마 맘 편히 볼 수 있었던 마음 한 자락에는 '조금만 있으면 저 억울한 죽음의 원인이 백일하에 밝혀지고 가해자는 아무리 용을 써도,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곧 잡힐 것이며 과학수사대의 반장이나 다른 요원들이 피해자의 가엾은 죽음을 위해 마음 속으로 기도하고 연민의 감정을 가져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랬다. 엇갈린 오해와 사소한 잘못들 때문에 누군가 누구를 죽여도 가해자와 피해자는 있기 마련이고, 그 중에 억울한 희생자는 있기 마련이다. < CSI 과학수사대 >를 보면서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수사요원들의 뛰어난 수사력과 더불어 가해자를 응징하고 피해자의 한을 꼭 풀어주는 반장과 요원들의 '따스하고 정의롭고 인정어린 마음의 액션'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 세 편의 시리즈에서도 죽어가는 것은 여자들이 더욱 많았고 그것이 내심 불안하고 무섭긴 했으나 그 여자들의 서글픈 죽음은 그나마 그들의 뛰어난 과학 수사덕분에 한 맺힌 채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공포나 수사드라마를 그다지도 두려워했던 것은 끝내 범인을 못 찾은 채 끝나는 걸 보았거나, 여성인 피해자가 한을 품고 돌아와 슬피 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 마라" 속에 억압 받고 있는 여성들

a < CSI 과학수사대 >의 한 장면

< CSI 과학수사대 >의 한 장면 ⓒ OCN

각설하고 얼마 전 < CSI 과학수사대 > 라스베이거스의 시즌 여섯 번째의 17번째 에피소드 말미에 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마음 한 쪽이 서늘해졌다. 왜 거의 모든 범죄 이야기에서 여자들이 희생자가 되어 죽어가는가에 대한 답변이랄 수 있는 말이다.

머리칼 하얀 과학수사대의 부검의 로빈스 박사는 "여성이 성폭행 당한 후에 살해당하는 경우는 남성에 비해 4배 정도 많습니다. 남성 살인범의 수는 여성보다 10배나 많습니다"라고 분석했다.

범죄 수사 <리얼리티 쇼>를 찍는 방송국 카메라를 향해 조용히 이 말을 하고 난 로빈스 박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모르는 이에게 성폭행을 당해 죽은 여자의 싸늘하게 식은 어깨 위를 메스로 긋는다.

올해도, 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많은 여자들은 죽임을 당했다. 찜찔방에 가던 여자들이, 이웃집 아저씨에게 어린 소녀가, 혼자 운전하던 젊은 여성이, 자신의 의지를 밝힐 수 없는 정신지체아 소녀가, 일하고 퇴근하던 직장인 여자가.

물론 남자도 많이 죽었지만 로빈스 박사 말마따나 성폭행을 당하거나, 백주대로에 끌려가거나, 몇 푼의 돈 때문에 손쉽게 범행의 대상이 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여자의 수가 훨씬 더 많은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통계적, 현실적 사실 때문에라도 여자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강제된 것들이나 금지가 권고 되는 것들이 아주 많다.

밤늦게 다니지 마라, 혼자 다니지 마라,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지 마라, 몸 함부로 놀리지 마라, 남자들 기죽게 하지 마라, 대들지 마라, 말 많이 하지 마라, 노출이 심한 옷 입지 마라, 밤길 나다니지 마라 등등 새삼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다.

훈계와 비난으로 가득 찬 금기와 강제 앞에서 여자들은 기가 죽고, 공포에 떨면서 살고 있다. 사실 앞서 말한 그 금지 혹은 권고 사항들은 여자뿐만 아니라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지키면 좋은 것들이고 하지 않으면 좋은 일들이다.

다만, '여자'가 했을 경우엔 그 다음에 무슨 일을 당한다 해도 '당해 싼 일'이 되고, 맞을 짓을 한 것이 되고, 나아가 죽어도 할 말 없다는 게 되어버린다는 게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들이 너무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그 말. 그리고 덧붙임 말이 있을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 어떤 여자가 그런 말들에 위축이 되냐고, 그거 무서워서 하고 싶은 거 못 하고 사는 여자가 어디 있느냐고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가끔 말문이 막히곤 했었는데, 예전에 어느 정신과 의사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해답을 얻었다. 그분이 말하시길 "여자들이 공연히 피해의식에 젖어 사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 깊숙이 피해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피해의 경험으로 말하게 되기 때문에 남자들과 다르게 말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라는 한 말씀.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다

a 연쇄살인범 유영철씨.

연쇄살인범 유영철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며칠 전에 알고 있는 한 남자가 공원을 산책하다가 안 좋은 일을 보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내인 듯한 여자가 앉아 있는 자리로 남편인 듯한 남자가 다가와 별다른 소리도 없이 여자를 패더란다. 온 몸을 패는데, 소리도 거의 나지 않더란다.

그러나 그는 아무 조치도 취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연인들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 보는 공원에서 누군가에게 소리 없이 온 몸을 두드려 맞는 이유가 무엇일지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으며 누가 내 일인양 달려가 말릴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지금도 어딘가에서 여자들이 맞고 있고 죽고 있다. 생명을 앗아가는 것 뿐만이 아니다. 삶의 어떤 진실한 사연을 전할 길도 없이 여자들은 돈 함부로 쓴다고 욕먹고 돈보고 결혼한다고 욕먹고, 이혼한다고 욕먹고,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고 욕먹고 상처받고 쓰러져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정신과 의사의 말씀처럼 '피해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피해의식'이 좀 있는 여자인 나는, 이래저래 죽을 확률이 남자보다 4배나 높은 여성의 몸을 가진 나는, 여자살인범보다 10배나 많은 남성살인범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2004년 여름의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생각한다.

또 많은 범죄드라마를 보면서 죽어가는 여자들의 난도질당한 피부와 죽기엔 너무나 사소한 사연들과 싸늘하게 굳어져 부검되는 몸들을 생각한다.

무슨 짓을 해도 효과적으로 대항치 못하는 약자, 가난한 자 중의 좀 더 가난한 자,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여자들을 골라 그토록 손쉽게, 가책 없이(게다가 훈계까지 해가며) 자신의 행복하지 못했던 삶을 대신 복수하듯 죽였던 그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그 마음을 생각한다.

자기를 버린 여성에 대한 혐오감으로,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일그러져 있었을 그 마음을 생각한다. 그래서 가장 만만하고 가장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노인과 출장 안마사 같은 여자들만을 골라 죽였던 사나워진 그 마음을 생각한다.

2004년 그가 잡혀서 현장 검증하던 그 숲과 어두운 밤길과 여름의 풍경이 바로 요즘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3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여자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말의 폭력과 훈계 아닌 훈계를 들으면서 다시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말아 달라'고.

'피도 눈물도 없는 밤'을 꿈꾸며

a 지난해 '피도 눈물도 없는 밤' 공식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피도 눈물도 없는 밤' 공식홈페이지 캡처 ⓒ IF

여자도 사람인 이상 밤거리를 걷고 싶을 때도 있고 걸어야 할 때가 있고 걸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혼자 운전을 해서 일하러 가야 할 때도 있고, 어두운 밤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할 때가 있고, 일하다가 힘들 때 찜질방에 갈 수도 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어느 날 호젓하게 혼자만의 사치를 위해 비싼 찻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여자가 언제, 어떻게, 어떤 행동을 하며 살든 그것은 그 여자가 선택한 삶의 한 자락일 뿐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 이상 여자들도 인간인 이상,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지 남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손가락질 당해야 할 일은 아니다. 부디 여자들의 몸과 마음에 더 이상 피해의 경험을 아로새기지 말아 달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유영철 사건 이후 만들어진 여성 전용 파티 <피도 눈물도 없는 밤-N0 BLOOD NO TEARS NIGHT)>에 대해서 써볼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2004년에 처음 열린 그 파티가 올해도 오는 9월 22일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벌써 3회째. 여름의 끝물에 바람이 선선한 선유도 공원에는 죽는 여자도, 눈물 흘리는 여자도 없는 파티가 열린다니, 기다려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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