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방송 출연을 고사한 이유

등록 2006.09.04 17:09수정 2006.09.0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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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주도 여행 중 호텔에서

제주도 여행 중 호텔에서 ⓒ 나관호

이 글을 쓸까 말까 갈등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관계된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주 전 내가 쓴 어머니에 대한 삶의 이야기를 읽은 KBS의 어느 방송작가로부터 쪽지가 왔다. 내용은 어머니에 대한 삶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KBS △△△ 프로그램의 작가 박OO 입니다. 저희 프로그램은 가족 간의 사랑과 부모님에 대한 자식이 표현하는 특별한 효 이야기에 대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기자님이 생활하는 모습.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싶은 욕심에 이렇게 쪽지를 남깁니다. 기자님의 연락처를 알기가 쉽지 않아 여기다 남기는데 빨리 보셨음 좋겠어요.^^

어머니에 대한 나의 작은 섬김이 그 작가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나는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작은 섬김은 내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중하게 고사하는 메일을 보냈다. 아마 나의 고사에 박 작가가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쪽지를 열어 본 지 30분도 못 되어 내가 이메일을 보냈으니까.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한 마음 전한다. 그리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싶다.

내가 프로그램 촬영을 고사한 구체적인 이유는 첫째, 나보다 더 열심히 효도하고 행복하게 사는 치매 노인을 둔 가족이 많다는 사실이다. 외부 포탈에 나간 내 글을 읽고 달아 놓은 댓글에서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이 우리 생각보다 많고, 가족들의 고통과 갈등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어머니는 건강하신 편이다. 이런 상황은 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꼴이 된다.

둘째, 나의 생활 속 부족하고 미성숙한 모습으로 치매 노인을 둔 다른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서였다. 나는 어머니를 '치매'라는 단어 앞에 무릎을 꿇게 하지 않는다. 더구나 '치매'라는 단어조차도 잘 사용하지 않고 멀리 떼어 놓고 산다. 그리고 외형적으로 보면 웃으며 행복하게 산다. 그런 생활 태도가 힘들게 뒷바라지하는 분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이 쓰였다.


셋째, "나는 당연히 할 일하고 있다"라는 잊어버린 가치관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자식이 어머니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보고 자주 쓰시는 말씀은 "내가 배로 난 아들"이라는 말이다. 어머니는 나를 품고 있었던 시절의 느낌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의 빚진 자다. 빚진 자가 빚을 갚는데 그것은 나타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나의 그런 가치관을 확인 시켜준 일이 지난 주간에 있었다. 지난 주에 어느 기자 분의 쪽지를 받았다. 그가 남긴 말 중에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 글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말은 종교적 코드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 기자를 생각하니 더 아름답게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방송출연을 고사한 일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다시 깨달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한 일들이 전파를 타고,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것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선한 일, 좋은 일, 행복한 일, 귀감이 될 만한 일은 드러나야 한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아니다. 동전의 앞뒤일 뿐이다. 한쪽 면이 드러나면 한쪽 면은 감춰진다. 나는 드러난 동전의 반대쪽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할 권리도 우리 각자에게 있다. 나는 드러나야 하는 선한 일의 반대쪽에서 그림자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서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좋으세요?"
"어이, 시원하네."
"누워보세요. 다리도 주물러 드리죠."
"아냐, 아들 힘들어.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고."
"(웃으며) 뭐가 힘들어요. 괜찮아요."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을 하셔서 다리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나는 다시 말했다.

"어머니 이것은 당연히 할 일이에요."
"그래도 아들 힘들어. 얼마나 팔이 아파."

어머니의 이 말씀은 부모가 크고 작은 일에 자식 걱정해주는 당연한 코드라는 표현일 것이다. 어머니들만이 가질 수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기 일터에서 "나는 마땅히 할 일을 했다"라는 삶의 코드를 갖는다면 뉴스에 모자를 쓰고 나타나고, 모자이크로 가려진 얼굴을 내밀 필요가 없다. 경찰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마땅히 할 일이다. 대가가 필요 없다. 판사가 죄의 무게를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는 것은 마땅히 할 일이다. 그것에 따른 대가가 필요치 않다. 국회의원이 지역구 주민들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역시 대가가 필요치 않다. 공무원이 국민의 일을 대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당연히 정신'은 우리 사회를 바꾸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이 '당연히 정신'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 정치인, 언론인, 연예인, 종교인, 방송인, 예술가, 학자, 기업인, 공무원, 주부, 학생 그리고 리더뿐만 아니라 헬퍼나 서포터들 모두에게 필요한 정신이다.

그리고 수위 아저씨, 환경 미화원, 슈퍼 아줌마, 자장면 배달원, 동사무소 공무원, A/S 센터 요원, 콜 센터 안내원, 택시기사, 버스기사, 식당 종업원, 어린이 집 선생과 운전기사,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내원, 학교 급식 영양사, 카센터 직원, 택배기사, 안경점 점원, 웨이터, 웨이트리스, 대형마트 캐시어 등등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야 할 기본기다.

그렇다면 당신은?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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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과속운전은 살인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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