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66회

새로운 만남

등록 2006.08.31 17:01수정 2006.08.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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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게 뭐지?

솟은 모로의 쥐 가죽 주머니를 가리키며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모로는 솟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솟이 무슨 의미로 쥐 가죽 주머니에 손가락을 들이미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런 건 저 위에 많다. 내가 만든 것이다.

모로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며 자신을 뽐내었다. 모로는 속으로 불붙는 알맹이와 솟이 가진 좋은 부싯돌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덧 산양의 시체에 붙은 불이 점점 꺼져가며 모두의 코를 찌르는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솟은 행여 냄새를 맡은 다른 짐승이 올까 잔뜩 경계가 되었지만 세 사람은 그런 경계 따위는 없이 오래간만에 맛보는 네발 큰짐승의 고기를 뜯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키는 어디로 간 것이지?

솟은 불현듯 언제부터인가 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음을 깨닫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맛있는 고기 부위를 뜯어내던 그차도 키가 보이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고서는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세 사람이 비록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외진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네드족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사냥에서 가장 큰 힘을 쓴 자에게 가장 좋은 부위를 내민다는 불문율만은 지키는 터였기에 모두가 키를 부르는 소리를 크게 질러대었다.

-여기 있다! 곧 도와주겠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난 곳으로 솟이 먼저 달려갔고 그곳에서는 키가 넓은 잎에 으깨진 열매를 가득 모아놓고 있었다. 뒤를 이어 달려온 그차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건 못 먹는 열매야.


그차에 말에도 불구하고 키는 그 열매를 넓은 잎에 가득 담아 하나는 솟에게 안겨주고 산양 고기가 익은 곳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은근히 냄새가 나긴 했지만 여기 이렇게 많이 있을 줄은 몰랐다.

키는 매우 들뜬 표정이었다. 솟은 으깨진데다가 시큼한 냄새가 나는 열매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키가 바라는 대로 열매를 옮겨놓았다.

‘열매를 좋아하는 수이도 이런 건 싫어 할 거야.’

수이 생각이 난 솟은 다시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키는 수이가 무사함을 항상 얘기했지만 솟은 수이의 모습이 그리워 가슴에 사무칠 지경일 뿐이었다.

키는 시큼한 열매를 손에 한 움큼 쥐더니 그것을 쥐어짜 자신의 입에 넣고서는 기가 막힌 진미를 맛보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솟은 그런 시큼한 열매즙이 과연 얼마나 맛이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것은 대자연의 선물이다. 산양고기를 맛보기전에 한번씩 맛을 보지 않겠나?

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차와 모로도 시큼한 냄새가 나는 열매의 즙을 짜먹는 것은 꺼려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영만은 열매를 덥석 집어 서슴없이 그 즙을 짜 자신의 입에 털어 넣고서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자인 사영이 거침없이 즙을 짜먹자 솟은 수이 역시 시큼한 열매도 서슴없이 먹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솟은 두 손을 모아 열매를 가득 들고서는 시큼한 열매의 즙을 입안 가득히 주르륵 따라 넣었다.

-욱!

솟은 즙을 입안에 따라 넣고 삼키는 순간 일부를 푸욱 하고 내뿜을 뻔한 순간을 참아내었다. 딱히 지독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평소에 즐기는 음식과는 달리 달작지근하고도 쓴 맛이 섞인 맛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손에 든 열매를 내동댕이쳤을 터였지만 솟은 수이를 생각하며 열매의 즙을 입안에 또다시 가득 따라 넣고 삼켰다.

-먹을 만은 한가 보지?

솟을 지켜보던 그차와 모로도 조심스레 한 손에 열매를 주고 엄지를 밑으로 세운 채 열매의 즙을 짜서 받아먹었다. 즙이 입안을 적시자마자 그들은 그것을 당장 입 밖으로 내 뱉고 싶었지만 이방인인 솟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싫어 억지로 열매의 즙을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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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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